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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ul 14. 2020

그녀는 특별할 거라는 상상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쩌면 내가 평생 열등감 같은 건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 느낌의 외모이고 그리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떠올리기만 해도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존재가 있다.  

자존심 상해서, 또는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게 사실이 될까 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람.


그녀는 대학생 때 한 학번 선배였다. 나는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멋진 사람이었다. 예쁘다거나 아름답다와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게 카리스마였다는 것을.

그 선배가 수업시간에 하는 말은 모두 맞는 소리 같았고 그 선배에 대한 소문은 늘 사실보다 엄청난 해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선배는 학교에서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나는 저어기 선배가 보이기라도 하면 멀리 도망갔었다. 마주칠 때마다 열등감과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그녀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니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그 사람은 학교를 자퇴하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회의 시스템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역시 내 열등감을 자극할 만한 사람이었다.

자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TV에 나오며 유명세를 떨치더니 지금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다.


재미있는 건 같은 지역 주민이라 가끔 마트에서 본다는 거다. 졸업하고 결혼하고 멀리 이사 와서 평생 볼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무슨 인연이 이렇게 질긴지.

우리 마을 마트 내 별다방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올 블랙의 깊고 진한 아우라가 한층 깊어진 카리스마를 뿜고 있었다.

밥도 먹는구나. 어린 소녀들이 아이돌 오빠들은 화장실도 안 걸 거라고 생각했다가 방송국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엉엉 울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딱 그 짝이지 않은가?

선배도 입 크게 벌리고 뭘 먹는구나.

내가 그때 아는 척을 했다면 대학생 때 캠퍼스에서 밝게 웃어 주던 것처럼 여전히 반가워할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또 도망갔다. 

도대체 20년이 넘도록 그녀는 몇 번이나 의문의 승리를 거두었을까?



나는 가끔 그녀에 대한 검색을 한다.

TV를 보진 않지만 스마트폰 짧은 영상으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곤 한다.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아주 조심스럽게 검색했으니 이건 뭐 아주 중증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녀는 연예인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학부모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

하긴 가끔 방송에 나올 때도 늘 가족들과 나왔지, 동료 가수가 함께 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학부모들과 친구 되기 힘든데 방송용 멘트를 했거나 아니면 사람을 잘 가리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지도 모르겠다.

시부모님과 함께 나온 방송에서 며느리를 칭찬하는 시부모 뒤로 긴장한 표정으로 과일을 깎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도 천상 대한민국 며느리구나. 일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고단하겠구나.' 싶었다. 


그랬구나. 그 사람도 참 외로웠겠다. 쉽지 않았겠다.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하고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 실제 나와 비슷한 경험들을 쌓았을 그녀가 조금 안쓰러웠다.

그 사람만 떠올리면 생각이 경직되고 손에 땀이 배어났는데 그제야 서서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걸 모르고 20년 동안 혼자 생쇼를 했구나.

 

누구나 살면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경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거다.

이 말에는 '별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대단하더라.'를 포함하지만 결국은 '그 대단한 줄 알았던 사람도 사는 건 다 똑같더라.'에 이른다.

사는 게 다 비슷하지, 뭐 그리 특별한 사람이 있을라고?

대학 때 나를 대단하게 생각했던 그 동아리 후배도 어쩌면 사람살이 특별할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지도 모르겠다. 설마 나처럼 20년 동안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재벌이라고 다를까?

얼마 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백종원의 부탁으로 못난이 감자 30톤을 구매한 후 그 감자로 감자옹심이를 해 먹었다고 sns에 올린 사진은 어쩌면 설정이 아니라 진짜 사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상적이거나 언론에 비치는 모습만 보고 우리는 얼마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가?

사람이 다 사는 게 똑같지. 뭐가 그리 특별한 사람이 있을까?


다음에 혹시 또 마트에서 선배를 만난다면 용기를 내서 아는 척을 해보고 싶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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