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기회라는 것이 오고 그 기회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흔히 ‘저 사람은 참 운이 좋아’라는 말을 자주 들어 본다. 운이 좋다는 경우는 십중팔구 주변 모든 여건이 조화를 이루어서 성립되는 것이고 운이 나쁜 경우는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사자성어 중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어미 닭이 약 20여 일간 알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에서 껍질을 쪼아 대면 그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가 밖에서 쪼아 주어 병아리가 쉽게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쉽게 말하면 어떠한 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협력해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와 뜻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닭을 키운 적이 있다. 그때 본 풍경이지만 어미 닭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20여 일 동안 먹는 것과 물도 제대로 먹지 않고 몸에 털이 빠지도록 참고 견디며 적당한 온도 조절을 위해 알을 품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모성애의 신기한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면서 알 속에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가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면 정확히 밖에서 껍질을 쪼아 부화를 도와주는 일은 참으로 신비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병아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안의 껍질을 깨지 않으면 어미 닭 역시 밖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려 혼신을 다하여 올라오는 새끼만을 기르듯, 어미 닭 역시 험한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야 된다는 신념을 출발부터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병아리가 부화되는 부화장에서는 인공부화를 하기도 하지만 알 속의 병아리가 보인다고 사람이 껍질을 깨 주면, 이런 병아리는 나중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미 닭 역시 그런 자연의 이치를 알아서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밖에서 약간의 도움만을 줄 뿐 인 것이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다른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라는 글을 통해 새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의 그 의지처럼 우리 인간은 이 험한 세상에 스스로 적응하여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듯이, 줄탁동시가 우리네 삶에 지시하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보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학교생활 등에 ‘줄탁동시’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내조를 잘할 때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절규에 찬 목소리를 듣고 사용자의 적절한 합의와 처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노사관계가 원만하여 생산력이 증대될 수 있을 것이며, 병원에서는 환자의 고통과 상담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한 의사의 적절한 처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환자의 병이 낫게 되고,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자 하는 열의와 교사가 성의를 다해 가르치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교육이 진정 발전되리라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본인의 적극적인 노력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바로 성공하는 경우처럼, 삶이란 수레를 끌고 고갯길을 힘겹게 넘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약간만 밀어줘도 거뜬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나와 너, 우리 모두 ‘줄탁동시’로 세상사는 법을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반을 머문다. 원래는 이보다 몇 개월을 더 머물러야 병아리처럼 스스로 인지하는 본능을 더 깨우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머리가 커져서 산도의 좁은 문을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미리 세상 밖으로 나와 한동안 엄마의 도움을 받도록 진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아기 엄마의 따뜻한 도움이 부족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결격사유의 인간이 되고 만다는 사실 역시, 생물학적으로 많은 실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쩜 우리는 하찮은 동물인 어미 닭과 병아리의 출생 시부터의 ‘상호의존’을 교훈 삼아 이 험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줄탁동시라는 고사성어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이미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