버리는 연습

불필요한 물건과의 이별

by 박천수






물건을 아끼고 고쳐가며 평생 쓰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우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쩌다 시내를 한두 시간만 걸어 다녀도 내 손에는 나도 모르는 물건이 쥐어져 있다. 물론 내가 필요해서 산 물건이지만 필요 없는 사은품이 따라올 때가 많다. 우리가 잠시만 방심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물건이 집안에 늘어나는 시대다.


거실이나 집안 곳곳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신을 훨씬 지치게 만든다. 집안 곳곳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물건들이 에워싸고 있으면 마음조차도 위축되는 느낌이다. 날마다 정리 정돈을 하는 데도 돌아서면 똑같아 보인다. 내가 정리를 못 해서가 아니라 물건이 너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정리 정돈된 깨끗한 환경, 나를 설레게 하는 기분 좋은 물건만 있는 집, 퇴근해서 돌아오면 나를 위로하는 따뜻한 공간을 원하지만, 그것은 마음속에 담아 둔 그림일 뿐이다. 깔끔한 집과 너저분한 집의 차이는 단순하다. 그것은 필요 없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일까?


집안에 들어섰을 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필요한 물건이라도 특별한 기억과 관련되어 자신을 과거에 묶어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준 사람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고, 형편이 나빠질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언젠가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일 수도 있다. 또한 아깝다, 아직 쓸 만하다, 얼마나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인데, 추억이 담겨있는데 등의 이유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오랫동안 간직하며 버리지 못한다. 골동품이 아니라도 오랫동안 손때 묻은 물건에 대한 집착이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옷에 대한 미련은 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면서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라도 살이 빠지면, 행여 유행이 다시 돌아오면 입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또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옷장 속에 갇히는 일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입어 본 지 1년도 더 된 옷들은 앞으로 입지 않을 확률이 100%에 가깝다.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천덕꾸러기 옷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집에 물건을 하나둘씩 챙겨두는 버릇이 생겼다. 내 몸의 일부분인양 들고 다니는 휴대폰만 해도 새로운 디자인과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거나, 분실 또는 통신사의 마케팅 유혹으로 최신 기종으로 바꾸면서 이전 휴대폰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는 옷이지만 버리기엔 아깝고 다시 입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옷 정리함에 담아 비좁은 장롱 안에 넣어두었다. 책장 안에 꽂힌 다 읽지 않은 오래된 책들도 왠지 다시 읽을 것만 같은 미련이 남아 그냥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 주는 쇼핑백까지도 간이창고에 넣어 두었다. 창고 선반 위에도 어느 틈엔가 자꾸만 뭔가가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나의 휴대폰 변천사를 보다



돌아가신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엄마한테 제발 필요 없는 물건 좀 버리자고 잔소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혹시나 필요할 거 같아서라는 핑계를 대 보지만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평생 가야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인데 필요할 일이 뭐 있겠는가. 버리지 않는 것은 물건에 대한 기대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집착 때문일 것이다.




한번 사용했던 물건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얼마 전 버리려고 내놓았다 가도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깝고 해서 다시 그냥 넣어둔 물건들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쓸데없는 나의 집착이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닿으니 결심도 빨라진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비워보자. 그리고 비워진 빈 공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만으로 채워보자.



섬머셋 모옴(Somerset Maugham)은 ‘최고의 것을 수용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것만 주어지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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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까워서 못 버리겠다고 버티지 말자. 버리지 못해서 내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이제는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버리는 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눈앞에 보이는 불필요한 물건도 버리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욕심과 집착도 버리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내가 가진 불필요한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위한 ‘버리는 연습’을 통해 미련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삶은 어느 때보다 가벼워져 있을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