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기 응징법
지난 6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아 강아지 미용을 맡기고 2시간여의 시간이 남아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를 찾았다. 4층 매표소에 들어서자 최근 개봉작인 <발신제한> 포스터가 압도적인 스릴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눈길을 끌었다. 평소 액션물을 즐겨보는 취향이라 <발신제한>을 관람하기로 하고 입장권 자동발매기 앞에 섰다. 발매기에 손을 터치하려는 순간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함께 이겨 내요!’ 캠페인을 6월 한 달간 진행하면서 질병관리청에서 발급한 백신 접종 확인증이 있으면 백신 접종 인센티브로 6천 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였다. 뜻밖의 할인 혜택에 가벼운 마음으로 창구에서 직접 입장권을 끊은 후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상영관 안엔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소등과 함께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 은행 센터장 성규는 아들과 딸의 등교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면서 자신의 차 안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딸의 말을 무시한 채 출근길에 나선다. 그리고 처음 보는 휴대전화에서 한 통의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너머 의문의 목소리는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라고 경고한다. 또한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현금 9억 원과 계좌 이체할 17억 원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의문의 발신자와 성규의 짧은 대화에만 의지한 채 도심을 질주하는 긴박한 상황 전개로 긴장감이 몰려와 영화에 몰입되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의문의 발신자는 자신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고, 부지점장 또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고 하여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하지만, 그곳에서 부지점장의 아내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차량 폭발로 인해 사망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고, 주인공 성규는 사건 현장에 찍힌 차량으로 인해 졸지에 부산 도심 테러의 용의자가 되어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단순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설상가상으로 차량 폭파 충격으로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들의 다리에 파편이 박혀 피가 멈추지 않는 위급상황을 맞게 된다.
이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듯한 발신자는 발신 제한 전화로 병원에 가고 싶다면 빨리 돈을 입금하라고 독촉하며, 이미 죽어버린 부하직원에게 받아야 할 돈까지 포함하여 17억 원이 아닌 34억 원을 요구한다. 내리면 폭탄이 터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경찰의 추적 속에서 발신자의 전화마저 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부산 도심이 폭탄 테러의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별다른 액션 없이 밀폐된 공간 속에서 극강의 긴장감과 함께 오로지 감정으로 모든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 조우진의 기막힌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라고 비평 아닌 비평을 해 본다.
영화는 주인공 성규와 그의 가족을 소개하고 의문의 목소리가 등장하자마자 앞만 보고 내달리는 속도감 있는 영화로 얼핏 ‘분노의 질주’의 한 장면을 연상시켜준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만 해도 성규에게 전화를 건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왜 성규에게 거금을 달라고 협박하는지 등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만 전하는 발신자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며 성규와 얽힌 사연도 덩달아 커져만 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폭탄이 설치된 차를 몰고 부산 도심 한복판을 내달리는 단순한 스릴러 장르로만 바라보면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영화의 극적인 반전은 목소리의 사연이 드러나는 영화의 중반부에 있다. 어떤 점에서 보면 <발신제한>은 지동차를 몰고 질주하는 액션 장르를 가장한 사회고발 영화라고 단정해도 될 듯하다. 특히 달리는 차 안에서 거액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 상사와 후임 및 고객까지 속여야 하며, 몸을 다친 아들과 놀란 딸도 진정시켜야 하고, 아내를 설득하여 은행에서 현금도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의문의 발신자에게서 협박과 지시도 받아야 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내몰려 고군분투하는 성규의 복잡한 내면을 보면서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살던 남자가 난데없이 처한 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따돌려야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인공의 심리적 불안감을 오직 얼굴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영화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다시 범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범인은 6년 전 성규가 근무했던 은행의 금융상품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은행에서 파쇄된 금융자료들을 버리고 차에 타려는데 피해자로 보이는 한 여인이 다급하게 성규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성규는 매몰차게 차를 몰고 가버리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어 나온다. 그 당시 성규에게 도움을 청한 여인이 바로 범인의 아내였으며, 그사건으로 절망하여 자살한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인은 모든 일을 계획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규는 범인과 약속한 장소에서 딸이 묶여있는 차를 발견하고 그 옆에 자신의 차를 세운다. 범인이 성규의 차에 올라타고 본인이 요구한 돈은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은행을 상대로 법정 공방을 지속하면서 사용했던 소송비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범인은 죽음을 결심한 듯 성규에게 시동을 켜고 엑셀을 밟으라고 한다. 결국 차는 바닷물 속으로 빠져 폭발하지만 다행히도 성규는 구조되어 혼자 살아남는다. 그후 성규는 법원에 출두하면서 증거가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이 증거라고 말하면서, 이제 피해자 편에 서서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말과 함께 영화는 엔딩을 알린다.
영화 <발신제한>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결국 금융사기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가 그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에게 피해당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응징하는 내용이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금융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철희·장영자 사건’ ‘조희팔 사건’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금융사기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가는 범죄 행위지만 그 누구도 피해자를 책임지지 않는다. 영화 <발신제한>은 우리에게 행여 오늘 나의 행복이 어쩌면 누군가의 불행을 밟고 서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씁쓸함과 함께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상기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