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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n 16. 2019

8년 전 메모

공무원 사직하기까지 심리 추적기(35)

35   8년 전 메모



바쁜 일상의 계속이다.

아이들  등교 후 3시간 정도 습작-1시간 정도 운동-1시간 정도 식사와 휴식-1시간 정도 피아노 연습- 외부 처리- 저녁 준비-나머지 시간은 아이들과 지낸다.

소모적인 약속은 잡지 않고 기운 빼는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는다.

잠깐씩 시간이 남을 때는 집안 물건들을 정리한다.


서재에 먼지 쌓인 책이나 이제는 소용 없어진 자료들, 옛날 수첩들을 정리했다.

그러다 2011년 손으로 '미니작가노토'라고 쓴 작은 노트를 발견했다.

기억이 난다.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은 노트가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 짧은 시간에 휘갈겨 쓴 듯한 온갖 글쓰기 소재, 다짐들이 빼곡하다.

두서없지만 그중 한 가지를 그대로 옮겨 본다.




어른을 위한 동화

모든 이를 위해 파리떼가 아닌 특별한 소수가 되고 싶은 사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기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만을 동경하는 동물 세계(동물 연구 필요)

동물 조직에서 영혼없이 일하는 중간 관리자

처음 조직에 합류하여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신입(?) 동물

탁상행정하고 아부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물 설정

경쟁하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조직에서 변해가는 인물

자신의 천성을 쫒아 조직을 떠나는 주인공

주인공을 자극하는 동물(매) 동물 연구 필요

동물 조직에 적을 두고 안정과 정기적으로 먹이를 제공받는다는 이유로 인생을 저당잡힌다는 것은 비극이다. 단 한번뿐인 삶. 비상하리라

조직이 나쁜 것은 아니야. 적성에 맞는 이에겐 최선의 선택. 그러니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무리를 벗어나려는 이를 저지하고, 조직이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무리들도 조명해야

서열 상승 계기 있었으나 미련 없이 떠나

나는 항상 옳다. 거침없이 나아가리라




동물세계를 배경으로 주인공(새)의 갈등, 결심 그리고 대강의 줄거리 사이에 드문드문 나의 다짐도 보인다.

8년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인공(새)이 조직을 뒤로하고 자기 길을 가기로 한 것처럼 결국 나 사직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

이 매거진 전체의 이야기가 8년 전 메모에 이미 예고되었던 셈이다.

8년의 시간 동안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실행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해 본다. 8년은 긴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최선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8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론이었으니 그때 결정했어야 하는데 같은 미련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나는 요즘 온갖 공모전에 참하려고 하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공모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재밌다.

솔직히 사직을 하고 매거진을 다시 발행하면 브런치가 난리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부끄럽다.

세상이 나만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바쁜 세상이다.

브런치에 큰 반응은 없어도 다행히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퇴고를 거쳐 점점 글이 완성되는 과정이 즐겁다.


사직한 지 3주가 지났는데 아직 좀 더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경미하게 문득문득 두렵다. 그럴 때면 마법의 주문을 외다. '너무 많생각하지 마.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마. 오늘 딱 하루 열심히 생활하는 거야'






심리 추적기 매거진(5) 부모님 그 후 이야기


5편에서 밝혔듯이 나는 사직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먼저 사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계속 적당한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는데 저녁 엄마한테서 사진 한 장이 왔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엄마 아빠에게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 상실을 통보한다 문서였다.

그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들통이 나다니...

엄마는 사진만 보낼 뿐 전화가 없다.

바로 전화했다가는 싸울 것 같다. 나는 고민하며 하루를 보냈다.

고민은 오래 하면 안 된다. 다음날 오전에 바로 전화를 한다.

엄마 목소리 평온하다.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명히 화가 났을 텐데

하루의 시간 동안 엄마는 마음을 정리한 듯하다.

'어린애도 아니고 그동안 얼마나 고민을 했겠나. 이미 사표도 썼고...'이렇게

"그래 신서방이랑은 잘 상의했고? 그럼 됐지. 그동안 수고 으니까 엄마가 밥 사 줄게"

갑자기 머릿속에 감돌던 묵직한 기운이 사라진다.

그 사이 나를 옥죄고 있던 우울함의 원인이었구나.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나의 유일한 고민은 해결이랄 것도 없이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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