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승진 축하 난초

by 고도리작가


신혼 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반 평생 같이 잘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살아보고 알았다.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취향이라는 것을.

먹는 취향, 노는 취향, 소비하는 취향, 살아가는 취향 등

모든 행동을 꼭 같이 할 필요는 없다.

행복한 부부는 같은 공간에 있되 꼭 함께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함께 있어도 각자 하고 싶은 것 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여 괜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그 사람은 일을 하고, 내가 음악을 들을 때 그 사람은 인터넷을 하고

그러다가 '영화 볼까?' 하여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대략 이런 풍경이다.


운이 좋아 대충 그런 사람을 만났고 또 살면서 서로의 최적점을 찾아서인지 요즘 우리 부부는 대충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우리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무언가 기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 키우자는 말 안 해서 참 다행이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키우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관심이 없으니까 전혀 그들에 대해 아는 바도 없지만 그런 신경 쓸 거리 없어서 참 편하다.


그런데 이 식물과 관련하여 우리 부부에게 의도치 않은 일이 생겨 버렸다.

남편이 회사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잔뜩 들어온 승진 축하난이 발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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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한 그 주말에 난초가 막 배달되었을 때는 파릇파릇 싱싱한 게 참 보기 좋았다.

주르륵 줄 세워놓으니 꽤나 그럴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난초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난초를 베란다에 줄 세워두고

'추울 텐데 안으로 들여야 하나, 물은 며칠 만에 주는 걸까?' 그러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난초의 고수들이 동양란은 어쩌고, 서양란은 어쩌고 하는데 대체 우리 난초들은 동양란이야? 서양란이야? 우린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점점 방치가 되었다.

남편은 승진 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신경도 곤두서 있고 그 전에는 주말에라도 소소하게 함께 하던 집안일이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일도 하고, 집안 일도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그러다 몇 달에 한 번씩 남편에게서 '아이들 공부는 정말 중요해' 같은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억울했다.

게다가 난초까지 돌봐야 하다니 난초는 나에게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아침마다 베란다에 주룩 놓인 난초를 보면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 달에 몇 번 찬물 흠뻑 주는 게 내가 하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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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난초에 물을 주고, 말라서 허옇게 변한 줄기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잘라내고 있었다.

남아있는 초록색만큼 허연 것들을 잘라내고 난초들을 실내로 들여놓았다.

남편은 난초를 돌보고 있었다.

아니다. 남편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남들 모두 부러워하는 회사의 임원이 되었는데 남편은 매일매일 조금씩 허옇게 변해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임원 초창기, 새롭게 일도 알아야 하고, 직원들도 임원답게 대해야 하고, 회식도 회의도 출장도 많아졌다.

회사는 남편이 점점 허옇게 변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찬물 흠뻑 주듯 그렇게 길들이고 있었을 거다.

내가 난초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난초가 미웠다.

난초는 남편이 사회생활 쭉쭉 잘 나가고 있으니 내조에신경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난 난초가 미웠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일과 회식과 출장과 심지어 골프까지 배우느라 집안일과 육아와 심지어 난초까지 완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그냥 방치할 수도 없었다.
난초가 잘못되면 남편도 잘못될 것 같았다.

남편도 난초도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시간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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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마법을 부린다.

상황의 변화로 들썩들썩하던 것들도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차분해지고 그 사이에 조금씩 여유가 깃든다.

승진 축하난 중에 한 개는 처음부터 시들시들하더니 완전히 말라 밑동만 남았다.

나머지는 아 푸르고 심지어 어떤 것은 뽈똑뽈똑 새순이 돋는다.


남편은 많이 여유로워졌다.

이젠 운전 중에 갑자기 호출이 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이젠 운전 중에도 여유롭게 통화한다.

전혀 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던 골프도 몇 번의 필드 경험을 거치더니 분위기는 대충 파악했다고 한다.

전략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급박한 상황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해야 하고

아랫사람을 격려하고, 윗사람을 설득하고, 일은 쭉쭉 추진해야 하고 그 와중에 골프 연습도 해야 하고 뭐 하나 잘못되면 책임져야 하는 생활의 연속이지만 많이 익숙해지고 자기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난초는 이제 내 물건이 되었다. 나는 난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집 난초도 허연 부분은 많이 잘라냈지만 남은 부분은 푸르게 푸르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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