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갈 즈음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에 여행을 갔었다. 일정 중에 레일바이크 타기가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탑승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몇 km 되는 거리를 큰 힘 들이지 않고 레일바이크로 내려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45인승 셔틀버스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탔다. 우리는 중간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 좌석 뒤에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혼자 떠드는 사람이 있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혼자서 온갖 소리를 하고 일행들은 처음도 아니라는 듯 아무도 아저씨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버스 탑승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 아저씨는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다른 버전으로 바꿔가며 혼자서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을 거다.
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 타나 보다.
내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평소에 뭐가 그리 외로운지 사람 만날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말을 한다.
모임 시간이 1시간이거나 2시간이거나 상관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혼자 얘기한다.
엄마가 어떻게 다 받아줄까 싶을 정도인데 언제부터인지 엄마도 나름 요령이 생겨서 단체로 어디 여행을 갈 때는 아빠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모르는 사람인 척하곤 한다.
아빠는 바뀌지 않을 거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시겠지.
가족뿐인가? 친구, 애들 선생님, 애들 친구 엄마, 말 많은 사람들은 사방에 널려 있다.
최근 부산에서 학부모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어떤 학부모 험담을 하다가 그 아이까지 '왕따'라고 은밀한 얘기를 건넨 여성이 명예훼손죄로 벌금형에 처해졌다는 뉴스가 있었다. 소문을 퍼트릴 의도가 없었다고는 하나 학부모들 사이에 아이들에 대한 말은 퍼질 가능성이 높다며 유죄를 선고한 그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한다. 실수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범죄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나를 비춰본다. 다행히 나는 말이 적은 편이다.
낯도 가려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편이라 거만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물색없이 아무나 붙들고 온갖 소리 하는 것보다는 거만하다는 소리 들어도 말이 적은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애들 친구 엄마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위의 사례처럼 은밀한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입을 꾹 다문다. 처음부터 듣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혹시라도 소문으로 퍼질 경로를 내 선에서 차단한다. 타인과 대화를 할 때는 그렇게 조심한다.
밖에서는 그렇게 조심하는 나도 아이들과 얘기할 때는 자꾸 말이 많아진다.
아무래도 걱정도 많고 참고하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는 것이 다 잔소리가 되는 모양이다.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기 쉽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줄이고 더 조심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에게 말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청소 좀 하라고, 물건 좀 정리하라고 잔소리하지 않기 위해 아이방은 가급적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아이들이 싸우고 있을 때도 웬만해선 나서지 않는다. 애들은 그렇게 찌그락 짜그락 하다가 또다시 논다. 애들은 원래 그렇게 크는 거니까.
괜히 나섰다가 본의 아니게 첫째만 혼내는 꼴 나기 쉽다.
준비물 학교 숙제 잘 챙기라고 굳이 나서서 챙겨주지 않는다. 알아서 챙기면 다행이고 빠뜨렸다가 선생님한테 혼나고 정신 차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괜히 좋은 뜻으로 엄마 어릴 때는 어떻게 했는지 아무리 열심히 말해줘도 효과는 없다.
'Latte is horse~~(나 떼는 말이야~~)'하는 비아냥만 들을 뿐이다.
말을 줄이니 아이들이 먼저 말을 한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요즘 무엇이 유행인지, 친구들이 학원 숙제에 치여서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 숙제를 부탁한다든지, 수학 문제를 3초 만에 풀어주는 어플이 있다던지...
아이들끼리만 아는 절대 비밀이라면서 엄마에게 비밀을 술술 푼다.
물론 아이들의 비밀을 알기 위한 전략으로 말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정말 말 꺼내기 힘든 고민이 있을 때 엄마에게는 말을 하기를 바라며 내 말을 줄인다.
요즘 딸이 수학에서 정비례, 반비례 공식을 배우는데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말은 적어지는 반비례 공식에 따라 살아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내 말은 삼키고 남의 말은 들어주며 살아야겠다.
그렇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