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잇사 (하이쿠)
'A는 A이지만..'이라는 문장은 동의를 표현한다. 이때의 동의란 어떤 의견에 대한 수긍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이 수긍은 껄쩍지근한 수긍이다.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이 말 속에 '인정'은 없다. 주장과 의견을 형식상 옳다고 말할 뿐, 아직 말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미련이 남아 있다. 끝내 놓치 못하는 어떤 미련.
세상이 이슬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그걸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비가 벅벅 내리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겠지만, 비온 뒤 갠 하늘 밑, 어디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슬이 달려 있는 세상이라거나, 해가 뜨기 전 풀밭에 내려 앉은 새초롬한 이슬이 가득한 세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편으로 이슬의 세상은 어쩌면 해가 뜨지 않는 세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슬이 마르지 않는 세상이라니, 우리의 세상은 어쩌면 누군가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세상이 아니던가 싶어서 흠칫, 인정할 수밖에.
잇사의 개인적 비극은 김연수의 에세이집 <시절일기>를 통해 알았다. 늦은 결혼, 어린 아내, 아이들의 이른 죽음, 또 죽음, 그리고 죽음...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 속에 그가 본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수밖에.
이 문장의 마지막, 그러니까 이 시의 마지막에 등장한 '그렇지만'이라는 단어가 목에 콱 들어막힌 채 좀처럼 숨쉬기 어렵다.
마침 책을 읽는 버스 차창 밖에 부슬거리는 비가 달라 붙는다. 창문에 똘똘 뭉친 빗방울들은 창문을 직직 긁으면서 물자국을 일정하게 만든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물방울들. 책을 읽다 말고, 창문을 응시할 수밖에.
망연자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문장을 읽고 창문을 응시하는 일.
그렇지만.
차창에 집요하게 달라 붙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에 눈을 돌린다.
그렇지만
다듬지 못할 문장이라도 꾹꾹 눌러 쓰며 하루하루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끅끅거리며 읽고, 쓰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에 답하는 일.
그러니.. 오늘도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