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첫사랑에게 바치는 진혼가
사랑을 몰랐더라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사랑을 할 줄 몰랐더라면, 상처받지 않고 슬프지 않았을 테니까.
중학교 3학년 때, 눈물 콧물 다 빼게 한 첫사랑과의 연애가 남긴 기억이다.
어렸을 적, 실연의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생각이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이라면 깊은 감정적 유대관계를 갖는 대상, 특히 연인에게는 애착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
좋아하고 사랑하며, 기대고 싶고, 상대방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은 내가 갖고 싶지 않아도 생길 수 밖에 없는 마음이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관계란 이렇게도 힘든데, 왜 내 마음은 멋대로 사랑에 빠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애착은 또 다른 의미에서, 첫사랑이다.
상상 이상으로 무의식은 많은 것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기억은 감정,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 삶에 뿌리내린다. 누구와 함께 한 어떤 경험이든 … ‘처음’이라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크게 다가온다. 처음 접했을 때의 경험이 이후 무언가를 다시는 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고, 살아가는 내내 어떤 것을 추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대상은 대부분 엄마다. 나와 몸으로 연결되어 있고, 보호해주며, 무엇을 하든 사랑해주는 사람. 정말 보잘것없고, 먹고 자고 울고 웃기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데도 신생아가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내진 않으니까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해준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알게 된다. 그 사랑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 역시도.
인간은 생으로부터 애정과 관심에 대한 갈망이 내재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보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건 없는 애정을 받길 내심 바란다. 친구에게서든 연인에게서든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애착을 형성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과거 내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재현해내는 것이다.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나는 기억하지도 못할 그 때에 느꼈던 바로 그 첫 사랑.
다만 연인은 나의 부모가 아니고, 나도 그의 아이가 아니다. 그와 나는 타인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반드시 서로 사랑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기로 했다면, 이는 우리의 선택이고 믿음을 기반으로 한 약속이다.
안정애착은 내가 당신과 흔들림 없이 애정을 주고받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토대다.
애착은 본능이다.
반드시 재채기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재채기를 해야겠다고 결정하지 않는다. 아무도 언제 어느 때에 재채기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지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필요하니까 나오고, 나오니까 하는 거지.
애착도 재채기와 같다.
애착이란 감정과 본능으로 작동하지, 사고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성과 논리로 통제할 수 없다.
이는 애착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작동하는지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애착의 작용은 감정뇌, 포유류 뇌라 불리는 변연계 쪽에서 관찰된다. 이 부분은 인간으로서의 행동보다는 동물로서의 행동을 담당한다. 감정뇌는 인간이 아닌 상당수의 포유류 또한 보유하고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사칙 연산을 못 하고, 책 한 권도 못 읽는 우리 집 강아지조차 나에게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할로우가 원숭이를 데리고 한, 정말 유명한 애착 실험이다. 실험에서 원숭이는 밥이 나오지 않아도, 인형에게 다가가면 다치는데도 헝겊인형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랑받는 느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애정, 관심, 친밀감을 추구하는 것은 배고픔이나 아픔과 같은 생존의 본능도 이겨낼 만큼 강한 감정이다.
뼈아픈 이별 후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참 동안 먹지 못하고, 자지 못 한 채 계속 과거의 추억만을 돌이켜보던 지옥같았던 시간을 보내던.
애착 유형은 환경에 대한 생존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애착 유형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kg을 쓰고 어떤 나라에서는 lb를 쓰듯, 안정형과 불안형, 회피형이 애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지가 다른 것이다.
애착, 즉 애정을 추구하는 건 본능이다.
애착 유형은 주어진 상황에서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다양한 상황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안정형 애착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또한 안정애착만이 제대로 적응한 방식도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야 안정애착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이지만, 이는 현대사회 대부분이 평화롭고 생존에 위협이 적은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정애착이란 내가 신호를 보내면 보호자가 나를 보살펴 줄 거라는 신뢰를 가진 상태로, 안전한 환경에서는 당연히 관계를 맺을 때 유리하다.
반대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자신이 신호를 보내면 언제든지 보호자가 달려와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안심하고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들이라면, 십중팔구 죽는다. 날아오는 총탄을 믿음과 신뢰가 막아주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보호자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아이, 즉 애정과 관심의 증거를 지속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아이(불안형)가 살아남는다. 혹은 어쩔 수 없이 부모와 떨어져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불안형 애착인 아이들은 울고 난리 치느라 힘을 다 쓰겠지만, 보호자에게 무관심하던 아이들, 즉 친밀감과 애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던 아이(회피형)는 어떻게든 혼자서 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불안애착과 회피애착은 각각 진화론적 의미가 있다.
특정한 생존 방식을 배운 것은 우리의 선택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했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지금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도 아니고, 극한상황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 있어 극한과도 같은 상황은 다양한 물리적/심리적 형태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상처, 마음 속 깊은 곳의 전쟁과 평화는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고, 이에 객관적인 경중을 재는 행위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당신의 애착이 불안형이거나 회피형이라면, 그건 절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처음 경험한 세상이 다른 사람보다 더 어려웠고, 상처가 깊어서 그랬을 뿐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애썼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
실제로 시간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환경이 바뀌면 생존 방식 또한 그에 적합하게 바꾸는 것이 맞다. 그래야 상처에 대해 아파하고, 치료한 뒤 회복하고 나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쉽지, 한번 배운 생존 방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순간에 젓가락질 방법을 바꾸거나 안 마시던 물 2L를 하루 아침에 마실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뇌는 과거 힘들었던 환경에서 학습한 생존 방식이 현재의 자신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멈추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성을 동원해서 감정뇌에게 새로운 방식을 알려줘야 한다. 의식적으로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이 자동적으로 나올 때까지 연습, 연습, 또 연습해가며.
애착이란 기본적으로 지속성이 높은 특성 중 하나다.
놓아두면 몇 년이든, 몇 번의 연애를 거치든 변하지 않는다. 올바른 관계를 수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연애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섹스에 빠지든, 감정에 휘둘리든 결국 관계에 절망한다.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주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은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고통스럽다.
관계에서의 안정이 삶의 모든 면을 바꾸어 줄 거고, 다 잘 되게 해준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착을 말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삶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에 애착이 흔들리면 삶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관계와 감정과 사랑에 휘둘리면서.
안타깝게도 변화는 어렵고,
다행스럽게도 변화는 가능하다.
애인과 싸우고 열 받아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채 다음 날 회의에 지각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왜 이렇게 모자란 사람인지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괜한 오해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싸움, 하지 않아도 될 후회를 막을 수 있다.
세상에 나를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은 없을 것 같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다 필요 없고 지금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끔찍한 압박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삶은 원래 혼자 사는 거고, 평생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공허함에 몸부림칠 필요도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된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
관계는 원래부터 그렇게 소중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화라
하는 것은 아는 것과 다릅니다.
불안애착에 대한 이야기와 불안애착인 내가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고요.
회피애착에 대한 이야기와 회피애착인 내가 하는 행동도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애착에 대한 글을 읽어도 막막하고,
안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못하고,
좌절감과 실망을 반복하셨던 느꼈던 분들을 위한
애착 클래스를 개설했습니다.
그동안 문의해주셨던 분들은 하단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http://www.sssd.co.kr/m/webMobileDetail.do?classIdx=9413&cmd=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