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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n 28. 2019

남편 월급 관리

남편 회사가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연봉, 정기 보너스, 특별 보너스는 항상 관심거리이다.

가끔 회사에서 무슨 실적 호조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수입같이 극히 개인적인 사항도 괜찮은 기사거리여서 직원들이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최근의 기사들은 거의 펙트에도 근접한다. 그 정도로 이 회사 직원들의 수입은 이미 이 나라에서 비밀이 아니다.


대기업 임원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월급쟁이였던 내 기준으로는 많이 받는다.

그런데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소득세 등 각종 세금성 지출을 일괄 공제하면 세후 월급은 확 줄어든다.

남편의 월급은 내가 관리한다. 물론 남편이 은행 한번 가려면 휴가를 하루 내야 할 정도이니 내가 관리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새가슴이라 거창하게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의 공격적인 투자는 못한다. 대부분 예금을 넣거나 겨우 한다는 게 ELS나 신탁에 넣는 정도이다.  은행가는 것도 귀찮아 그냥 스마트폰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서로의 은행계좌 비번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지출 현황을 볼 수 있다. 부부로 10년 이상 사는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가끔 지출관리를 위해 남편의 월급통장을 들여다보곤 한다.


 



내가 자산관리를 하기 때문에 남편이 돈을 보내주지만 생각해보면 돈 버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뼈 빠지게 일은 내가 하고 돈은 아내가 다 관리한다? 모든 통장의 명의가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  나는 뭐지? 어쩌면 남편은 공허할 수도 있겠다.

나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우리 집 자산현황을 정리한 파일을 띄워두고 1년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남편이 한 번씩 우리 집 재산에 대해 말하는 걸 보면 가끔 파일을 열어보긴 하나 보다.

아무리 부부라도 돈에 대해서 완벽하게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못하는데 남편에게 나만 믿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최대한 투명하게 모든 것을 공유하려고 한다.


남편은 씀씀이가 큰 편이다. 

그래도 좀 아껴 쓰라고 잔소리하지는 않는다. 주로 직원들 밥 사주고 회식 때 쓰는 것 같았다.

나도 직장생활을 해 봤지만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같이 있다 보면 회사 동료들의 소비 수준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가끔 밥도 사고 커피도 산다. 아무래도 외벌이인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이 좀 짠할 때가 있다.

외벌이인데 자녀가 세명이고 게다가 큰 애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잔에 4천 원 하는 별다방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다. 점심은 항상 사내식당이다. 그래야 밥을 사야만 하는 상황에서 지갑을 열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내 월급이 쓰인다는 강력한 당위성이 있지만 그래도 가끔 억울하지 않을까?

외벌이 하는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남성은 밖에서 돈벌이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전통적인 업무분장의 특징이 강하므로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외벌이는 남성의 몫이었다.  

맞벌이하는 여성 직원들은 사직을 꿈꾸기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외벌이 남성 직원들은 꿈도 못 꾼다. 그런 남성 직원들이 항상 안쓰러웠다.


 



예전에는 학부모들 모임에 종종 나갔었다. 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니 아이들 얘기가 주를 이루고 가끔 남편 얘기를 한다. 그중에서도 참 듣기 싫은 소리가 있는데 남편 용돈 주는 이야기다.

마치 집안 경제권을 틀어쥐고 남편의 수입은 내 수중에 있다는 듯 남편 용돈을 우스갯소리 취급하는데 정말 듣기 싫었다. 

밖에서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한여름에도 믹스커피 한잔으로 피곤을 달래는 어쩌면 내 남자일 수도 있는 그의 숨통을 트여 주었으면 한다.

내가 선택한 남자가 밖에서 그렇게 궁상떤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지 않은가? 내 사람의 평가와 가치가 올라가면 내 가치도 올라간다.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마찬가지다. 

-남편의 소비활동을 제한해야만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남편이 바람직하지 않은 취미가 있거나 덕후 기질로 집안 사정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를 마구 사들인다 같은 특별한 경우라면 용돈 제한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닌 보통의 경우를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당신 남편은 돈을 많이 버니까 가능한 소리 아니냐고 발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신혼 초에 남편 월급이 많지 않을 때도 그랬고 첫 아이 낳고 휴직기간 중에 내 월급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그랬다. 

그냥 내 남편이 밖에서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은 하나의 계약이다. 천륜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혼 관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그 대가를 누릴 권리가 있다. 남편도 부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배우자가 지나치게 외부활동에 제약을 하거나 지출에 대해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면 억울하다. 결혼 계약의 중심추가 어느 한쪽으로 이동하며 기울고 있다. 그렇게 십 수년 계속되면 저울이 넘어지며 계약관계가 파기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합리적인 계약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 남편은 아내에 대해, 아내는 남편에 대해 서로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결혼 주례사마다 등장하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식상해도 진리이고 모두가 행복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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