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 독자 Jul 18. 2024

악마의 목구멍으로부터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시작은 아마도 <악마의 목구멍> 일 거다. <악마의 목구멍>은 이과수 폭포에서 가장 유명한 관람 코스 중 하나다. 여기서의 폭포 관람은 폭포수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절벽의 모양이 둥지처럼 둥그렇게 에워싸인 모양새라 그곳을 타고 쏟아져 내려가는 물줄기가 마치 지하 세계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악마의 목구멍을 연상시킨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모습은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이 십분 이해되는 위협적이고 장대한 모습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게 오늘의 시발점이다.


  이과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을 접하는 폭포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거대한 물이라는 뜻의 과라니어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아르헨티나가 사용하는 스페인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과수'가 되고 브라질이 사용하는 포르투갈 표기법에 따르면 '이구아수'가 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모두 각각 같은 과라니어에서 따온 이름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에 접한 이과수는 왜 과라니어에서 유래된 이름을 쓰는 걸까? 알고 보면 원래 이과수의 대부분이 과라니어를 쓰는 파라과이의 영토였다는데 과거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세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파라과이는 이 폭포를 모두 빼앗겼다고 한다. 여전히 이름만은 과라니어에서 유래된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실제로 파라과이에서는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없다.


  대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두 나라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이과수 폭포. 이과수는 큰 물줄기를 따라 275개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진다. 이건 단순히 절벽을 굽이쳐 흐르는 하나의 큰 폭포가 아니라 거대한 물줄기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아르헨티나에서도 구경할 수도 있고, 브라질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이과수 폭포.


  Q. 그럼 이과수 폭포는 어느 나라에서 구경하는 게 좋을까?

  A. 당연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두 군데를 다 가봐야지!

  Q. 그럼 숙박은 어느 나라에서 하는 게 좋을까?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에서?

  A. 이건 여행자의 선호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브라질을 택했다.


  이과수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브라질을 택한 것은 나보다 먼저 이과수를 다녀온 이들의 생생 후기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브라질의 물가가 아르헨티나의 물가보다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값으로 아르헨티나 호스텔에서는 3-4인이 묵는 도미토리에 잘 수 있다면, 브라질에서는 쾌적한 1인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음식 물가도 브라질 쪽이 더 저렴했다. 먼저 다녀온 이들이 심지어 브라질 쪽이 음식도 더 맛있다고 했다.


  고민 없이 이과수에 머무는 모든 날을 브라질 사이드에 묵기로 했다. 이번 중남미 여행에서 브라질은 방문 대상에서 제외된 나라이기도했기에 이과수에서나마 브라질을 며칠이나마 경험할 요량이기도 했다. 이과수로의 입성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했던 터라, 브라질로의 이동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출입국 도장을 받는 것 그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국경 넘는 국경지대가 허허벌판 그 자체였다는 거다.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시내로 이동할 수 있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매우 적었다는 거다. 그렇게 오는지 가는지 모를 버스를 마냥 기다리는 무료한 순간을 경험했다. 혼자서 여행하는 셀프 여행에서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은 물론 예기치 못한 지루함 또한 함께했다.


  그래서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날은 투어버스를 이용했다. 악마의 목구멍은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이과수의 관람 포인트다. 이번 이과수 여행의 베이스캠프는 브라질 쪽을 택했던 터라 브라질에 있는 이과수 국립공원은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국립공원에 가는 일은 또 한 번의 국경을 넘어야 했다. 이 번거로움을 셀프가 아닌 투어버스로 편하게 상쇄시킨 거다. 투어 버스는 개인이 해야 하는 입출국의 번거로움을 덜고 업체에서 관광객들을 일괄 통솔하기 때문에 여행객의 신분으로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를 구경하고 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그렇게 투어를 통해 방문한 아르헨티나 이과수.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투어 셔틀버스에서 만난 두 명의 영국 여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방금 만나고 온 것이지만 이름이 기억 안 나 베티와 그의 친구로 칭해본다. 둘 중 누가 베티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중에 그들의 이름을 다시 들었을 때 심지어 둘 중 누구도 베티가 아니었다. 미안해, 얘들아! 아무튼. 우리는 드디어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본다는 생각에 마냥 신나 있었다. 특히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악마의 목구멍>을 감상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다녀오는 주된 이유이기도 했기에 우리는 이동하는 내내 더없이 고조되어 있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이동할 때에는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진행될 투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모두 들뜬 마음에 남들이 보편적으로 한다는 350페소짜리 투어 말고 650페소짜리 투어를 신청했다. 거의 두 배의 가격이다! 돈을 많이 준 만큼 투어도 당연히 두 배 더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만약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다시 갈 수 있다면 그때는 기본 투어를 택하고, 보트를 한번 더 타고 오겠다.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맛볼 수 있는 보트투어는 폭포의 가장 아래쪽에서 이어진다. 보트를 타고 폭포의 끝에 다다르면 쏟아지는 폭포수의 물줄기를 함뿍 맞으며 이과수 폭포의 시원한 짜릿함을 온몸으로 맛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보트 투어! 추천, 또 추천!


  보트투어의 즐거움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투어 내용은 무척이나 간결했다. 입장을 도와주고 간단한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의 설명을 끝으로 투어의 메인 코스인 이과수 폭포를 가르는 보트를 탄 뒤엔 투어의 멤버가 각각 헤어져 개인 시간을 가졌다. 이때부터 나도 영국인 여자아이들과 헤어져 홀로 이과수를 느끼기로 했다. 나중에 브라질로 돌아가는 버스가 5시에 출발할 테니, 그때 버스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다운 코스와 어퍼코스, 그리고 대망의 악마의 목구멍, 이렇게 코스별로 시간을 배분해 감상하는 게 좋다. 다운은 폭포가 떨어지는 가장 아래를 감상하는 코스이고 어퍼는 떨어지는 폭포의 시작점을 보는 위쪽 코스다. 대부분 다운으로 2시간을 구경한 뒤 어퍼로 올라오며 2시간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악마의 목구멍 2시간을 잡고 보면 좋은 코스였다. 나 역시 애초에 시간 배분을 그렇게 생각했다. 개인 시간은 거의 반나절의 여유가 있었고 그때까지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의 입장을 가장 아래 다운코스의 보트투부터 시작했으니 거기서부터 폭포를 오르며 조용히 이과수를 감상했다. 홀로 폭포수를 바라보며 명상의 시간도 가지며, 온갖 공상과 망상을 하다가 어떤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마음을 비우기도 하며 그렇게 이과수를 온몸으로 흠뻑 느꼈다.


  그렇게 세시 정도에 마지막 코스인 악마의 목구멍에 가는 기차를 탔다. 이과수는 공원 안에서도 기차가 다닐 정도로 넓디넓은 공원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 한번 더 체크해 볼 요량으로 옆에 있던 직원에게 악마의 목구멍에 다녀오는 대략적인 시간을 물었다.


  "올라! 저 이따 5시에 투어버스를 타러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 이거 타고 악마의 목구멍을 보고 오면 몇 시쯤 될까요?"

  "오 이런, 이거 타고 악마의 목구멍에 다녀온다면 이미 5시가 넘을 거야. 5시까지 버스 타러 주차장에 가는 건 좀 힘들겠는데?"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인가! 악마의 목구멍은 넉넉히 2시간이면 충분 관람하고 올 수 있다더니. 지금 이걸 타고 악마의 목구멍까지 갔다가 오면 이미 다섯 시가 넘을 거란다. 이럴 수가!


  "아...... 그렇군요. 다녀오면 혼자 돌아갈 방도를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그래. 어쩌겠어. 여기까지 와서 악마의 목구멍을 안 보고 가는 건 말이 안 되지. 아...... 또 한 번 홀로 국경을 넘어야 하다니..... 나는 그냥 체념하며 기차를 탔다. 그렇다고 악마의 목구멍을 안 볼 수는 없으니까. 그래. 이과수는 이게 메인이란 말이지! 그렇게 조금은 울적하게 타게 된 악마의 목구멍행 기차 안에서 나는 두 명의 브라질인과 합석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기차를 함께 탄 브라질 친구들은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사는 모양새였다. 한 명은 반삭을 하고 얼굴의 반을 덮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그는 덩치가 곰 같이 커서 존재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입고 있는 티셔츠가 그의 몸을 감당하기에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포마드로 머리를 뒤로 쫙 넘기고 민소매를 입은 채 무게가 상당해 보이는 금 목걸이를 하나 차고 있었다. 둘 다 내 주먹보다 더 큰 블링 블링한 알빵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내가 절대 말을 붙이지 않을 만한 인상들. 한마디로 함부로 쳐다볼 수 없는 인상이었다. 한마디로 영화에서 본 브라질 갱스터느낌이었다.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척이나 강렬하게...... 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눈빛이 매우 언짢고 화난 느낌이었다. 그런 눈으로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길래 나도 더 이상 눈을 피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보내는 그들의 눈빛에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오... 올라! (Hola!) 아니, 오이! (Oi!)"


  그래, 안녕 얘들아......? 평소 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을 법한 위협적인 생김새였지만, 같은 기차칸에 올라 함께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무슨 연유인지 우리는 편안하게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둘은 토종 브라질리언으로 당연히 한국어를 할 수 없었고, 영어나 스페인어도 할 줄 몰랐다. 반대로 나는 그들의 언어인 포르투갈어를 전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고 가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급 친해졌고, 그들은 브라질 사람으로 자차로 브라질 로드 트립을 하는 중이라 했다. 그들의 말에 나는 중남미 여행 중이며 오늘은 브라질 호스텔에서 투어로 여기를 왔으며, 다섯 시까지 가야 하는데 악마의 목구멍에 다녀오면 투어 버스를 놓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내 말을 듣더니 자기들도 어차피 브라질 쪽으로 간다며, 이따 호스텔에 자기들이 데려다주겠다고 도 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데 이걸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이건 내 남미 여행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았다.  겪어 보니 이 브라질 친구들은 동생 선물로 귀여운 이과수 마스코트 인형까지 사가는 매우 순한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나보다 어렸다. 좀 많이..... 아! 외국에 누나라는 말이 없어서 다행이다. 얘네한테 누나라는 말 듣는 건, 좀...... 그렇다.


  그렇게 급 친해진 우리는 셋이 함께 악마의 목구멍을 감상했다. 우리는 마치 일행인 듯 사진도 셋이서 같이 찍었다.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돌려 동영상을 찍으며 셋이서 360도 돌면서 악마의 목구멍 관람의 기쁨을 남겼다. 이건 마치 절친여행이었다. 미안하지만 즐거움과 동시에 그들과 찍은 사진은 내게는 인증 사진이기도 했다. 혼자 여행에서 믿을 건 나 혼자였기에,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하나의 인증이기도 했다. 정말 만에 하나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면 이 사진이 그 증거가 되겠지 싶은.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친구들아, 너희들의 순수한 마음을 다 못 믿어서 미안!


  악마의 목구멍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매점에서는 아이들이 물이랑 맥주 사 와서 마시자며 내 것까지 사 와서 건네주었다. 꽤 친해지긴 한 거 같은데 여전히 그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아서 뭔가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에 그냥 속 편하게 얻어먹었다. 내려와서는 아이들의 말대로 그들의 차를 얻어 탔다. 그렇게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브라질 쪽의 내 호스텔로 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 이 아이들 차에는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여긴 아르헨티나 사이드여서 얘네들 브라질 폰도 사용이 안되었다. 와이파이도 없다. 이런 열약한 상황에서 날 데려다주겠다고 한 나의 절친 너희들. 그리고 그 차를 얻어 탄 나.


  그렇게 우리는 길을 몰라도 "일단 고!"의 마음으로 출발했다. 브라질 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다 주먹인사를 건네며 친구에게 묻듯이 편하게 길을 물어보았다. 중간에 얘들이 여행에 쓸 돈을 좀 더 환전하고, 길을 또 물어볼 요량으로 그렇게 파라과이까지 찍고 왔다. 그래.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그렇게 돌아 돌아 브라질 사이드의 내 호스텔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게 한 여덟 시쯤 되었나?


  나를 태워준 고마운 브라질 친구들과는 여기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저녁으로 혼자 브라질 스타일 바비큐인 슈하스코 고기 뷔페 가서 잔뜩 고기를 먹고 왔다. 돌아오니 호스텔 1층 소파에 아까 만난 브라질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내 숙소를 와보고는 시설이 좋아서 여기서 묵기로 했단다. 그런데 어? 문제가 생겼다. 응? 호스텔에 내 방이 없어졌다네? 이게 무슨 일이야?


  호스텔 직원의 말로는 애초에 내가 묵고 있던 독방이 없어지고 지금은 4인용 도미토리만 남았다 했다. 이건 뭐, 애초에 업그레이드 격으로 받았던 독방이라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남았다. 내가 묵은 이 호스텔은 방에 들어갈 때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호스텔 데스크에 남은 카드가 없다는 거였다. 황당한 일이었다. 황당해도 어쩌겠어. 해결되길 기다려야지. 그렇게 난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발 누군가가 체크아웃하기를! 그게 아니면 호스텔 데스크에서 일하는 아이가 다른 카드를 구해주기를!


  그때 <악마의 목구멍>에서 만난 내 절친 중 하나인 브라질 포마드 머리의 아이가 1층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진짜 생긴 것과는 다르게 뉴스를 보고 있어서 놀랐다. 친구야 디스 해서 미안!) 호스텔에서 갑자기 카드키가 없어 방에 못 들어가는 내 상황을 듣고는 함께 카드키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우리는 와이파이를 벗 삼아 구글 번역기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참, 세상 놀랍지? 구글 번역기를 아무리 돌리고 번역을 해도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이 신비로움이란! 차라리 없이 각자 스페인어(또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로 이야기하는 게 더 알아듣기 수월했다. 우리가 친해진 게 정말 신기하다니까?


  우리는 이미 절친이 된 이후였기에 구글번역기로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것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부터 파라과이, 브라질호스텔로 넘어오며 약간의 유대까지 쌓인 상황이랄까? 그때였다. 오전에 함께 투어버스를 탔던 베티가 호스텔에 돌아온 거다. "타아 안~!" 하고 나를 부르던 베티! 베티 이름 베티가 아니라 캐티였음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진짜 미안해 친구들아.)


  "타안!! 네가 돌아오는 버스에 타지 않아서 정말 걱정했어. 혼자서 어떻게 온 거야?"

  "미안해! 악마의 목구멍에 갔다가 투어버스 시간을 놓쳤어. 대신 여기 포르투갈 슬랭을 쓰시는 말 안 통하는 브라질 아이들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올 수 있었어."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다가 투어버스를 놓치고 대신 차를 태워준 절친을 만난 내 일대기를 들으며 너무너무 재미있다며 호스텔이 떠나갈 듯 꺌꺌 대며 웃어대던 캐티...... 이후에도 난 계속 기다렸다. 누군가 열쇠를 반납하기를. 부디 얼른 방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자고 싶다고.


  호스텔 데스크에서 일하는 관리인도 나의 이 황당한 상황에 계속해서 미안함을 표했다. 그러더니 샤워라도 하고 있으라며 샤워를 할 수 있는 빈 방으로 나를 잠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때 브라질 포마드 친구가 나의 짐을 들어줘서 리셉션에서 일하는 관리자와 나, 포마드 친구 이렇게 셋이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빈 방, 그 앞까지 함께 갔다.


  관리자가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어???"


  무언가 있다! 그곳은 빈 방이 아니었다. 어? 우리는 셋 다 문을 열자마자 반사적으로 멈춰 섰다. 그러더니 무언가가 우리의 눈앞을 휙 하고 지나갔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분명 2층 침대가 세 개나 놓인 6인실의 다인실 방이었는데? 여긴, 호스텔이잖아? 그는 매우 빠르게 이동했으나 우리의 눈앞에는 이미 느린 화면의 슬로우가 걸린 듯, 우리는 그 정체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헐벗은 알몸이었다. 하나? 아니, 둘이었다. 두 명의 알몸, 즉 두 명의 자연인. 그렇다. 리셉션에서 일하는 관리자와 나, 포마드 친구, 이렇게 방문을 함께 연 셋은 그 안에서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자연인의 모습, 그 자체의 남녀가 하나가 되는 장면을 라이브로 함께 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방문에 놀란 그들이 빠르게 결합을 해체하여 도망가는 순간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우리 셋은 놀라서 멈춰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곧바로 문을 닫을 생각도 못할 정도로 얼어버렸다. 물론 그 순간 놀란 건 우리 셋 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곳에서 그만 자연인이 되어버린 그들 역시 우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 서로 몸을 숨기려 날뛰기에 바빴다. 멍하게 놀라있던 우리는 순간 정신을 차려 다급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문을 닫은 우리는 그제야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마구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알몸으로 하나가 된 그들과 웃음으로 하나가 된 우리 셋....... 아! 많이도 웃었다. 정말 잊지 못할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에도 안데스 같은 산맥이 있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