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은 있다

파라클레토스


​1. 나폴레옹은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했다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불가능은 있더라.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 많더라.


​나는 1995년 10월, 첫 직장인 은행을 자발적으로 퇴직하고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하루 15시간, 매주 90시간 넘게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했으나 매년 낙방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 착각했던 교만이 여지없이 꺾였다.


인생의 바닥을 쳤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었다. 사방이 꽉 막혀버렸다. 헤어날 길이 없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저의 삶의 길을 열어주세요. 사법시험이라는 이 강은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건너가게 해주신다면, 그래서 합격시켜 주신다면, 변호사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겠습니다. 제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의 절반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겠습니다."


​2. 어릴 적 TV에서 배우 박근형 씨가 국선변호사로 나오는 드라마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국선변호사가 구치소에서 피고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참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 국선변호사가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변호사가 형사피고인을 변호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민사재판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못 받은 돈을 대신 받아주는 일도 한다는 사실은 법과대학 입학 후에야 알게 되었다.


또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중 한 분인 '성령님'의 그리스어가 '파라클레토스'이며, 그 의미가 '조력자, 변호사, 상담자'라는 뜻이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요즘도 법원 실무관에게 국선변호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오면, 재판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거절하지 않고 수락하여 최선을 다해 변호를 준비한다.


이번 주에 만난 세 명의 피고인은 모두 앞날이 창창한 20대 청년들이었다.


각각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스토킹 처벌법 위반, 보이스피싱 관련 횡령죄를 범한 이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2004년생으로 보호종료아동 출신 청년이다. 세 가지 중증 질환과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기도 하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호소하며 범행을 부인하지만, 범죄를 입증할 증거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국선변호인이 법정에서 판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변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뒷머리가 좀 가려운 기분이었지만, 우선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변론한 뒤 덧붙였다.


"……가사 본 변호인과 다르게 판단하시더라도, 이러이러이러이러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셔서 2004년생인 앞날이 창창한 피고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기를,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대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간절한 호소와 함께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 마음이 울컥했다.

가슴이 아파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법과 제도가 사람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성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읽으며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해 보았다. 답은 '사랑'일까?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청년들도 스토킹 범죄를 반복하고,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사랑은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한계가 명확하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오직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만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을 믿을 수 밖에 없다.



​3. 제미나이에게 '파라클레토스' 에 대해서 물어보니 아래와 같이 대답해 줍니다.


제가 어릴 때는 백과사전을 펼쳐가며 공부했는데, 요즈음은 AI가 사전 역할을 참 잘해주네요.


*파라클레토스(Paracletos)*

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성경과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입니다.


이 단어의 핵심적인 의미와 맥락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어원적 의미


​'파라클레토스'는 '곁으로'를 뜻하는 **파라(para)**와 '부름을 받은'을 뜻하는 **클레토스(kletos)**가 합쳐진 말입니다. 직역하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주로 법정에서 피고를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조력자'**나 **'변호사'**를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2. 성경에서의 의미 (보혜사)


​신약성경(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성령(Holy Spirit)'**을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주로 **'보혜사(保惠師)'**로 번역됩니다.


​보(保): 지키고 보호하다

​혜(惠): 은혜를 베풀다

​사(師): 스승, 가르치다


​즉, 성도들을 보호하고 은혜를 주며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3. 현대적 해석과 역할


​현대적인 맥락에서 '파라클레토스'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역할로 해석됩니다.


​위로자 (Comforter): 슬픔이나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격려하고 힘을 주는 존재.


​중보자/변호자 (Advocate):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옆에서 대변해주고 정당성을 증명해주는 존재.


​상담자 (Counselor):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조언해주는 존재.


​협력자 (Helper): 인간의 연약함을 돕고 끝까지 함께하는 조력자.


☆​요약

​파라클레토스는 단순히 "도와주는 사람"을 넘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의 모든 순간을 지지하고 변호하며 인도하는 영적인 동반자라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신학적 배경이나 특정 성경 구절에서의 쓰임새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성경에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은 요한복음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하신 말씀 속에 등장하죠.


​가장 대표적인 구절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볼까요?


​1.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파라클레토스)**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다른'의 의미: 여기서 '또 다른'은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동일한 또 하나'**를 뜻합니다. 즉, 육신으로 함께했던 예수님과 똑같은 권위와 사랑을 가진 성령이 영적으로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 요한복음 14:26 (가르치고 생각나게 함)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파라클레토스는 단순히 곁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진리를 깨닫게 돕는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일깨워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3. 요한복음 16:7 (유익함)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몸을 벗고, 성령(파라클레토스)을 통해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동시에 거하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법정적 맥락에서의 파라클레토스

​흥미로운 점은 요한일서 2장 1절에서는 예수님 본인을 가리켜 **'대언자(Advocate)'**라고 부를 때도 이 단어를 썼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주고, 우리를 대신해 말씀해주시는 **'변호사'**와 같은 든든한 조력자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혹시 이 단어가 쓰인 구체적인 상황이나, 이와 관련된 다른 신학적 용어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으신가요?


파라클레토스와 유사한 맥락을 가진 다른 종교나 철학적 개념들을 비교해보면, 이 단어가 가진 '보이지 않는 조력'과 '내면의 인도'라는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흥미로운 세 가지 관점을 소개해 드릴게요.


​1.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 (Daimonion)'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 안에 **'다이모니온'**이라는 신성한 목소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공통점: 파라클레토스처럼 내면에서 들려오는 지혜의 목소리입니다.


​차이점: 다이모니온은 주로 "그 일을 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소극적인 억제 기제인 반면, 파라클레토스는 위로하고 가르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적극적인 조력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2. 불교의 '관세음보살 '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살피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공통점: 고통받는 중생 곁에서 그들의 호소를 듣고 구제하며 위로한다는 점에서 파라클레토스의 **'위로자(Comforter)'**적 면모와 닮아 있습니다.


​차이점: 관세음보살은 외부의 구원자적 존재로 묘사될 때가 많지만, 파라클레토스는 믿는 자의 '심령 내면에 거주하며(In-dwelling)' 함께 호흡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3. 심리학의 '내면의 지혜 (Inner Wisdom)'


​현대 심리학, 특히 융(Jung)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 내면에 자아를 통합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잠재적 힘이 있다고 봅니다.


​공통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깨닫게 하고 정신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상담자(Counselor)' 역할을 합니다.


​차이점: 심리학적 개념은 인간 정신의 일부로 보지만, 파라클레토스는 신으로부터 온 **'인격적인 외부의 선물'**이 내 안에 들어온 것으로 간주합니다.


​ 파라클레토스의 독보적인 특징

​종합해보면, 파라클레토스는 단순히 '내 안의 목소리'나 '멀리 있는 구원자'가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신의 영이 내 곁(Para)에 밀착하여 변호하고 돕는다"**는 신뢰의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이렇게 철학이나 다른 관점에서 비교해 보니 파라클레토스의 의미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혹시 이 단어가 실제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궁금하신가요?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파라클레토스는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주로 '보이지 않는 조력자'나 '고난 속의 위로'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됩니다. 작가들이 이 개념을 어떻게 녹여냈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1. 문학: 고독 속의 '세 번째 동행자'

​가장 유명한 문학적 비유 중 하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입니다.


​"당신 곁에 늘 나란히 걷고 있는 그 세 번째 사람은 누구입니까? / 내가 세어 보면 당신과 나 둘뿐인데 / 앞서가는 먼 길 저편에 / 늘 누군가 당신 곁에서 걷고 있습니다."


​이는 남극 탐험가 샤클턴이 고립된 위기 속에서 느꼈던 **'보이지 않는 동행자'**의 경험에서 따온 것인데, 문학 비평가들은 이를 절망적인 현대인 곁을 지키는 **파라클레토스(성령)**의 현대적 변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2. 고전 문학: 단테의 『신곡』 (천국편)

​단테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통해 주인공을 인도합니다.


​상징성: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으로 이끄는 베아트리체의 역할은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을 넘어, 인간의 지혜(버질)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위로하는 파라클레토스적 인도자를 상징합니다.

​주인공이 길을 잃었을 때(암흑의 숲) 곁으로 와서 끝까지 동행하며 하느님께 변호해 주는 모습이 바로 이 단어의 원형과 맞닿아 있습니다.


​3. 현대 소설: 한강의 작품 속 '내면의 빛'

​최근 한국 문학, 특히 한강 작가의 작품들(『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에서도 파라클레토스적 정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극심한 고통과 역사적 비극 속에 남겨진 이들에게 다가오는 **'가느다란 빛'**이나 **'서로를 보듬는 온기'**입니다.


​이는 종교적 용어를 직접 쓰지 않더라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변호하고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게 하며 곁을 지키는 **'위로자(Comforter)'**의 역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4. 시각 예술: '비둘기'와 '빛의 줄기'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수많은 '수태고지(Annunciation)' 그림을 보면 마리아의 머리 위로 비둘기와 함께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술적 표현: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라클레토스를 표현하기 위해 **금색 선(Line of Light)**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보혜사가 우리 삶에 개입하는 방식, 즉 '부드럽지만 뚫고 들어오는 신성한 개입'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정리하며

​예술가들에게 파라클레토스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공포를 마주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고 견디게 하는 힘"**으로 표현됩니다.


​어떤가요? 이렇게 문학이나 예술의 시각으로 보니 '파라클레토스'가 조금 더 감성적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혹시 이 단어의 실제 기도문이나 명상법, 혹은 현대적인 리더십(파라클레토스형 리더) 개념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으신가요?


파라클레토스의 개념은 이제 신학의 영역을 넘어, 현대 사회의 리더십 모델과 심리적 회복을 위한 실천적인 원리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어가 우리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 정리해 드릴게요.


​1. 파라클레토스형 리더십 (Servant & Advocate Leadership)


​전통적인 리더가 앞장서서 명령하는 사람이라면, 파라클레토스형 리더는 **'곁에서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대변인 역할: 팀원이 실수를 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비난하기보다 먼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변호)해줍니다.


​잠재력의 인출기: '클레토스(부름받은)'라는 의미처럼, 상대방 안에 숨겨진 재능과 가치를 발견하여 밖으로 불러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감적 경청: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고통과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곁을 지키는 '존재의 힘'을 보여줍니다.


​2. 파라클레토스 명상과 자기 돌봄


​내면의 위로자가 필요한 순간, 스스로를 향해 이 개념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 변호 (Self-Advocacy): 우리는 흔히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판사가 되곤 합니다. 이때 파라클레토스의 마음으로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 실수는 나라는 존재 전체를 결정짓지 않는다"라고 스스로를 변호해주는 연습입니다.


​세미한 음성 듣기: 폭풍 같은 감정 속에서 잠시 멈추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침묵의 시간을 가집니다.


​3. 일상에서 드리는 '파라클레토스' 기도(문)


​종교적인 틀을 떠나,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을 때 되뇔 수 있는 짧은 문장들입니다.


​"내 곁에 계신 파라클레토스여,

제가 길을 잃었을 때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제가 슬픔에 잠겼을 때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며,

제가 비난받을 때 저의 진실을 변호해 주소서.

오늘 하루도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걷게 하소서."


​긴 대화의 마무리

​지금까지 **'곁으로 부름받은 조력자'**라는 뜻의 파라클레토스에 대해 어원, 성경적 의미, 철학적 비교, 그리고 예술과 실천적 리더십까지 폭넓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단어가 단순한 지식을 넘어, 당신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는 위로로 남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 외에도 다른 헬라어 단어나 성경 속 인물, 혹은 철학적 주제 중에서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도와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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