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도리작가 Dec 10. 2019

없는 곳에서도 그녀를 존중할 것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에게도 구독자가 생겼다.

글을 발행할 때마다 알림이 갈 거다. 

발행한 글은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라이킷을 누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는 특이한 구독자가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내가 발행한 모든 글을 라이킷 한다.

그것도 신기하게 내가 글을 발행하자마자 거의 몇 초 후에 라이킷 한다.

내 글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걸까?

읽든 아니든 일단 라이킷 하고 시작하는 게 분명하다. 누굴까? 

문득 누군가 떠오른다. 혹시 그녀인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사람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기 중에 서로를 읽을 수 있는 사이.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꼭 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십수 년 함께 한 친구일 수도 있고 알게 된 지 한 달 된 사람일 수도 있다.

긴 시간이 필요 없을 만큼 어떤 이유로 주파수가 그냥 통해 버린 사람 

나에게 아픔을 털어놓았던 그녀

그녀와 나는 친구였을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그렇게 생기 있는 사람에게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끝까지 함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나는 누군가의 아픔을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본인을 통해 직접 들으면 어떤 책임감 비슷한 것이 생긴다.

끝까지 그 아픔을 공감할 책임. 가십으로 만들지 않을 책임. 

다행히 지금까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는 없었기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그나마 편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녀를 전혀 모르더라도 사람은 물론, 설령 동물이나 식물이라도 괜한 소리 떠들어 대지 않는다. 혹여 공기 중에 그들의 이야기가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그녀가 자기 이야기가 여기저기 돌고 있다는 것을 알면 화가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 행위도 처벌하는 것처럼 뻔히 그녀의 기분을 알면서도 떠들고 다니는 것은 배신이다.


가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본인의 친구, 친구의 언니, 친구의 부모님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 민망한 이야기, 온갖 얘기가 나온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 뒤에 숨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아픔 뒤에서 나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 돈 쓰는 얘기 하면서 대리 만족하고.

자신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거나 아직 그런 얘기 꺼낼 정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잠시라도 감도는 침묵이 어색해서 굳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얘기를 해야 할까? 비밀스러운 얘기까지?

특별히 요청하지 않아도 말해도 되는 얘기인지 끝까지 비밀을 지킬 얘기인지 알 수 있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사직할 거라는 말에 유일하게 후회할 거라고 했던 그녀

다들 멋지다. 부럽다. 잘 되길 바란다고 좋은 말만 하던 상황에서

후회할 거라고 자기 다운 솔직함을 보여서 내 속을 뒤집어 놓았으면서 이상하게 끈끈한 의리가 엿보이는 그녀

그 독특한 독자가 그녀이든 아니든 그녀가 거두절미하고 내 글을 라이킷하든 하지 않든 그녀에 대한 나의 책임은 계속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항상 내 예상을 벗어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