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 책이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많이들 이 책이 말하는 자유와 용기에 주목하는데 나는 주인공 암탉(잎싹)이 청둥오리 아들(초록)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모성애에 더 주목했다.
사실 진정한 모성애는 용기와 연결되어 있으니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닭장에 갇혀 평생 알 낳는 일만 하던 잎싹은 닭장 밖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 굶어가며 아픈 연기를 한다. 닭장 주인은 비실비실하고 알도 낳지 못하는 잎싹을 폐닭으로 판단하고 닭장 밖 폐계 웅덩이에 버린다.
그렇게 죽음을 담보로 자유를 쟁취한 잎싹에게 마당 밖 삶이 펼쳐진다.
버려진 알을 발견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잎싹은 그게 오리알인지도 모르고 품는다.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아기오리에게 '초록'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잎싹은 커가는 초록을 보면서 뭔가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야생에서 나고 자란 초록은 매일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습을 하고 야생오리의 기질을 보인다. 잎싹은 초록이 점점 멋지게, 점점 더 멀리 날수록 이별이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어떤 청둥오리보다 멋지게 비상하던 초록은 오리 무리와 합류하며 잎싹과 이별한다.
초록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멋진 어른으로 자라 마당을 떠날 때까지 어떤 참견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잎싹의 간절한 어미의 심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잡고 싶지만 잡지 않고 함께 있고 싶지만 놓아주는, 끝까지 초록의 마음을 헤아리는 잎싹의 절제된 모성애와 용기는 대단했다. 그렇게 초록을 보내고 잎싹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마당에서 또 살아간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이 사는 모양은 때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집도 절도 없는 오리알을 품어 키웠고 보낼 때는 붙잡고 늘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도록 놔둔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생각이 많고 계산방식이 복잡한 인간계의 우리들은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자녀들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을 방해하고 독립한 자녀 주변에서 얼쩡거려 새로운 세상을 사는 데 방해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나도 잎싹처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잘하진 못해도 비슷하게라도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에 각각 중학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곧 이사 갈 집에 둘째 방을 따로 꾸며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혼자 자는 거라고. 밤에 필요할 때는 엄마가 도와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아직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아들의 감은 눈을 보면 눈물이 난다.
남자아이인데도 둘째라 그런지 더 애틋하다.
어찌어찌 내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온 이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멋지게 살아가도록 우주가 나에게 부여한 임무는 얼마나 막중한가?
언젠가 내 품을 떠나 세상을 훨훨 날고자 할 때 내가 잎싹처럼 담담하게 놓아줄 수 있을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데 그렇게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스스로 살기 위해 무언가 시도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평온하게 지켜봐야 한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아닌 척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나도 조금씩 성장한다.
매일매일 무언가 연습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은가?
가끔 상상 속에서 이별을 대비한다.
이별은 유학으로, 결혼으로 또 때로는 나와 너의 죽음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때 잠깐만 울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 잘하고 싶다.
그런 엄마가, 그런 아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란 어차피 혼자 나고 혼자 가는 것이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게 지내고 혼자가 되어도 그 고독의 오묘함을 즐기고 싶다.
인간의 타고난 고독이라는 숙명을 아름답게 즐기면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