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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l 01. 2019

복직하던 날 아이들이 울었다

남편이 회사에 간부로 입사하고 젊은 나이에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가 조급할 이유는 없었다. 언제쯤 승진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승진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나는 혹시나 남편 이름이 있나 살펴보았다. 정확하게 언제 승진대상자가 되는지도 몰랐다. 그냥 될 때가 된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남편이 임원이 되던 그 해 봄 나도 복직을 서두르고 있었다. 계획보다 휴직이 길었다. 아마도 후배들이 먼저 승진했거나 그 아래 후배들과 승진 경쟁을 해야 할 거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 밤에만 볼 수 있는 남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남들 보기에는 뽀대나는 인생이었지만 속 내막을 아는 나는 대체 뭐가 좋은 것인지 헷갈렸다. 남편은 너무 바빠서 인생에 대한 그런 고민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남편은 이미 관리자였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팀원들 상담하기도 바빴다. 그래서 복직 후의 생활에 대하여 차분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모두 내가 준비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복직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난제가 두 가지 있었다. 이사와 육아이모

아이들은 지금 아파트에 큰 불만이 없어 보였지만 둘째가 점점 크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었다. 큰 아이 친구 중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아이가 근처에 있다는 것도 이사에 대한 생각을 부추겼다. 나는 이사하기로 했다. 당시는 매도세가 강하던 시기였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 마땅한 집이 없었다. 점점 날은 추워지고 복직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상의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모두 다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고달픔에 한 몫했다.

다행히 조급함이 극에 달하기 전에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육아이모를 구하는 것에 비하면 집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믿을만한 사람을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아이들을 맡길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도 점점 연로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확 늙은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런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다.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의 삶이 있다. 내 아이 육아는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복직 직 후 육아이모를 구하기 전까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광고지를 붙였다. 바람 부는 날 손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5-6명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나는 찾아가 뵙겠다고 했다. 팀장에게는 아직 집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아쉬운 소리를 하고 칼퇴근을 했다. 그렇게 집에 와도 이미 9시였다. 나는 그분들이 사는 곳을 직접 확인하였다. 사는 거처가 불분명한 분들이 있었다. 집으로 갈 수 없는 분들은 면접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정갈한 곳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분이라야 마음도 안정되고 내 아이들과 잘 지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실례를 무릅쓰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일일이 내가 직접 만든 면접 용지에 결과를 기록했다. 그분들 앞에서 하면 기분 나쁠 테니 집에서 나오자마자 마구 휘갈겨 썼다. 그렇게 며칠을 했다. 내 아이들을 맡기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 듯하다.


그 사이 남편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묻지 않았다. 아마도 도와줄 수도 없는데 물어보기도 미안한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지금 집도 마땅치 않고 새로 들일 가구도 정하지 못했다고 어쩌면 좋냐고 말하기 싫었다. 자존심 상했다. 남편은 매일 뉴스에 나오는 거대 그룹의 간부인데 뉴스는커녕 지역신문에도 날 일 없는 우리 집 일 따위 나 혼자 사락 처리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날은 기분이 영 별로인 날이었나 보다. "일은 잘 되어가?" 하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겨우겨우 움켜잡고 있던 울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힘이 들었다. 그냥 눌러앉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다시 나가려는 걸까 오랫동안 반문했다. 남편은 대기업의 간부인데 일개 직원인 나의 복직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그 전날 이사하기 전에 가구 몇 가지를 바꾸기 위해 눈길에도 불구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가구 매장에 갔었다. 그런데 매장이 이전하고 사라졌다. 매장 출입구에 붙어 있는 이전 주소를 검색하는데 어딘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없었다. 오늘 꼭 가구를 확정해야 한다. 일요일에 매장을 오픈하면 다음 날 남편과 함께 오면 되는데 이 곳은 토요일까지 문을 연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매장 주면에 쌓인 눈을 온 바지에 적시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온종일 우울하던 차에 남편의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어떻게 그렇게 관심이 없냐고, 나 혼자 다 하고 있다고. 나는 그날 많이 울었다.

남편은 내가 좀 진정되었을 때 "잘 하니까" 했다.


복직하기 전날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이제 다시 회사에 가야 한다고...

"이제 엄마 다시 회사 나가야 해. 아침에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 줄 거고, 저녁 먹고 놀고 있으면 엄마랑 또 놀 수 있어"

아직 어린 둘째가 가지 말라고 울었다. 큰 아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이들에게 금방 적응될 거라는 진심 없는 말만 할 뿐 더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렇게 내 복직은 아이들의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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