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주름진 셔츠

by 고도리작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집안일이 청소, 빨래, 설거지가 다인 줄 알겠지만 사실 집안일이란 거의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한다. 오케스트라는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건반악기를 총망라하여 몇 개의 악장으로 된 관현악을 연주한다. 비슷한 주제로 몇 차례 변주를 거듭하며 하모니를 이룬다. 집안일도 다르지 않다. 가사(家事)라는 한 가지 주제로 장소와 상황에 맞는 각종 청소도구와 세제를 이용하여 때로는 쭉쭉, 때로는 뽀득뽀득 비슷한 듯 다른 동작을 반복한다.



생활 머리라는 말도 있듯이 집안일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야 팔다리가 덜 힘들다.

정해진 시간에 나름 만족스럽게 집안일을 끝내기 위한 내 나름의 순서와 종류를 설명하자면,


첫 번째 - 환기하기, 이불 먼지 털고 정리하기

두 번째 - 세탁기 돌리기(속옷, 겉옷 구분하기), 손빨래는 별도이다.

세 번째 - 설거지와 부엌 청소. 수세미도 거품 내는 것, 헹구는 것을 구분한다. 청소용 수세미로 세제를 풀어 수채구멍까지 뽀득뽀득 닦는다.

네 번째 - 각종 먼지 털기와 청소기 돌리기(식탁의자 다리 밑에 붙은 먼지를 마른걸레로 털어낸다. 쓰레기통을 다 비운다. 드디어 청소기를 돌린다, 신발장은 따로 빗자루로 쓸어 낸다.)

다섯 번째 - 바닥과 가구 걸레질 하기(이때 침대 머리맡의 먼지 닦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자면서 침대 위에 소복한 먼지를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틀, 창틀 사이사이 먼지도 닦아준다.)

세심하게 디테일한 부분들을 놓치면 안 된다. 일은 슬슬 클라이맥스를 향해 간다.

여섯 번째 - 화장실 청소(바닥을 물청소하고 세제와 약간의 락스를 풀어 바닥, 세면대, 욕조, 변기까지 거품내서 박박 닦는다. 유리세정제로 유리를 닦는다. 가끔은 욕실 곰팡이 제거를 위해 락스 묻힌 종이를 붙여 둔다.)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일곱 번째 - 마무리(걸레 빨기, 청소 도구 제자리에 두기, 습한 실내 환기)

나의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집안일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집에 있는 사람을 논다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만족스러운 오케스트라 연주는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깨끗하고 안락한 집에서 가족들은 피로를 풀고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한 가지 찜찜하다. 애써 외면해 왔는데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순서일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밀려난 일, 한 동안 나의 가사 범주에는 끼지도 못했던 일


남편의 셔츠 다리기


나는 셔츠를 잘 다리지 못한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군대 가서 각지게 셔츠 다려볼 일도 없던 나는 셔츠 다리기가 힘들었다.

예전에 가사도우미가 요청해서 사둔 다리미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툼한 군용 도포를 깔고 쭈그리고 앉아 다림질을 한다. 스팀다리미를 다룰 줄 몰라 분무기로 칙칙 물을 뿌리고 다린다.

자세가 불편해서 일까? 셔츠에 자꾸 새로운 주름이 생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마에 땀 삐질삐질 나게 열심히 해도 어깻죽지와 앞판, 뒤판이 연결되는 부분이 꼭 쭈글거린다.

이미 다린 것을 남편이 다시 다린 적도 있다. 다리지 않은 줄 알았단다.



사실 내가 남편의 셔츠를 다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나의 퇴직과 동시에 다림질을 시작했으니 결혼 16년 기간 중 다림질을 한 지 겨우 몇 개월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편이 했다.

다른 글을 통해 여러 번 말했지만 맞벌이하는 중에 가사는 좀 더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다 점점 남편이 바빠지고 심지어 승진하면서 모든 가사와 육아가 완전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남편에게 기대할수록 실망만 커졌고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다 하기로 했다. 남편과 가사를 나눠할 수 있는 물리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감당하다가 한계를 느낀 나는 사표를 썼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다른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모든 가사를 다 해도 남편 셔츠는 절대 다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남편 셔츠는 다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집안일에 셔츠 다리기는 없는 것처럼 침묵했다. 남편의 셔츠 다리기는 남편이 옷을 입고 벗는 것처럼 당연히 남편이 해야 할 일인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다음 날 입을 셔츠를 다리는 지 가끔 스팀다리미 소리가 들렸다.

잠귀가 밝았던 나는 그 소리에 잠을 설쳤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쯤 되면 세탁소에 맡기지 그랬냐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셔츠 다리기는 나의 집안일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집안일의 마지막 일곱 번째까지 완료하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주름진 셔츠라니... 모르겠다.


사직을 하고 남편의 셔츠를 다리기 시작한 지도 두 달이 넘어간다.

남편의 셔츠 다리기는 집안일의 분류와 순서에서 여덟 번째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나름 요령도 생겼다. 셔츠의 앞판과 뒤판이 연결되는 부분을 동시에 다리니 주름이 사라진다.

그래도 아직 어깻죽지 부분은 어렵다.

그렇게 주름 쫙쫙 핀 셔츠를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두니 햇빛 아래 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게 꽤 볼 만하다.

오케스트라가 총 4악장의 관현악을 모두 연주하고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은 후 그에 대한 답례로 앙코르곡을 연주하여 본연의 소명을 다하 듯 나도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 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새벽잠을 깨우는 스팀다리미 소리에서도 자유로워졌다. 무시하고 있던 마음의 앙금도 사라졌다.

셔츠 어깻죽지 주름을 잘 펼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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