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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n 27. 2019

나는 대기업 임원의 아내입니다

나는 나름 잘났다고 자부할 수 있는 여자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대학 때도 미팅에 나가면 인기깨나 있었다.

대학 졸업 직 후 몸값 비쌀 때(?)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는 어른들의 의견도 있었으나 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몇 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1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남들 다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한다.


입사 후 1년 남짓 지났을 때 어른들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외지에서 혼자 사는 집안 조카가 항상 신경 쓰였던 분의 주선으로 우리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지방에서 자랐지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대학입시에서 최고 점수를 자랑하던 서울대학교 공대에 입학을 했으니 시골이었으면 현수막이라도 걸릴 일이었지만 부모님은 지방이지만 나름  도시였던 마을의 품격을 고려하여 그런 것까지는 자제하신 듯하다.

남편은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마친 후 이 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회사에 간부급으로 입사한다.

한마디로 남편은 잘난 남자였다. 집안의 자랑이었고 부모님의 자부심이었다.


햇살이 부서지던 여름 어느 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남편에게서 아우라를 보았다. 후광이라고도 하는 아우라를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보여주는 다정함이 아니라 맑은 느낌의 다정함이었다.

우리는 짧은 기간 열정적으로 연애하고 다음 해 결혼한다.

온갖 시사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아빠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혼인신고를 하라고 했다. 혹시나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면서. 이제와 생각하니 참 재밌는 발상이긴 한데 다행히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사기꾼도, 유부남도 아니고 아빠가 즐겨보는 추적 60분 류에 나올 만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남편은 연애 기간 동안 보았던 것보다 더 좋은 품성에 더 훌륭한 인격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남편은 젊은 나이에 상무가 되었다. 남편은 한마디로 잘 나가고 있었다.



나는 결혼한 다음 해 딸을 출산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들을 출산한다.

나는 매일 새벽 아이들을 깨워 등교시킨 후, 왕복 3-4시간 먼 거리 출퇴근을 하며, 아이들 건사하고, 우리 가족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육아도우미, 가사도우미, 유치원, 학교, 학원 각종 선생님들, 심지어 택배 아저씨까지)을 관리한다. 집안의 모든 물품을 관리하고 장을 보고 매일 저녁 아이들 먹거리를 준비하고 아이들 학습을 관리하고 진학할 학교를 알아본다. 유치원과 학교의 안내장들을 확인하고 사인을 한다. 학교행사와 봉사활동은 당연히 내 몫이다.

그 사이 나도 승진한다. 안팎으로 고된 삶이 지속되었다.


남편이 임원이 되었을 당시 나는 회사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이 상무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실감하지 못하는 와중에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걱정되었다.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치다꺼리를 내가 다 하고 있는데 그나마 코딱지만큼 하는 집안일도 안 하면 어쩌지? 지금도 바쁘고 고달픈데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그날 복잡한 심경 속에 일찍 잠들며 '나도 분발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원래도 바쁘던 남편은 상무가 된 후 역시 더 바빠졌다. 처음에는 몇 번 싸우기도 한 것 같다. 나도 승진해야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이유였다. 나는 두려웠다. 정말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딱 두 가지만 부탁했다. 자꾸 놓치게 되는 것. 아들 이발과 주말마다 손발톱 깎아주. 나머지는 모두 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마저도 포기했다. 남편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남편이 처음 임원이 되었을 때 문득문득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평생 안 그러던 사람이 가끔 나와 아이들에게 짜증도 내는 것 같았다. 신임 임원은 회사에서 한꺼번에 시선을 받고 새로 생겨난 일에, 임원으로서의 품위까지 익숙해져야 했다. 나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남편은 그나마 주말에는 좀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남편은 생전 처음 골프라는 것도 배워야 했고 임원으로서 품위를 갖추기 위해 가끔 쇼핑도 해야 했다. 승진 초기 잘 차려입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편은 갑자기 정장을 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처음엔 우스웠다.


나 역시 일주일 내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집에서 티도 나지 않는 온갖 일들을 처리했다. 나는 지치고 힘들었다. 산삼이라도 한 뿌리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임원이 된 후 남편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나는 돈 쓸 시간이 없었다.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남편은 잘 나가는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그즈음 나는 점점 체력은 바닥나고 삶에 대한 회의도 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승진에 대한 생각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집에서 나의 역할은 점점 커지기만 하는데 회사에서조차 승진하면 그 상황을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사직에 대한 고민은 어느덧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커졌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오랜 고민 끝에 사직하기로 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다.

그리고 남편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편에게 투자하기로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분야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몰입하고 있었다.

노동의 측면에서 나는 그런 남편이 부러웠다. 그리고 투자할만한 가치를 보았다.


나는 대기업 임원의 아내이다.

이렇게 말하면 취집 했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나는 '취집'이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지만  집안에서 안주인의 중요한 역할을 취집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래 받아들이겠다.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가정이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기 역할을 다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이 나라가 잘 돌아간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항상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안주인의 역할을 '취집'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래 받아들이겠다.

나는 대기업 임원의 아내이지만 그 말은 나를 설명하는 복잡한 입체도형의 한 개의 측면일 뿐이지 나를 설명하는 평면도형은 아니니 공격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만약 사모님 소리나 들으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적당히 친구들에게 밥이나 사면서 가끔 백화점에서 그릇이나 사다 수집하고 아이들에게 비싼 고기요리 해주면서 그냥 그렇게 적당히 즐기면서 살 수 있었다면 여러 사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임원의 아내가 아닐 때는 환상이 있었다.

TV 드라마의 잘 꾸며진 세트장이, 인테리어 잡지의 잘 꾸며진 집들이 끊임없이 그런 환상을 부추겼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무엇을 사든, 무엇을 하든 가성비를 먼저 따지는 보통 집안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나름 잘난 여자가 더 잘난 남자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조력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름 잘난 여자가 사회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왜 가정의 구심점이 되기로 했는지, 그 와중에 나만의 자아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평범한 여자가 대기업 임원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한지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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