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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n 27. 2019

사모님들의 외출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말 '사모님'

남편 회사와 관련한 사람들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남편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때문에 담당 간호사가 전화해서 '사모님~'하는데 정말 어색하다.

남편이 임원이 된 지 벌써 2년째인데 그 '사모님'이란 말은 아직도 친해지기 어려운 말이다.

'사모님'이란 말은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재밌지 않은가? '사모님'이 국어사전에 있다는 것이.

국어사전에 대통령님, 장관님이라는 말은 없다. 그런데 사모님은 있다. 국어사전은 국민들의 변하는 언어습관을 반영하며 주기적으로 수정한다. 그러니 대통령님, 장관님보다 사모님이 더 익숙한 표현이라는 거다.

그런데도 누군가 불쑥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네?" 하면서 깜짝 놀라니 나는 언제쯤 진짜 사모님이 될 수 있을까?


그 어색한 이름. 사모님들이 총출동한 적이 있다. 남편의 회는 평직원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 임원이 되면 부부동반으로 축하연을 개최한다. 예전에는 호텔에서 아주 성대하게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경제상황이라든지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여 간소하게 하는 추세이다. 남편의 축하연도 회사 내 로비를 막고 작게 했었다.

축하연이 있는 날. 부인들이 그 날만큼은 예쁘게 꾸미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낯선 전화를 받고 집 앞에서 대기 중인 검은색 세단에 올라탄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운전기사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가방을 받아주고 문을 열어준다. 처음으로 사모님 대접을 받는 순간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신임 임원에게 운전기사가 배정되지 않는다. 그날 하루만 특별히 운전기사의 에스코트를 받는 거다.-

회사까지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물어볼 말도 없는 초짜 사모님은 어색하기만 다. 축하연 장소에 도착하면 역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vip라고 적힌 이름표를 주고 동선을 안내한다. 그 날 사모님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편이 임원씩이나 되는데 일조한 부인들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된다. 그런데 다소 당황한다. 나름 회사에서 워크숍같은 큰 행사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는 나도  넓은 연회장에서 각자의 명패가 붙은 자리에 착석하는 거 부터 상상했는데 스탠딩 파티가 펼쳐진다. 외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샴페인을 들고 다니면서 막 웃으면서 떠들고 있다. 이런,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낯선 곳에서 한 손에는 샴페인을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서 남편 옆에 딱 붙어 있다. 어색하지 않은 척 웃는다고 웃고 있었지만 아마도 썩소였으리라.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상황에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그리고  재미있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그런 큰 행사가 처음 부인들은 촌스러움을 풍길 수밖에 없다. 집에서 알뜰살뜰 살림하고 가족들 건사하다가 갑자기 차려입는다고 입은 유행 지난 스타일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어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다행히 평소 출근룩이 있었기에 갑자기 꾸민 듯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역시 파티는 거의 경험이 없었기에 연회장에 입장하여 모두 자리에 착석하기 전까지 와인을 마시며 대기하는 상황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추운 날씨여서 나름 괜찮은 외투를 걸쳤는데 더운 실내에서 외투를 벗어야 하는 상황까지 계산하지 않은 실수로 외투를 벗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선 나 역시 초보 사모님 티를 팍팍 내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탐색전이 시작된다.

저 사람들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일까? 어떻게 저렇게 친할까?

저 사람은 나이가 몇일까? 나보다 어릴까?

저분은 나이가 정말 많이 보인다. 혹시 아저씨가 막차 타듯 임원이 될 걸까?

그 와중에 정말 짠해 보이는 분이 눈에 띈다. 과도한 의상. 긴 부츠가 정말 당황스럽다. 불편한 듯 남편 옆에 서 있는 그녀의 마음을 그분 남편이 좀 헤아려 주었으면 좋다. 그 간 자기 돌볼 시간 없이 가족에게 헌신한 그녀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드디어 불편한 스탠딩 파티가 끝나고 자리에 앉는다. 온갖 이벤트가 진행된다.

전반적으로 행사의 취지는 두 가지다.

첫째, 남편이 임원이 되는데 사모님들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정말 감사드린다.

둘째, 그런데 이 임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아시는가? 앞으로도 쭉 잘 부탁드린다.

아무 내색 안 했지만 나는 앉아 있는 내내 불편했다.

뭘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 있는 부인들 모두 자기 일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나는 그때 이미 안팎으로 내 능력에 넘치게 일하고 있었다. 나처럼 불편한 생각을 한 부인들이 분명히 있었을 거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남편을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회사에 임원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사모님들이다. 모두 내면의 불만을 은근한 미소 속에 숨기는 전략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초보 사모님들의 인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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