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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ug 16. 2019

노예 해방 기념 마카롱

그 날 눈부신 하늘이 기억난다.

그 날 싱그런 바람이 기억난다.

갑자기 후둑후둑 쏟아진 소나기로 한가득 거리를 메운 흙냄새도 기억난다.


사직을 한 직 후 나는 월요일부터 놀이공원에 갔다.

처음으로 맞는 자유와 월요일이라는 시간이 주는 긴장감, 놀이공원의 한가로움

뭐 하나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오묘하게 섞여 미세한 흥분을 유발한다.

살면서 이럴 수도 있다니... 너무 이상하지만 좋은 기분이다.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 지난한 과정.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덕을 부리던 나에게 끝까지 용기를 주던 친구

조금 늦는다. 기다리는 것을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나인데 그리 나쁘지 않다.


저기 멀리 걸어오는 친구 손에 무언가 들려 있다. 가까이 보니 연분홍의 예쁜 케이스에 차가운 김이 서려 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알록달록한 마카롱



"축하해, 노예 해방된 것"


축하 선물이라니 그것도 마카롱. 이렇게 잘 어울리는 선물이 또 있을까?

평소 너무 달고 쪼그만 것이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지, 도대체 마카롱을 내 돈 주고 사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멈추지 않는 미세한 흥분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나는 최근 사직을 했다.

서른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가직 7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부모님께 큰 효도를 했던 나는 16년간 중앙부처에서 일했다. 회사도 일도 꽤나 폼 났지만 어느 순간 나는 세상이 달라 보였고 그 폼 나는 곳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은 출산과 육아와 가사 그리고 회사일까지 네 가지 영역의 중심에 서 있다. 남자들이 여자가 돼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조차 없는 상황에 내몰리며 몸이 부서져라 모든 것을  다 하거나, 아니면 그중에 몇 가지는 포기하도록 은연중에 강요받는다.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회사에서는 '역시 엄마직장인들은...' 이런 억울한 시선을 보낸다.


나는 직장을 포기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국가가 내 삶을 자꾸 간섭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그 생각은 점점 심해졌다. 아무리 각종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또아이들에 대해 내게 말조차 해주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선택을 했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퇴직 무렵엔 꽤나 높은 지위에 더 많은 돈을 벌 텐데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때문에 결정하기 힘들었다.

자아실현을 위한 대안으로 글을 쓰고 그 분야에서 퇴직 없이 평생 성장하자고 결심했지만 사실 나는 과연 내가 어떤 형태로든 외부의 강제 없이 100% 자유의지로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 자유의지는 얼마나 강할까? 그 힘으로 어느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안락한 집과 백화점에 널린 예쁜 물건들과 가끔은 재미있는 동네 엄마들과의 관계에 함몰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완벽한 확신 없이 사직을 했다.

실행하지 않고서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불완전한 부분은 반드시 채워나가리라 결정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리되기까지 나는 동료들로부터 후회할 것 같지 않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 또한 사직을 꿈꾸는 모든 직장인들이 결국은 계속 회사에 발목 잡혀있는 이유이기도 한 그것. '후회하지 않을까?' 남편이 끝까지 걱정했던 그것 '아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모르죠, 후회할 수도 있겠죠, 다만 확실한 건 여기 계속 있으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도 누군가 "후회되지 않으세요?" 물어본다.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대답한다.


사직 전 계획대로 생활하려니 하루가 바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 해도 한나절이다.

요즘은 내 글이 다음 메인 화면에 자주 올라간다. 반복되는 작은 성공들이 기쁘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불안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비슷한 것을 경험한다.

하루라도 안 쓰면 불안하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불안하다.

벌써부터 아이들 겨울방학이 걱정이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지



그동안 발행한 글도 많이 쌓였고 구독자도 상당수 늘었다.

출간 제의도 있었지만 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지금 생활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의 요구나 짜여진 틀 없이도 내 생활을 100% 주도적으로 사는 것

사직 직전까지도 채우지 못한 내 자유의지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메우고 있다.

사직하기 위해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던 시기에 느끼던 공포는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나를 유혹하는 달콤한 사회적 지위에서 벗어나 진정 내가 원하는 자유를 찾는다는 모든 글들이 이젠 새롭지 않다.

나는 이미 경험했고 이미 알고 있다. 그게 무엇인지


진한 커피와 함께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무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진한 커피와 함께 먹는 마카롱은 달콤했다.


"축하해. 자유인이 되고 다 강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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