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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Nov 10. 2020

부모님의 호텔 식사

이런 부족한 딸 같으니

서울 모처의 특급호텔 뷔페 2인 초대권이 생겼다.

1인당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식당이라 평소에도 맘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초대권이 생긴지는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남편과 한 번 가자고 가자고 하고 이렇게 1년이 지나버렸다.  초대권은 발행일로부터 1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올해 11월을 넘기면 그 아까운 표를 버리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이번 주에는 꼭 가자며 예약은 내가 하기로 했다.

코로나가 아직 불안한 상황이고 기사에서도 자주 접하듯 요즘 호텔업계 힘들다고 하니 당연히 자리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참내 우리는 감히 그 호텔을 너무 띄엄띄엄 봤나 보다.


예약실도 콜을 요청해서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들어보니 11월은 토요일 일요일 대기 예약까지 모두 만석이란다.

엥? 그럼 평일은요? 이틀 정도 브런치에 예약 가능하단다.

이번 달에 안 가면 날리는 건데 나는 무조건 하루를 잡아 2명 예약을 했다.

평일이라 남편은 못 갈 거고 그럼 누구와 가지? 엄마밖에 없다. 그럼 아빠는 어쩌지?

아빠라서 그런가 꼭 엄마보다는 나중에 떠오르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편하다.

에이 모르겠다. 엄마랑 가야겠다.

(이런 부족한 딸 같으니...)


엄마에게 카톡을 보낸다.

'엄마 신라호텔 식사권이 2장 있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같이 가줘.'

'좋은 호텔이네? 2장밖에 없어?'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괜히 찔린다.

'2장밖에 없어. (그러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그럼 두 분이 가서 연말 분위기 낼래? 근데 버스로 가야 해.'

엄마는 나도 같이 가잖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거 같다면서



엄마 거기가 얼마나 비싼데 애초에 초대권이 아니었으면 갈 일도 없었을 텐데 가서 내가 뭐 얼마나 먹을 거라고

사실 내 속마음은 이랬다. 물론 명성답게 대단한 곳이겠지만 요즘 나는 뷔페에서 뭐 잔뜩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생각이 많아지나 보다. 다들 우아하게 차로 올 텐데 버스 타고 언덕배기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 올라가서 그것도 말 많은 남편과 함께. 내가 있어야 아빠도 좀 가만히 있고 편하게 즐기다 올 텐데... 가는 곳이 워낙 웅장한 곳이다 보니 돈 쓰러 갈 때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하니 이건 뭐 누가 손님인지 모르겠다. 내가 있으면 그냥 한방에 다 해결될 텐데 두 분만 가라고 했으니...


괜히 그런 말을 했나? 엄마 입장에서는 집에 혼자 남을 아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눔의 호텔 식사권이 뭐라고 괜히 엄마만 심란하게 했나 싶었다. 버리긴 아깝고 추가로 돈 쓰기도 싫어서 괜히 엄마한테 떠넘긴 셈이 되었다. 좋은 음식 아빠도 먹고 싶을 텐데 아빠를 두고 가려했던 것도 딸로서 할 짓이 아니었어.

나는 왜 이다지도 부족할까? 내 자식들한테는 이러지 않을 텐데...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 이왕 식사하시는 것 여왕대접받게 해 드렸어야 하는데...

꼭 끝까지 가봐서야 깨닫고 만다.


나는 다시 예약실에 콜을 요청하고 3명으로 예약을 변경했다.

그리고 차로 편하게 가자고.


엄마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카톡에 엄지 척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좋으신가 보다.


엄마가 내후년이면 칠순이고 아빠는 그다음 해 팔순이란다. 어쩌면 시간이 얼마 안 남은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은 멀쩡하다가 갑자기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뒤늦게 후회하는 건 이제 하지 않을 때도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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