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내면에 숨은 유령의 그림자
인간은 두려움이 많은 존재다. 그래서 종교까지 만들어 신에게 의지하려는 것은 아닌지. 수험생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며 영험하다는 갓바위 부처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두 손 비는 우리의 어머니들, 어촌에서 해신(海神)을 위안하고 어민의 무사 귀환을 위해 비는 풍어제나, 심한 가뭄이 계속될 때 비를 내려달라고 천신께 올리는 기우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 등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간신앙으로 모두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연유하고 있다.
물론 갓바위 부처에게 빈다고 자녀들이 대학 입시에 합격하고, 풍어제를 지낸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고 어부들이 무사할 것이란 보장도,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내린다거나, 산신제로 풍년이 온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저 막막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기에 신을 찾고 의식을 통해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았을 것이다.
채근담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면, '쉬운 일도 신중히 하고, 곤란한 일도 겁내지 말고 해보아야 한다. 첫 고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능히 할 만한 일을 어렵다고 해서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닌 대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교통사고가 두려워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만 거절당할까 봐 프러포즈를 못하는 사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길을 잃을까 두려워 출발 조차 못하는 사람
지쳐 쓰러지는 것이 두려워 장거리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
금단 증상이 두려워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고 해 보지 않은 미래는 두렵기 마련이다. 아무도 알 수 없고,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겠는가. 위험이나 실패가 두려워 자신의 욕망을 내면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만 둔다면, 후회 없는 행복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용기를 내어 운전대를 잡아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프러포즈를 해 보자.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떠나보고, 시간을 내서 쓰러질 때까지 한번 뛰어보며, 후유증을 걱정 말고 당장 금연클리닉에 도전해보자.
만약 두려움이나 망설임 때문에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든다는 열망과 용기를 가지고,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일을 과감히 실행해보자.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강한 자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약한 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두려움을 극복한 강자는 생각한 것을 바로 실천으로 옮기지만, 두려움에 밀린 약자는 생각만 붙들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해석이 아닐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가을운동회 날, 반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고, 엄마가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셔서 함께 운동장 그늘 아래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까먹던 그때의 추억이 아련하다.
청백계주 릴레이, 박터뜨리기, 줄 다리기 등 단체게임은 웃고 즐기며 하다가, 운동회에 빠질 수 없는 100m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 섰을 때엔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과 흥분으로 긴장하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 소리를 내며 가슴을 짓눌러 오던 그 짧은 순간의 두려움을. ‘탕’하는 출발 신호와 함께 출발하면서부터 머릿속은 하얗게 비고 온몸에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전력 질주하던 그 추억이 그려진다. 어금니를 꽉 물고 달려가면서 다 잊어버리는 두려움이 처음 출발선에 섰을 때는 왜 그렇게 떨리고 불안하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순위가 결정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이 따라다녔다. 학창 시절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 후에 나오는 성적 순위에 조마조마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인사고과 성적에 따른 승진 여부에 대한 두려움이, 퇴직이나 실직 후엔 다른 사람과 대비되는 경제적 문제와 할 일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나이가 들면 순서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짓눌러 온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삶의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생각해 버리면 괜찮을까? 결국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자리한 두려움의 그림자와 '죽기밖에 더하겠냐'며 당당한 용기로 맞설 때 우리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여름, 감명 깊게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영화는 1597년 임진왜란 6년,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거북선마저도 없이 단 12척의 배로 330여 척의 왜군 공격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전쟁 액션 영화 <명랑>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대사는, 명랑에서 왜군과 전투를 앞두고 턱없이 부족한 아군의 배로는 무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들 이 회가 아버지 이순신 장군에게 비책을 묻는 장면에서 장군이 대답한 강렬한 울림이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이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영화 <명랑>의 주제는 한마디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눈앞에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명한 대처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각자의 위치에서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얻고자 하는 것을 반듯이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위험한 바이러스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어느 한 나라만의 재난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재난으로 그 심각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앞에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 19'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사회적 거리두기’ ‘사람과의 접촉 최소화’ ‘마스크 착용’ 등의 일반화된 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용기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잘 추슬러 나가자. 우리는 지금, 소리 없는 전쟁으로부터 두려움을 떨쳐내는 냉정한 지혜와 차분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어느덧 한 여름의 무더위가 태풍에 힘을 잃고 계절의 뒤안길로 물러나며,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나는 과연 나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소신 있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