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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Sep 16. 2019

명절 그 후, 네 여자에 대한 단상

여성의 연대에 대하여

나는 원래 자유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 아내와 엄마와 며느리 등 새로 생긴 역에 충실하다 보니 자 자유인의 DNA를 잊고 산다.

그러 휴화산도 원래는 활화산이었듯 어떤 계기로  자유인의 DNA가 폭발한다.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다. 남편으로서도 나름 괜찮다.

그런데 사람이 이상하다. 우리 집에서는 괜찮은 남편이었던 사람도 시가에만 가면 괜찮은 아들이 된다. 누구나 뿌리가 있어서인지 우리 집에서 원래 저네 집으로 맥락이 바뀌면 과거 소싯적 기억 습관이 수면 위로 떠오르나 보다.


이번 명절에는 내가 좀 아팠다. 시가에 출발하는 날 그렇게까지 아팠다면 안 갔을 거다.

그런데 출발 날 전부터 있던 감기가 조금 심해졌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짧은 명절 연휴 때문인지 길어진 정체로 10시간 동안 차 안에 있으면서 점점 상태 안 좋아졌고 몸살 기운까지 더해져 거의 아무것도 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겨우겨우 도착하여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울컥 치밀어 오르는 기침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 내 기침소리를 듣고 두런거리는 시부모님들의 소리가 들렸다. 명절 당일 아침에 나는 초주검이 되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타들어듯 아팠고 몸살 기운으로 허리부터 온 몸이 쑤시고 머릿속은 신욱신 약한 어느 틈 타고 툭 터질 것 같았다.

나는 큰 집에 가지 못하겠노라고 말했다. 시부모님은 못마땅하셨겠지만  와중에 날 위해 뜨끈한 어묵탕까지 끓여 주셨는데 결국 먹지 못하고 어머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야 말았다.


문제는 오랜만에 자기 집에 와서 소싯적 습관이 발동한 남편이었다.

가족이 그렇게 아플 때 정상적인 경우라면 연휴문을 연 약국이나 병원이 어디인지 알아보거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혹시 죽이라도 파는 곳이 없는지 검색이라도 하는 게 다.

큰 집에 다녀 온 남편은 종일 굶고 누워있는 나를 보고 점심에 일할 사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이 먹자고 해서인지 열심히 검색질을 해서 명절에도 영업을 하는 치킨집을 찾아내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그리고 나에게 먹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저녁을 먹은  느지막이 도착한 매제와 함께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갔다.


나는 삶의 배신감을 느꼈다. 결혼 생활을 통해서 삶의 배신감을 느낄 때마다 마음속 기저에 깔려 있던 자유인의 DNA가 서서히 용솟음칠 준비를 한다.

귀경하는 날 아침 그나마 살만해진 나는  딸에게 동생을 챙기라고 당부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너희들이 잊고 있는 모양인데 나도 원래는 자유인이었.



놀란 눈치의 남편을 뒤로하고 부산 바닥 아무 곳에나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그렇게 가깝게 있는지도 모르고 부산에 오면 늘 동화같이 아름다운 감천마을을 사진으로만 접했다. 전 세계인에 한국의 유명 관지인 부산지만 나에게 시가 있는 도시일 뿐이었다. 여행은 무슨 하루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생각뿐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시가의 어른들은 그냥 시가라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똑같은 시집이 된다.

그 날 자유인이 된 나는 가방 하나 고 홀홀 단신 태초 자유인의 모습으로 감천마을로 향했다.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홍보사진에서 보았던 알록달록 을의 모습과 실제 마을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내 눈엔 바람 시원한 곳에 위치한 달동네일 뿐이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보기엔 아닌가 보다. 사방 천지에 외국인이었다. 브랜드화에 성공한 셈이다.



한가로 마을 걷다. 가족들과 함께라면 그 짧은 거리를 1시간이면 모두 둘러 보았다. 혹시라도 어린 둘째가 떨어뜨릴까 봐 작은 소품 가게 같은 건 밖에서만 스윽 스크린 하는데 그치고 맛있는 소떡소떡집은 혹시나 점심을 앞두고 애들 입맛 버릴까 봐 근처도 못하게 한다. 저 앙증맞은 토끼 모양의 솜사탕이라니 사 먹진 않아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자잘한 물건들을 파는 곳이 많은데 관광지치고 값이 정말 싸다. 몇 천 원짜리 캐릭터 양말과 손수건, 귀걸이와 액세서리, 모자가 다채롭다.  그  짧은 거리를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며 실컷 구경다.


 거리에서 부침개를 팔고 있다. 배가 고프다. 지갑을 꺼내려고 부스럭부스럭 가방을 뒤진다. 그런데 봉투 하나가 잡힌다. 오전에 귀경 준비하는 나에게 시어머니가 찔러주시던 봉투 하나

"올라가거든 영양제라도 맞아라"

무심하게 '고맙습니다.'하고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고 잠시 잊고 있었다.

봉투 열어 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액수의 돈이 들어 있다. 어머님에게는 큰돈이다.

이런! 큰 일이다.


첫 번째 여자 - 시어머니


어머님은 내가 신혼여행을 다녀와 시댁에 들른 첫날 신혼방에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려주셨다. 부산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했다. 제사상 크기의 상에 빼곡히 놓여있는 음식에 우와 눈이 휘둥그랬다. 그렇게 나는 처음부터 어머님께 대접을 받았다.


천상 남자와 결혼한 천상 여자인 시어머님은 그 시절 그 지방 여자들이 그랬듯이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고 평생을 보고 배웠고 그렇셨다. 명절에 남자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 게 편했고 시끄러운 소리 나느니  남편의 술시중을 드는 것이 편했다. 평생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시어머님은 당신 남편이 디스크 수술의 후유증으로 몇 달간 병원에 누워 있을 때 간병인 없이 하루 24시간 간호를 했다. 자식들은 모두 서울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간병인 고용하라고 보내드린 돈을 병원비에 보태고 그 긴 시간 신 몸으로 때우다. 아버님도 많이 쾌차하시고 집안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한번 여쭤 본 적이 있다.



"어머니, 아버님 아프셨을 때 어떻게 그러셨어요?"

그건 회한의 미소였을까?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랬다. 그러다가 진짜 죽어버려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랬."

어머님은 지혜로운 분이다. 어머님은 무언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고생하는 것도 고생하지 않는 것도 모두 다 자기 맘 편하자고 하는 것을 아시는 분이다.  

어머님은 누구 탓도 하지 않는다.

그런 분이 다른 시대를 살고 다르게 생각하는 며느리를 맞아 명절에 음식을 다 해 놓고 저녁 늦게 도착하는 아들 가족에게 밥을 차려 주시며 많이 먹어라 하신다. 그런데 이번 명절은 며느리가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내려 완전 넉다운이 되 버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쓰이셨을까?

쑥스러워서 전화는 못하고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 뭐 그렇게 많이 넣으셨어요? 감사하고 죄송해요. 결혼생활도 십 년 넘으니 남편은 점점 미워지고 어머님께는 점점 감사해지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적당히 식은 김치전을 들고 길을 걸으면서 먹는다.  파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라테 한 잔 들고 완전히 건강한 사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흑백 사진관이란 간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사진관 앞에 붙은 홍보용 사진들이 멋스럽다. 나는 독사진을 찍기로 한다.



두 번째 여자 - 나



"몇 분이세요?"

"저 혼자요"

"네, 이쪽에서 기다리세요. 바로 찍을게요"

"아니 화장 좀 고치고요"

다시 없을 기회인데 예쁘게 찍고 싶다. 나는 급하게 립스틱을 다시 바른다. 흑백사진이라 그리 티나지도 않을 텐데 하는 생각 동시에 다. 하여간 최대한 예쁘게 나오고 싶다.

배테랑 사진작가가 명랑한 목소리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며 이런저런 포즈의 50컷을 찍는다. 나는 약간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환하게 웃는다.


현대화 된 옛날 방식의 흑백 사진관이라 사진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50컷 중에 잘 나온 사진들을 계속 추려 나가며 사진 두 장을 골랐다. 이 사진을 인화한다. 사진 안의 웃고 있는 나를 보는데 내 얼굴이 낯설다.

'나도 늙었구나.'

세상에 시간만큼 막강한 것이 있을까? 평소 매일 거울 보면서 화장할 때는 몰랐는데 흑백으로 찍은 전체 샷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나도 늙고 있다.

감청 마을에는 그림엽서를 사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배달을 해 주는 곳이 있다. 나에게 엽서를 쓴다. 눈물이 찔끔 난다.




안녕~~ 아무리 생각해도 예쁘고 멋진 사람. 지금까지도 정말 잘해 왔고 앞으로의 삶도 그와 비슷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지금처럼 살면 된다. 이 세상에 널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하나 남지 않는다 해도 마지막까지 널 사랑해.






마을 곳곳에 감천 마을의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과 엽서, 스카프 등 각종 상품들을 판매하는데 그중에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프린트의 스카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국내 여행 중 기념품으로 사기에는 조금 비싼 가격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스카프 두 장을 샀다. 하나는 옹기종기 붙어 있는 마을의 집들을 정감 있게 그렸고  다른 하나는 동백꽃의 붉은색을 과감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중 한 개는 엄마를 위한 선물이다.


세 번째 여자 - 엄마


하필 생일이 추석 일주일 후라서 사람들이 자기 생일을 다들 깜한다고 불만인 엄마는 나이 들어가면서 가족들에게 당신 생일이 언제인지 넌지시 일러주는 여유와 유머가 생겼다. 기분 좋은 현상이다. 엄마는 스카프를 좋아하고 옷차림에 맞춰 멋스럽게 맬 줄도 안다. 엄마에게 딱 맞는 선물이 될 것 같다.


엄마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시시콜콜한 개인사는 생략해야겠다. 한 편의 글로 한 여자의 인생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엄마는 아빠와 사는 동안 대부분의 명절 동안 시가에서 다른 며느리들과 함께 집안 어른들을 위한 명절 음식을 만들고 오후 늦게 다시 새로 시장을 봐서 오래전 죽은 남편 전처를 위한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그 덕에 나도 소싯적 전 깨나 부쳤다. 집안의 둘째 며느리지만 첫째 며느리 역할을 해야 했던 엄마는 명절마다 두 번의 장을 보았고 두 번 음식을 했고 두 번 제사상을 차렸다. 성격도 좋고 가끔 푼수끼도 발동하여 시어머니나 동서들이 좋아했고 그만큼 몸을 쓰는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후손들을 위해서 앞으로 제사 문화는 부모님 세대가 끊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엄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사회적 분위기와 이상하게 며느리에게만 엄격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이혼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명절에 일탈을 감행할 수 없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며느리들 숨통만 쥐어짜던 집안 어른들도 하나 둘 돌아가시고 지금은 그나마 살만하신 모양이다. 엄마가 스카프를 좋아할까? 마음이 흐뭇해진다.



감천 마을은 어르신들 취향이라기보다는 젊은이들 취향의 장소이다. 즐비한 카페들과 즉석 먹거리들 자잘한 기념품 가게들이 거의 다를 차지한다.

혼자서 3시간 넘게 배가 고플 때까지 구경하고 쇼핑하고 사진 찍고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휴식할 수 있었다. 딸과 둘이 오면 참 좋았겠다 싶다. 이제 초등 6학년, 사춘기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지 요즘 정말 예쁜 것들에 대한 관심 폭발이다. 딸에게 사주면 좋을 기념품을 고민하다 딱 맞는 것을 찾았다.


네 번째 여자 - 딸



최근 몇 달전쯤 초경을 시작하며 서서히 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있는 딸.

명절 다음 날 아침상 준비로 바쁠 때, 하필 명절날 터져버린 생리로 아픈 배를 움켜쥐고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아이에게 애들 할아버지가 물색없이 한마디 한다. "너는 도울 줄 모르제?"

여성의 생리에 대한 언급은 금물이었고 이를 터부시 하는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덕에(?) 평생 생리대를 본 적이 없고 평생 여성의 몸에 대해 생각해 봤을 리 없는 남자가 무심하게 던지는 수많은 말들을 여성들은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왔다.

순백의 이미지의 생리대 광고와 출산 후에 더 예뻐진 연예인 소식은 남자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품게 한다. 별거 아닌가 보다고.


이제 신체의 고통부터 시작해서 평생 여성이 가지는 한계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이 있음에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이 세계와  가족정책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인들이 그럴싸하게 포장한 허술한 사회적 기반에서 너는 또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통을 받을까? 엄마가 그랬고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희망의 총량은 더 늘어나고 있단다.



이 아이만큼 책을 좋아하고 또 많이 읽는 사람이 있을까? 딸아이의 독서 히스토리는 사실 나의 자랑거리다. 그중에서도 딸은 영어 이름도 '앨리스'로 정할 만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 그 시리즈 책과 그 시리즈 영화를 여러 번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이다.





                      I choose my own emotions, Today, it's going to be "happy".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 나이적 나와 비교하면 참 멋진 아이.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너의 기분과 너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주인으로 살아가거라.

딸을 위한 선물로 귀엽고 앙증맞은 앨리스 키링을 예쁘게 포장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 개별 사건만 보면 일견 맞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러나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최고의 친구이다. 여성의 태생적인 한계와 가슴 밑바닥의 소망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바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여성을 경험한 여성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나는 회사에서 남자들과 그리 싸울 일이 없었다. 싸우면 꼭 여성이었다. 그러나 내가 깊은 우정을 나눈 동료는 남성이었는가 여성이었는가? 차마 말하기 힘든 가정의 치부까지 드러 동료가 남성이었는가 여성이었는가? 지각 있는 여성들이 여성의 물리적인 신체의 고통과 사회 한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하고 그들을 질투의 눈이 아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여성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신(神)들의 영역이었던 사람의 생명조차 인간이 좌지우지하는 이 시대에 생리의 고통이란 개념 자체를 없애고 아빠도 출산할 수 있는 기술이  불가능할 것이 무엇인가?

진정성이 있다면 집과 회사에서 1인 3역, 4역을 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이 시대의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기반을 갖추는 게 왜 안 되겠는가?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여성들의 연대는 더욱 중요하다.

내가, 나의 어머니가, 나의 딸이 행복해야 당신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아버지가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 모두가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날 나는 감천마을에서 화려한 외출을 마치고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마지막까지 자유인의 DNA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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