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Carpe diem)]
태원우 변호사가 2022.3.12. 페북(Won WooTae)에 쓴 글
by 태원우변호사입니다 Jul 25. 2023
[ Carpe diem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서울서부지방법원 국선재판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몇 자 적는다.
오전 11시로 예정되어 있는 형사재판. 4층법정 앞에 도착하니 아직 10시 20분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앞 사건이 5개나 밀려 있었다.
재판순서를 기다리면서 30분 넘도록 4층에 걸려있는 여러 그림들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ABOUT LOVE - Carpe Diem전 -
서울서부지방법원 4층에는 ' 함께 열고 함께 보는 미술관, 서부공간 ' 이 있다. 매달 다른 그림전시회가 상시 진행된다.
서부지방법원 갈 때마다 재판 순서를 기다리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재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다가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곤 한다.
오늘 내가 변론하는 재판은 거의 11시 50분이 다 되어서 시작했다. 판사님이 모든 사건마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말을
다 들어주셔서 재판이 계속 밀렸기 때문이다.
성격이 온화하고 좋으셨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한 판사님이셨다.
내가 변론하는 사건은, 이명증상이 있고 청력이 약한 피고인이 술에 취해서 빈대떡식당에서 유튜브로 '광화문연가'를 크게 틀어놓고 들으시다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연행하려 하자 반항하면서 경찰관의 머리를 한 대 때려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계시는 분,
72세 할아버지는 자신이 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얼굴이 하얗고 멋진 생머리의 여검사님이 징역 1년을 구형하셨다. (와~~)
한 시간 가까이 재판을 기다린 억울함도 있고 판사님 성격이 좋으신 것 같아서 나도 이례적으로 최후변론을 길게 했다.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선처를 구한다는 내용의 양형변론이지만 나도 변론하고 싶은 내용이 많이 있었다.
현재에 충실하게 변론을 길게 해서 나는 좋았지만, 내 다음 순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건 변호사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2시 점심식사 시간이 훌쩍 넘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재판 갈 때마다 들르는 단골식당.
양푼탕 김치찌개집에서 현재 이 순간을 즐기며 충실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두 청년과 식당 주인할머니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식사값이 27,000원이라고 하시는데 청년들은 36,000원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양푼탕 2개, 계란말이 1개, 라면사리 2개, 소주 2병..... 하나하나 다시 계산해 보시더니 청년들 말이 맞다.
할머니께서는 "늙으니까 요즘 계산이 자꾸 틀린다"라고 하셨다.
착한 청년들 얼굴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들어서 그들의 얼굴과 큰 덩치를 보았다.
나도 식사를 다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할머니께 연세를 물었다.
" 나이 많이 먹었어요.... 1939년생이에요 "
" 토끼띠로군요. 우리 어머니도 토끼띠이신데....."
즐거운 식사 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지하철 공덕역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걸어가는 두 청년의 뒷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
양푼탕 김치찌개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길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나서 지하철로 가는 길이었나 보다.
내 걸음은 원래 빠른 편이지만 그 청년들 뒤에서 함께
걸어가고 싶어서 소처럼 천천히 걸었다.
청년들 뒷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몰래 사진을 찍었다.
내가 기소되더라도 검사님과 판사님이 사진을 찍게 된 경위를 들으시면 선처해 주실 것이다.
전과 없는 초범이고 맛있는 김치찌개와 정직한 청년들의 모습에 취해서 우발적으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니까....
그 청년들이 타는 지하철칸에 나도 탔다.
두 정거장 지나서 삼각지역에서 나는 4호선으로의 환승을 위해 내렸고 청년들은 계속 갔다.
세상에는 나쁜 놈들보다 좋은 분들이 더 많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감사할만한 일들, 멋진 일들은 찾아보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