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작년보다 더 덥다고 한다.
5월인데도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넘어서고 있어 아직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사무실에 앉아 옷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고 있다.
어릴 때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사실이었으니까. 1년 12달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면 3달씩이 각 계절이었다. 3,4,5월은 봄이고 6,7,8월은 여름. 이런 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4계절이 뚜렷하던 우리나라가 아니다. 기상학적으로 이미 올해 여름은 시작되었다.
조만간 퇴직을 앞두고 있어 나는 아이들과 어디라도 여행 갈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달력을 보면서 주말, 연휴, 아이들 학교 방학을 가늠하며 세우는 여행 계획으로 일상이 잔잔하게 설렌다.
올해는 꼭 하고 싶던 스타일로 여름휴가를 보내야지. 호캉스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은 살짝 무시하기로 한다.
강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올해 연휴를 이용하여 처음 강릉에 가봤다.
아직 사람들도 많지 않아 바다색도 너무 예쁘고 평화로운 그곳에 반했나 보다.
올해 여름휴가 장소는 강릉이다.
강릉의 많은 해변 중에서 너무 붐비지 않고 주변에 가게도 적당히 있는 곳으로 정한다.
다음은 숙소이다. 펜션은 항상 사람을 배신하지만 올해는 운이 좋으니 한번 믿어 보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펜션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휴가는 대강 이러하다.
숙소에서 1-2분 걸으면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 아침에 깨면 기지개 한번 하고 해변을 걷는다.
수영복 입고 수건 챙기고 물 한병 들고 큰 준비 없이 슬슬 나가 바다에서 신나게 몇 시간 논다.
밥때가 되면 또 젖은 채로 수건 두르고 빈 물병 챙기고 슬슬 걸어 들어와 바로 샤워를 하고 맛있게 밥을 먹는다.
한숨 늘어지게 잔 후에 또 수영복 입고 수건 챙기고 물 한병 들고 놀러 나간다.
이렇게 며칠 논다.
빨리 펜션을 예약해야 한다.
요 며칠 벌써 여름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고 있지 않은가? 서두르지 않으면 원하는 스타일의 휴가는 어려워진다.
적당한 곳을 골라 예약 현황을 본다. 모두 초록색. 예약 가능. 와 골라갈 수 있겠다.
그러나 펜션 고르기 쉽지 않다. 무엇을 구비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실제 방은 홈페이지의 방과 그냥 다른 방인 경우가 많다.
펜션 예약은 표준계약이란 게 없는 걸까? 같은 기간인데도 펜션마다 취소 수수료가 다르다.
극성수기의 경우 가장 심한 곳은 취소 기한도 없이 '취소 시 위약금이 부과되니 신중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즉, '극성수기에 미리 찜해두고 취소하면 예약일까지 며칠이 남았든지 말든지 무조건 환불은 불가'라고 번역된다.
좀 위험하다.
숙소도 적당하고 취소수수료에 대한 규정도 비교적 합리적인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름 한 철 벌어 1년 생활하는 펜션 주인들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괜히 내가 희생될 거 같다.
퇴직 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구상하느라 요즘 바쁘다.
구체적인 계획을 몇 가지 고민하고 있다.
그중에 내 전공인 심리학과 공무원을 사직한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덫에 걸린 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고 마음 근육을 길러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실제로 하나씩 하나씩 실행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거다. 공무원을 사직하게 된 과정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차마 주변에 말은 못 하겠고 여기 오니까 속이 뚫린다며 모임을 만들자는 댓글도 여럿 보았던 차다.
생각만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막막했는데 관련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인 것처럼 믿으면 진짜 이루어진다더니 잠깐의 검색으로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강의를 찾아냈다.
강의료가 비싸다. 게다가 일요일에 강의한다. 잠깐 고민하다 신청한다.
혹시 몰라 환불규정을 읽어본다.
그런데 이건 뭐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 완전히 소비자 지향적이다.
이런 취소 규정은 국가에서 하는 강의같이 이익을 남기지 않는 강의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수업 시작 전까지 취소 시 전액 환불하고, 수강 차수 1/3 경과 전 취소 시 수강료의 2/3에 해당하는 금액 환불. 이런 식이다.
개인 사업체인데 아주 합리적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합리적인 규정은 학원 관련 법률의 환불규정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수강료와 관련하여 관련 법령이 있는 줄도 모르거나 또는 알아도 무시하고 영업하는 사람들 많다.
일반 상식에 부합하는 환불규정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은 역시 살만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금쪽같은 돈을 급한 마음에 클릭, 클릭, 신청했다고 해서 "이젠 내 돈이다. 취소는 불가"하는 1년 농사에 대한 불안함과 절박함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통장에 현금 수북이 쌓여도 가난하다.
"강의 시작 전에 요청하면 무조건 환불합니다.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인간의 상식을 반영한 표준 계약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가?
통장에서 돈은 꺼내 줄지언정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거래에 대한 합리성,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자신감까지 갖춘 아량과 배포.
네 것을 바로 내 것으로 한다고 부자가 되지 않는다.
진정 부자는 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당장은 상대방이 고민하고 결정하기 어려워해도 내가 가진 것을 믿고 기다리면 상대방이 내 가치를 믿고 따라올 거다.
여유로움과 내 안의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진짜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