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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l 26. 2019

최고의 집밥,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돼

 


무엇을 집밥이라고 하는 걸까?

집밥 '집에서 지은 밥 또는 집에서 끼니로 먹는 밥'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집밥은 집이라는 장소에서 먹는 밥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집밥은 우리 집의 안락함과 가족 간의 정, 엄마의 정성이 일으킨 화학작용으로 괜스레 위로받고 다시 힘차게 살아갈 힘까지 주는 마법 같은 것을 집밥이라고 부르는 맥락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집에서 먹는 밥을 집밥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락모락 김 오르는 밥에 보글보글 된장찌개, 지글지글 김치찌개, 노릇노릇 생선구이가 아니어도 된다.

나는 그런 집밥에 대한 추억이 없다.


 



그날도 놀이터에서 끝까지 놀았나 보다. 나 어릴 적엔 놀이터에 가면 동네 녀석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도 배꼽시계가 귀신같이 밥때를 알리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배꼽시계가 둔한 아이들은 결국 엄마 아빠가 찾으러 온다. 나는 그리 둔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남았다.

한 때 즐겨봤던 무한 도전의 '명수는 열두 살'에서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명수 혼자 남아 벽에 이마를 콩콩 찧으면서 노는 풍경은 내게 흔한 모습이었다.

놀이터에 나 혼자 남으면 큰 미끄럼틀에 올라가 상단 지지대에 턱을 콕콕 찍으며 혹시나 누가 오나 두리번거리곤 했다. 이미 저녁을 지나 내 몸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둑어둑해지면 저기서 누군가 씩씩거리며 오는 사람 한 명 있다.   


"밥 먹어!!!" 오빠다.


할머니네 집에서 함께 지내던 오빠가 저녁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나를 찾으러 온 거다. 뭐 그리 좋을 것도 없는 오빠가 그때는 참 반갑다.



집에 가 봐야 어른 음식들 뿐이었다. 김치, 장아찌, 그리고...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다. 케첩에 조린 줄줄이 비엔나 햄이라던지, 분홍빛의 소시지 같은 걸 먹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지 않은 거라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억울하시겠다.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집에서 먹는 밥을 집밥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왜 좋은 기억은 없는 걸까? 

왜냐면 그곳은 우리 집이 아니니까.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었으니까.

아무리 할머니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는 집밥에 대한 다른 추억이 있다.


나 어릴 적 돌아가신 엄마는 아침에 깨자마자 입맛 없는 우리를 위해 갓 지은 밥에 짭조름한 조미김을 말아주곤 했다.  둥근 소반에 김이 돌돌 말린 밥이 줄을 서 있다. 길쭉한 김밥 사이사이 동그란 주먹밥 모양도 몇 개씩 끼어있다. 항상 둥근 모양이 인기다. 오빠와 나는 서로 둥근 걸 먹겠다고 싸운다. 둘째 특유의 억지를 발휘하여 마지막 남은 둥근 밥을 차지하곤 한다.

김에 밥을 만 게 다인데 나는 좋았다.

익숙한 우리 집과 엄마의 미소는 단지 김에 만 밥을 진수성찬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렸으니까.

제비 새끼들 마냥 쫙쫙 입 벌리는 우리들에게 하나씩 밥을 넣어주는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불렀겠다.

셋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투닥투닥 하나씩 집어먹는 밥은 최고의 집밥이었다.




나는 아직도 조미김에 밥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이라 칭할 수도 없는 그냥 재료들의 조합일 뿐이지만 조미김에 밥을 싸 먹는데도 방법이 있다.

밥은 흰밥이 가장 적당하다. 그러나 갓 지은 뜨끈뜨끈한 밥과 조미김은 상극이다. 한 시간 정도 충분히 김을 뺀 촉촉한 밥은 사실 조미김이 아니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태의 밥이다.

그런 상태의 흰 밥에 바삭바삭한 조미김의 조합은 과히 환상이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다.


가끔 가족과 함께 어디 멀리 갈 일 있을 때 아침에 깨서 밥 먹고 치우고 부산 떨기보다 새로 지은 밥과 조미김만 잔뜩 싸간다. 이동 중에 배가 고파졌을 졌을 때쯤 딱 적당히 식은 밥에 김에 싸 먹는 밥은 정말 꿀 맛이다. 남편 한 입, 아이들 한 입씩 쉼 없이 주다 보면 어느덧 도시락통을 모두 비우게 된다.

진수성찬이 아니면 어때, 함께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게 집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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