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보는 사람이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어쩌면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남자. 휠체어에 앉아 있다. 다리와 손이 불편하고 표정으로 보아 지적장애까지 있는 듯하다.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그 남자는 장애인복지관 차량에 탑승하고 아마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낼 것이다.
처음에 잠시 그 사람을 관찰했었다. 몇 살일까? 어디가 아픈 걸까?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순식간에 그 사람을 스캔하고 결론 내렸다. 그 후 더 이상 그 사람을 직접 보지는 않지만 항상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늘 양가감정을 느꼈다. 안됐다. 그런데 가까이 가긴 싫다.
그 사람이 건널목 이쪽 끝에 있으면 난 항상 저쪽 끝으로 갔다.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어느 날은 남자이고, 어느 날은 여자이다. 여러 가지 정황과 분위기로 보아 그 남자의 부모님일 거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했는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표정도 비슷하고 얼굴이 주름져 늘어난 형태도 비슷하게 닮았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는 어떤 삶을 사는 걸까?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심지어 부모가 맞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사람들과 한마디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온갖 평가를 하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안됐다. 그런데 가까이 가긴 싫다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합창대회가 열렸다.
합창대회를 위한 단상을 만들고 전체 반 학생이 그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
당시 한 반에 오십 명도 넘었으니 단상이 부족하지 않도록 바짝 붙어서야 한다. 모든 반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단상에 올랐다. 오랜 기간 합창대회를 치르면서 형성된 규칙 같은 것이었다.
우리 반에는 손이 아픈 친구가 있었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양손이 괴물처럼 길고 틀어져 있었다. 손등이 늘어나 손 전체 길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짧은 손가락들이 달려 있었다. 어릴 적 화상을 입은 게 분명한 그 아이를 반 친구들은 모두 무서워했다.
합창대회 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가 고민이었을 거다.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하는데 누가 같이 올라가지? 가장 쉬운 방법은 번호순으로 하는 거다. 우리 반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빽빽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드디어 우리 반 차례가 되어 두 명씩 올라간다.
두 명씩 두 명씩 환한 무대 위로 올라간다. 대기실에서 아이들이 빠질수록 공간이 넓어지고 숨통이 트인다.
새로 생긴 공간 속으로 그 친구의 일그러진 손이 드러난다. 점점 환하게 드러난다. 번호에 맞춰서 올라가야 한다. 그 아이가 올라갈 차례가 되었는데 짝꿍이 그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으'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순간 아이들이 술렁인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뒷 순서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순서가 바뀐 채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대회는 아무 탈 없이 끝났다. 수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선생님이 어디 계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휘를 하기 위해 이미 무대 위에 계셨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아이가 순간적으로 불쌍했던 걸까? 아니면 그 순간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걸까?
분명히 그 아이의 손을 덥석 잡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그 순간 그 아이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손은 반들반들했다. 그리고 아주 얇았다.
우리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TV에서 많이 보았 듯이- 아기 때 끓는 물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좋은 아이였고 나와 잘 맞았다. 우리 집도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 사는 모습은 더 형편없었다. 그리고 항상 집에 부모님이 안 계셨다. 일하러 가셨다고 했다. 우리는 늦게까지 그 아이 집에서 놀았다. 학년이 바뀌고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직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합창대회 사건 후,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싶었고 같이 놀고 많이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나는 같이 놀면서 그 아이에 대해 알게 되기 전까지 미리 결론 내리지 않았다. 아기 때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최근에 본 영화 '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전신불수인 백만장자와 있는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빈털터리 남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백만장자 필립은 자신을 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 대하듯 똑같이 농담하고 똑같이 장난치는 드리스를 좋아한다.
만약에 내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와 -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이 다니기라도 하면 어떨까?
어릴 때 나를 기억하며 너 꽤나 멋진 아이구나 생각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어릴 때 나는 담대하고 품성이 고운 아이였던 게 분명한데 왜 나는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게 못하는 걸까?
긴 세월 어른이 되면서 이미 내려진 그들에 대한 강력한 결론은 어린 시절 나의 기억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행히 나는 알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뿐.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들을 평가하지 말아야지. 어린아이가 친구를 사귈 때 호기심에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면서 친구가 되듯이, 드리스가 필립을 병자 취급하지 않았듯이 나도 그렇게 해야지
이제 건널목에서 그 남자를 만나도 애써 피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