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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 독자 Jul 04. 2024

한국에도 안데스 같은 산맥이 있니?

2월 19일 산티아고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라.

  산티아고의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랐다. 이곳은 알렉사가 오고 싶어 했던 곳으로 해질 무렵에 맞춰 식구들이 다 함께 오르기로 했는데 루시네 커플의 렌터카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나와 알렉사와 판초, 이렇게 셋이서만 갔다. 언덕은 그리 높지 않아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보할 겸 걸어 올랐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은 마치 우리나라 남산 공원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운동삼아 온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관광을 목적으로 야경을 구경할 겸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것저것 남산 느낌의 반가움이 있었는데 서울의 남산과 크게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시선의 끝에 만년설에 뒤덮인 안데스 산맥이 보인다는 거였다!


  "한국에도 안데스 같은 산맥이 있니?"


  저 멀리 눈이 쌓인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던 내게 판초가 물었다. 산맥? 산맥이라……. 판초가 만난 이들 중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었나 보다. 칠레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란 멀고 먼 나라일터, 생경한 나라이기에 모를 수도 있지. 덕분에 받은 "너희 나라에도 산맥이 있냐"? 는 물음은 난생처음 받아본 신선한 질문이었다. 함께 있던 알렉사는 독일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럽의 거대한 산맥, 알프스를 끼고 있는 걸 잘 알았는지 그에게는 이 질문이 패스되었다.


  "그럼. 있지. 우리나라의 산맥은……. 좀 많아."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 서 있어도 시선의 끝에는 산이 걸쳐있는, 어디서나 산이 보이는 산의 나라. 굳이 따지자면 산을 찾는 것보다 산이 안 보이는 곳을 더 찾기 힘든 게 우리나라다. 어떤 면에서는 산의 민족이라 스스로를 칭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에 산맥이 있냐?는 그의 질문은 순수하고 신선했다.

 

  "음……. 우리나라 산맥은 말이지……. 강남, 적유령, 모향, 언진, 멸악, 함경……."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산맥의 이름을 줄줄 쏟아냈다. 마치 랩을 하듯이. 따지자면 장르는 한국지리 산맥 랩 되시겠다. 내가 줄줄이 말하는 산맥의 이름들에 판초는 놀랐다. 옆에 있던 알렉사는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산맥의 개수보다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외우고 있는 내게 더 놀랐다. 물론 이름을 읊고 있는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고등학교 한국지리 시절 배운 산맥의 이름들. 십 년도 더 된 그때의 기억을 십 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 한국 지리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 배웠던 것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산티아고에서 써먹을 줄이야!


  "한국의 산에 놀러 와! 우리나라에서는 큰 도시에 가도, 작은 도시에 가도, 그냥 시골에 가도 어디서나 산이 보여. 만년설이 쌓여있는 여기 안데스 산맥이나 유럽의 알프스 산맥같이 높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산맥은 볼 수록 아름답고 신비롭단다."


  이렇게 산맥 이름 랩에 더불어 금강산을 찾아가는 노랫말의 한 구절을 인용해 우리나라의 산맥 소개를 마쳤다. 마침 나는 국립공원 지킴이 같은 둥그런 챙의 누런 등산 모자를 쓰고 있던 터라 K등산을 소개하기에도 꽤나 걸맞은 복색이었다. 언덕을 오르며 굳이 챙겨 입을 수 있었던 등산 모자와 얇은 바람막이는 나중에 가게 될 파타고니아 지역의 트래킹이나 일교차가 심한 지역에 갈 것을 대비해 빌려갔던 엄마의 아웃도어룩들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산에 진심인만큼 기능성 등산복에도 진심이니까. 복장마저 한국인의 아웃도어룩을 뽐내지 않았던가. 그만큼 한국의 산에 놀러 오라는 초대 역시 진심이었다. 물론 저~ 기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맥처럼 봉우리 위에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들은 아니지만. 산에 대한 자부심은 한국인인 내게도 있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달팽이의 집처럼 산을 둥글게 돌아가는 형태로 되어있는 듯했다. 시작할 때는 분명 낮은 건물들이 즐비한 주거지 방향이 보였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그 반대편의 전경이 보였다. 낮은 주거지의 반대편에는 산티아고의 경제 중심지인 시내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중심지인 시내에서는 유난히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이었다. 고만 고만한 빌딩 숲 속에 홀로 우뚝 솟은 이 건물은 산티아고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코스타네라 센터다. 코스타네라 센터는 그 높이가 약 300m 정도로 남미 지역을 통틀어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칠레는 지진이 많은 곳이라 높은 건물을 짓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남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칠레에 있었다니.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모양새였다. 특별하고 특출 나 보였다.


  코스타네라 센터의 위용과 그 높이에 감탄하며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간다. 노을이 아련해지는 모습을 배경으로 정상에 오르니 이번엔 언덕의 잎새들이 나를 반겼다. 노을과 대비되는 섬세한 잎새의 모양새는 마치 앙리 루소가 붓으로 하나하나 그려둔 것만 같았다. 그 모양새가 참 아름다웠다. 마지막 남은 빛을 불태워내는 황금빛 찬란한 태양, 도 그를 감싸며 타들어가는 황홀한 붉은 석양도, 거기에 대비되는 이국적인 모습의 잎새 한 잎 한 잎까지도.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언덕의 정상 아래엔 우리나라 포장마차와도 같은 작은 휴게소가 있었다. 간단한 음료와 요깃거리를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칠레의 전통 음료인 모떼 꼰 후에시오 한잔씩을 마셨다. Mote con Huesillo, 모떼 꼰 후에시오의 모떼는 '밀'이고, 후에시 오는 '말린 복숭아'라는 뜻으로 복숭아 맛의 음료에 복숭아 건더기를 함께 먹는 음료다. 특히 여름철 먹는 칠레의 여름 대표 음료다. 시나몬이 들어간 음료라서 굳이 찾아보자면 계피가 들어간 우리나라 수정과 같다 하겠다. 그렇게 모떼 콘 후에시오 한 잔을 비워내며 해가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감상한 다음,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이번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칠레가 남미에서 두 번째로 빈부 격차가 심한 곳이라는 거다. 첫 번째 나라는 브라질이다. 브라질 분들에게는 송구스럽지만 브라질의 빈부격차 소식은 그렇게 놀라운 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칠레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칠레는 남미에서도 손에 꼽히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곳이 남미에서 두 번째로 빈부 격차가 심한 곳이라니. 잘 사는 나라에서도 빈부격차가 있구나. 아니 잘 살아서 더 격차가 있는 걸까? 그 사실 자체로 놀라웠던 내게 이곳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본 야경은 뉴스에서 전해준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칠레에서도 손꼽히게 물가가 비싸고 비교적 잘 사는 사람들만 모여있다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하지만 산티아고에서도 부촌과 빈촌의 모습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언덕을 달팽이 집 그리듯 돌아서 내려가며 보게 된 부촌과 빈촌의 차이. 크고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차 건물들마다 불빛들을 몇십 개씩 달고 있는 쩌렁쩌렁 눈부시게 빛나는 부촌의 모습과는 달리, 빈촌의 건물들은 집집마다 낮은 불빛들이 옹기종기 모여 근근이 빛나고 있었다. 이는 칠레의 빈부격차 뉴스에서 처음 느꼈던 놀라움을 시각적으로 바로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처음 산 크리스토발 언덕을 오르며 느꼈던 남산 공원 같았던 기분은 이를 보기 위한 복선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특히 나라의 수도이자 경제의 중심인 대도시 서울에서는 더욱더 심하게 보인다. 잘 사는 나라라서 이 격차가 없을 것이라는 건 나의 얕은 생각이었다. 오히려 잘 사는 동네일수록 빈부격차는 더 크게 느껴진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유토피아는 이상향일 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촌을 가득 채우는 작은 불빛 하나하나는 어찌 그리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번쩍이는 부촌의 모습과 비교되어 퍽 애달프지만 동시에 처연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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