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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Mar 27. 2020

애착: 회피형, 쓰레기인가? (상)

-재활용 안되는 쓰레기는 폐기처분합시다.



회피형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물론 언뜻 볼 때, 회피형은 쓰레기 같기는 하다.

인정한다.

회피형은 상처 주는 행동을 하기 쉬운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당해 한참 아픈 사람들에게 회피형은 인간 말종, 쓰레기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혹자는 이를 박박 갈면서 회피애착이란 이름으로 쓰레기를 감싸주지 말라고 한다. 잠수타고 바람피는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애착이란 심리학자들이 몇십년간 연구하고 통계를 내며 검증해온 개념이다. 그들의 행동이 잘했다는 게 절대 아니다. 당신이 겪은 아픔과 불안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회피형은 애착의 한 형태로 존재하고, 그들이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과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 뿐이다.


반대로 회피애착이라는 이유 만으로 사람을 거르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애착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안형에게 회피형을 만나지 말라는 말은 설레는 사람을 피하냐는 소리냐, 끌리는 사람은 쳐내고 안 끌리는 사람과 만나는 게 연애냐고 하면서. 당신이 불안형인데 꼭 회피형을 만나야겠다면 내가 막을 수야 없겠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다 불안형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을 확률이 너무 높다.


오랜 시간 회피형으로 살아왔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알고보는 지금에야 나의 행동이 분명 상처가 되었을 것을 안다. 내 불안정한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것도, 나를 쓰레기처럼 볼 수 있다는 것도.



최선을 다했던 과거의 나를 쓰레기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때 내가 택한 방법들은, 도망은, 타협은, 인내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제서야 우리가 나아질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 미안하다.

미숙했던 내가 너에게 주었을 아픔이 안타깝다.

과거의 나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회피형에 대한 카더라 통신들, 고해성사 같은 자기고백들, 카톡과 메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담 요청에 줄줄이 적힌 회피형과의 연애후기들은 받아들이기 전에 좀 비교분석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경험담은 주로 한 명의 회피형을 관찰하며 얻은 현상학적인 묘사와 서술로 이루어져 있고, 덧붙여 회피형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안정형과 불안형들의 분노와 한탄이 굉장히 많이 섞일 수밖에 없다. 회피형 애착 유형이란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각 케이스와 만연한 사회적 통념에서 팩트를 선별해내야 한다.





이제부터,
회피형과 쓰레기를 구별해 봅시다.





1. 바람을 잘 피운다. / 연인이나 부부가 아닌 사람과의 육체관계에 관대하다.


: 이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나 사실이다. 확률이 높다.

회피형이니 바람을 피울 거라는 예언이 아니고, 회피형이 바람피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회피형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친밀함의 정도가 낮은 새로운 연인 관계를 찾아 나서게 하거나 다른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과의 육체적 관계로 이어질 확률이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과 통계로 밝혀진 수치를 부정하는 것은 무용하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는 말이, 모든 흡연자가 폐암으로 죽을 거라는 저주가 아닌 것처럼.


절대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 외도 등의 행위를 회피애착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동은 선택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쓰레기다.  





2. 헤어지고 나서 후폭풍이 없다.  


: 아니다. 회피형도 이별 후유증을 겪는다.

회피형은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다. 회피형도 헤어지고 나서 울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슬프고, 사람의 빈 자리는 허하다. 이별통보를 했든지, 받았든지, 결심하기까지 과정에서든지 회피형도 당연히 슬프다.   


다만 회피형은 이별을 수용하고, 후유증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빠를 뿐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별을 해도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3년 만난 연인을 일주일만에 칼같이 정리하고 제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 저게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회피형이 관계를 빨리 정리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삶과 독립성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 연인 때문에 자신의 삶이 흐트러지는 건 회피형이 무서워하는 바로 그 모습이니까. 그래서 얼른 삶을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고,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연애의 기간과 간격이 불안형이나 안정형에 비해 짧은 편이기도 하다.


Q. 회피형은 이별통보를 받아도 쿨해 보이던데요?

A. 회피형 Says: 슬픔, 분노… 어떤 방식으로든 감정 드러낸다는 건,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잖아요.

회피형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지자는 소리를 들었는데 충격적이고 슬픕니다. 하지만 그걸 굳이 표현할 이유가 없는 거에요. 더이상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이 사람 때문에 감정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는 거죠.

너와 나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렇다면 내 멘탈도 감정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네 앞에서 쓸데없이 징징거릴 필요가 없다. 고 판단하는 겁니다. 끝났으니까요.





3. 스킨십을 싫어한다.


: 명백한 오해다. 절대 스킨십을 싫어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 세대만 보더라도 회피형이 수두룩빽빽하다. 저 때까지만 해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한 행동이고, 표현은 절제하라는 등 회피형 성향을 갖게끔 하는 사회적인 통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회피형이 스킨십 자체를 거부하고 피했더라면 우리 중 반절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스킨십이나 신체접촉 자체가 싫었으면 바람을 필 이유가 있겠는가.


회피형도 스킨십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특정한 종류의 스킨십을 선호한다.

그들은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스킨십과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스킨십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후자의 경우 선호도와 빈도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같이 걸어가는데 손 잡고, 팔짱 끼고, 어깨에 기대고, 포옹하는 스킨십은 성적 접촉이 아니라 정서적인 친밀감에서부터 온다. 회피형은 친밀감과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왔기에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스킨십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버님, 할아버님들이 주로 하시는 “아니 이 여자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왜이래!” 종류의 스킨십을 피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4. 침묵하거나 잠수를 탄다.

  

: 강의를 할 때 들어보면 학생들을 가장 미치게 하는 회피형의 문제 행동 중 하나다. 실제로 오랜 기간 회피형 애착을 보유하고 있던 나 또한 20대 초중반까지 가지고 있었던 행동 유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받아들이자. 이미 상대방은 도피행동(침묵/단답/잠수/외면 등)을 했다. 이는 당신을 매우 화나게 하겠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된다.


도피행동의 원인을 파악해야 회피형과 쓰레기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 이상으로 서로 가까워졌다고 느끼거나 갈등 상황에서부터 탈출 수단으로써 도피를 선택했다면, 회피형 애착의 소유자가 맞다. 대체로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해결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해소되기까지 다양한 상호작용과 감정적 반응을 수반한다. 회피형이 제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거리나 속도를 서로 맞추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화로 풀어나가면 되는데 회피형들은 조율/타협/협상 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문제 해결 과정 자체가 불편하다. 회피형의 갈등 해결 방식은 관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좋은 부분을 함께 하는 것이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 들어갈 감정적 투자, 에너지, 주고받을 상처 등에 회피형들은 지레 겁먹고 놀라서 도망간다. 사람한테 많이 치이고 상처받은 경험때문에 사람만 봐도 무서워서 도망가는 유기견들이나 길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본인 편하자고.

본인 잘못인데도, 사과하기 싫어서. 잠수 탔다가 돌아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쓰레기다.

이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다.

폐기처분해야 한다. 삶에서 내다 버리자.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중요하다. 굉장히 많은 불안형들이 혹시 이번에는 다를거야, 상황이 안 좋았던 게 아닐까, 무슨 상처가 있었나 봐, 이 사람만큼은 아니겠지, 하며 쓰레기에게 마음을 쏟는 실수를 한다. 그런 거 없다. 이번에도 똑같고, 상황과 전혀 상관 없고, 상처는 누구나 받으면서 살아가며, 이 새끼도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당신은 쓰레기통이 아니다.

하지만 쓰레기를 안고 있으면 쓰레기통이 아니었던 것도 어느 순간에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계속 쓰레기를 안고 살아가면 인생은 고난과 역경으로 점점 채워질 수밖에 없다.

계속 들고 있어봐야 내 손만 더러워진다.

제발 부탁이니 폐기처분하자.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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