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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Nov 06. 2020

감정의 비대칭

그들이 생각하는 딱 그만큼만 나도 생각한다면...

아는 엄마가 카페를 하는데 매주 금요일마다 카페 앞에서 플리마켓을 연다.

주변에서 한번 같이 가자는 얘기는 계속 들었는데 여태 가보질 못했다.

가득 찬 옷장을 보며 올해는 정말 옷 사지 말아야지 매년 다짐을 해도 한 번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거기 가면 또 사게 될게 분명하다.


계속 미루다 그래도 한번 가봐야지 싶어 발걸음을 했다.

애초에 옷에 관심이 있어 간 것이 아니었기에 마켓이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느지막에 갔더니 이미 파장 분위기. 옷가지 몇 개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1-2만 원 붙여놓은 가격표에 비해 물건들이 꽤 좋아 보인다.

나는 속으로 진작 와볼걸 하며 "와 이거 좋다. 좋다"를 연발했다.

옆에 있던 직원이 "좋아요. 여기 처음 오셨어요?" 하는데 아는 엄마가 얼른 받아하는 말이

"응, 사실은 언니랑 많이 안 친해. 하하하"

농담 반 진담 반 하는 말인데 나는 조금 당황했다. 원래 그런 스타일의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다.

가만있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 나도 한마디 한다.

"응 우리 친해지길 바라. 좀 더 해야 해요. 하하하."


그 날 옷 두어 가지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 엄마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많이 안 친해. 많이 안 친해.

나는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올해의 결심을 어기면서까지 갔던 건데... 이 성격에 굳이 거기까지 갔던 건데... 그 사람에게 친한 사이는 어느 정도를 의미할까?


예민하고 사람 가리고 생각 많은 나에 비해 아는 사람도 많고 성격도 화통하여 두루두루 다 친해 지인 장사가 가능한 그 사람은 친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수많은 지인들 중에 보통 정도 친한 사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

10점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나에게 그 사람이 7점이라면 그 사람에게 나는 4-5점 정도랄까?

그 2-3점의 감정 차이.


서로 집에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절친이 아니라면 사람 사이에 이런 감정 차이는 생기게 마련이다.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이 감정 차이는 대체로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에게 상흔을 남기곤 된다.

그냥 무시할만한 감정인데도 이 사건으로 자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내 삶까지 돌아보게 된다.




추워진 날씨 탓일까? 나이 탓일까?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차마 연락하기 미안해서 연락처만 쳐다보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 7점을 주었을 텐데 나는 5점만 주었던 선배. 나에게 서운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던 사람.

같은 부처에 있다가 그분은 국방부로 나는 여가부로 전입했었다. 원 부처가 전출자를 배신자로 낙인찍는 분위기였기에 그 분과 나는 마치 죄인처럼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입해서도 잘 살고 있다고 서로를 격려하곤 했다. 같은 부서에서 바쁠 때는 직원들이 밤새다시피 함께 일했기에 진한 동료애를 느꼈던 선배이다. 부인이 투병과 완치, 재발을 반복했던 이야기와 아이들 대학입시 스토리까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던 분인데 나는 퇴직을 결정하고 의원면직이 진행되는 중 그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끝까지 공직을 수행하려던 그 분과 생각하는 방향이 많이 달랐던 나는 그동안 각 부처의 분위기나 승진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다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기가 어려웠다.


퇴직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었고 하루 빨리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고 바쁘게 움직였기에 선배와 차분하게 얘기 나눌 상황이 안되었다. 퇴직하고 글 쓰며 살 거라고 공공연히 말한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까?

나는 퇴직 후 오전 시간 내내 글을 쓰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고 손이 아무것도 쥔 것이 없던 나는 그 해가 다 가도록 선배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기를 놓쳤다.


그러다 선배는 어느 날 여가부의 어떤 직원에게 내 안부를 물었다가 나의 퇴직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배신감이 들었을 거다.

올해 초 한창 귓병으로 고생하며 병원만 겨우겨우 다니던 어느 날.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직 소식을 들었다고 사실이냐고.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잡기 힘들다. 그 사람과의 감정 그래프 위의 점은 다른 위치로 달아나 있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괘씸하다며 아예 연락처에서 지워버리지 않고 먼저 연락해 주어서..

고맙게도 선배는 요즘도 가끔 전화를 한다. 회사 상황이 어지 몰라 내가 선뜻 연락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드디어 올해 마지막 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결국은 사람만 남는다. 퇴직할 때 다 좋았는데 친한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것처럼.

감정의 비대칭은 결국 비대칭으로 남을 것이다.

나도 당신에게 당신도 나에게 부족한 감정을 채우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서로가 맞닿은 감정이 있어 비대칭한 감정의 모양도 계속 변한다.

올해 겨울. 그리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있다. 완전히 기회를 날리고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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