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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ug 13. 2019

이름 없음(無名)이 빛을 보는 날

16년간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로 작정한 나는 전보다 자주 서점에 들른다. 서점에 가면 책 출간에 대한 최신 트렌드를 알 수 있고 내 맘에 꼭 드는 책 표지와 제목을 뽑는 출판사를 찾을 수도 있다. 최근에 생긴 대형 서점은 이 곳이 책방인지 카페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그런 곳일수록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두 번은 안 가게 된다.


글을 쓰기로 작정한 후부터 나는 조금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예민한가 보다' 김칫국 마시는 생각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무언가 소망하는 것이 생기니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는 필수이다. 그 간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적당한 넓이와 높이로 백색소음을 제공하는 장소를 찾았다.



대형 서점은 물론이고 웬만한 동네 서점만 가도 베스트셀러 매대가 따로 있다.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한참을 째려보곤 하는데 작가의 이름값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반이상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믿고 보는'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이 분야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다분하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거장들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후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정치력은 필수이다. 마케팅이라고도 다. 베스트셀러는 정치력의 결과물일 수도 있어서 나는 빌려보는 책과 구입하는 책은 구분하는 편이다. 아무리 유명인의 베스트셀러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책들이 있다. 작가와 출판사의 욕심의 결과로 또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다가 글이나 번역의 완성도를 일부 포기한 작품들. 특히 전작이 흥행몰이를 한 경우 그 후속작을 급하게 출판하다가 그런 참사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부의 추월차선'을 구입해서 흥미롭게 읽었는데 거의 바로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이 나왔길래 아무 생각 없이 그 두껍고 비싼 책을 샀다가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무명작가의 진솔한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에까지 오를 때 마치 내 일처럼 기쁘다.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런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날 거라고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김칫국 마신다는 건 좀 상대방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나 혼자 마음속으로 김칫국 마시는 것은 삶에 활력이 된다. 자기 암시라고도 한다. 이런 김칫국 마시는 자기 암시를 하면서 나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사건을 일으킨다. 실력 있는 무명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살면서 이런 사건은 쉽게 일어날수 있는 게 아니므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케팅에 편승하지 말고 직업적 정신을 발휘하여 양서들을 추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전문가들의 능력이고 사명이기도 하다.




어디 책뿐인가? 모든 분야가 그렇다.

나는 TV는 보지 않지만 가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넷플릭스 영화를 본다. 아는 영화라고는 CG#같은 멀티플렉스에 다수의 상영관을 선점하고 스타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다였는데 넷플릭스에는 모르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생소한 나라의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완전한 신세계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영화, 미국 영화, 프랑스 영화말고도 이 세계의 나라들이 모두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우리는 일부 미디어와 권력자들에 의해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가?


생소한 영화는 반드시 감상평을 확인한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낯선 나라의 처음 보는 배우들, 아역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외모의 흑인들로 채운 영화 중에 좋은 영화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 스타를 내세운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어도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고 있었다.

명화를 만난 셈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누군가들에 의해 전시된 것만 보고 그게 다인 줄 알던 내가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나는 왜 이리 우물 안 개구리인지 부끄럽기만 하다.

오랫동안 무명의 길을 걷다가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드디어 빛을 본 배우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벌써 오랜 전 일이지만 지금은 주연급의 배우인 장서희가 긴긴 조연의 생활 끝에 '인어공주'라는 드라마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 기뻤다.

최근에는 배우 진선규가 영화 '범죄도시'를 통해 빛을 보았을 때도 진심으로 기뻤다.  그 배우들의 팬은 아니지만 그런 현상이 기뻤다.

이런 보석을 발굴하는 일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몫이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카톡으로 브런치를 친구 추가하면 브런치는 매주 좋은 글을 배달해 준다.

좋은 글의 기준이 뭐지? 처음엔 카톡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나에게 배달되는 글의 작가들은 대부분 엄청난 수의 독자들을 보유한 작가들이었다.

유튜브도 아니고 독자를 몇 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니 놀랍고도 부러운 일이다.

브런치는 미로 같은 곳이어서 파고들면 들수록 좋은 글, 독특한 글들이 많다. 모두 구독할 수는 없어 그냥 한번 감동받고 지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숨겨진 작가를, 숨겨진 보석 같은 글을 찾았구나 싶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브런치는 어떤 기준으로 좋은 글을 선정하는 걸까? 궁금하다.

그런다고 당신 글을 소개하지는 않을 거라 의심의 눈초리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해야겠다.


이미 많은 수의 독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 또는 어떤 계기로 이미 작가로서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글은 브런치가 굳이 배달하지 않아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 충분히 만날 수 없다. 이미 출간을 하고 서점을 도배하다시피 한 작가의 글을 왜 브런치 메인에 올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숨겨진 좋은 글을 발굴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치로운 일이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의 취지에도 맞다.



인기 있다고 다 가치로운 것도 아니고, 가치롭다고 다 인기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어디 이 뿐이랴?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대장노릇 한다고 다 괜찮은 사람들이겠는가? 모두 사실일까 싶게 많은 정보로 무장한 사람, 도대체 그 정보의 근원이 어디인지 호기심을 일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마치 더 많은 정보가 있지만 그중에 일부만 푸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항상 주변에 사람을 모이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정보를 얻으려나 궁금하여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교묘한 언변과 분위기로 특정 사람을 따돌리기도 하고 거짓 뉴스조차 퍼트리는 그런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다.

나는 살아온 날 만큼 더 살아야 하기에 아직 사람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이 나이 되니 요란한 빈 수레를 알아 볼 정도는 된다.



이름 없음(無名)이 빛을 보는 날

행복하겠지? 그리고 그런 날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도 좋다고.

예전에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보냈던 긴긴 수험생활 동안 힘들었지만 막상 입사하고 나니 이런, 헬게이트가 열릴 줄이야.

그러니 지금도 좋다.

이름 없음(無名)이 빛을 보는 것 만큼 지금이 행복한 시기라는 것을 아는 것도 기쁨이다.

오늘도 나는 콧노래 부르며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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