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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ug 05. 2019

가끔 가족의 응원을 받고 싶다

사람들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승리의 신화를 기대하나 보다.

집과 회사를 종횡무진하며 가사와 육아와 회사일을 슈퍼우먼처럼 해내는 휴먼다큐 정도는 되어야 겨우 사람들이 들어준다.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나는 새로운 삶과 사표를 교환했다.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들조차 내 의지를 의심하는 게 느껴진다.

그들을 원망하고 서운해할 일이 아니다. 내가 증명해야 한다.




남편이 승진한 후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회사일과 집안일과 아이들까지 모두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남편과 타협할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힘들고 긴박한 상황을 자주 목격하고 무거운 책임을 간적접으로 체감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무언가 좀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바꾸는 것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키우고 싶었고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따라 일의 양과 범위를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평생 성장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케어하면서도 내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해답은 쉽게 찾았다.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것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당분간 돈은 포기했다. 그게 합당했다.



그 해 여름 나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나는 그 해 여름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나에게 브런치 작가 신청은 삶의 항로를 바꾸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작가 신청은 세 번 만에 통과했다.

그러나 브런치로부터 앞으로 좋은 기대 부탁드린다는 합격 메일을 받고 환희도 잠시, 막상 브런치에 진입하니 능력자들이 어찌나 많은지 새로 진입한 세계에서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구독자수 증가는 한 달 내내 지지부진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파죽지세로 증가하기도 했다.

글은 뭐 이런 날이 있나 싶을 정도록 잘 써지는 날도 있고, 뭐 이런 날도 있지 싶게 안 써지는 날도 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산발적으로 관련 소재들만 떠오르고 맥락을 짚지 못하다가도 다음날은 절묘한 연결점을 찾아 씨실과 날실로 엮어 흡족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평일에 글 쓸 시간이 별로 없던 나는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모두 식사하러 가고 나면 어두워진 사무실에 남아 글을 썼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포기해야 했던 나는 사직 결심을 하고 회사에 의사 표명을 하고 실제 사표를 제출하기까지 지난한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매일매일이 불안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그 고통의 과정들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위로받았고 행복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확신했다.

내가 가려는 길이 확실하다고.


동료들은 글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라면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거장을 떠올릴 그들에게 내 계획은 가당치도 않아 보였을 거다. 나는 남편이 잘 나가서 한가롭게 글이나 쓰려는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직하려는 나에게 '미쳤냐? 아깝지 않냐?'는 반응이 아무 의미가 없는 시기였다.

그렇다면 남편이 잘 나가서 팔자 좋게 글이나 쓰려는 여자라는 시선도 중요하지 않다.



가족들은(부모님도, 남편도) 내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길을 응원하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내 글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글을 쓰냐고 사람들 반응은 어떻냐고

가족들은 내가 작가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놀다가 슬슬 지겨워 지면 그만둘 거라고,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엄마역할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공무원을 그만두면서 선택한 길인데 이렇게 하찮은 취급을 다.


그런 가족들의 시선은 가끔 나를 흔들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나는 가끔 두렵다.

그 간 쌓았던 모든 것을 놓고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길을 한 걸음씩 가는데 저기 멀리서 누군가 친근한 목소리로 파이팅 한번 외쳐 주면 힘이 날 것 같다.


아이들이 아파서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오롯이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잠깐의 짬도 나지 않을 때

아직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할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은 매일 느낄 때

아무리 마법 주문을 외우며 호기롭게 스스로를 응원해도 두렵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본인과 관련한 글을 모두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 애초에 물어보고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위험을 무릅썼다. 의견을 물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거다.

남편과 관련한 내 얘기를 쓸 거야 괜찮아?라고 물으면 괜찮다고 했을까?

전직 아나운서였던 어떤 작가가 부모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쓰기 전에 엄마한테 우리 가족 얘기를 쓸 건데 괜찮아? 했을 때 '암시롱 안 해'라고 말했 듯 그렇게 반응했을까?

그래서 나는 위험을 무릅썼다.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작가명도 수시로 바꾸며 내 정체를 숨겼다. 이 이야기는 한 번은 꼭 풀어내고 정리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지금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역할을 다시 한번 더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짐하고 싶었다.


'괜찮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야'

오늘도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말자.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말자. 딱 오늘 하루만 생각하는 거야'

나는 사표를 주고 새로운 삶을 받았다. 문득문득 두렵다.

가끔 지칠 때 가족들 응원이 비타민이 될 수는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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