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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Nov 19. 2020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었다니

혼자 잘 사는 척, 세상 외롭지 않은 척, 자발적 아웃사이더 인척은 말 그대로 다 '척'이었나 보다.

어제의 외로움은 결국 새벽녘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나 자신을 상상하고 펑펑 울고 난 후에야 멈췄다. 파괴적인 하루. 


몇 주 전 아이들 놀게 애들만 우리 집에 보내고 자기는 볼 일 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해놓고선 커피 한잔 안 마시고 애들만 두고 가는 동네 엄마가 얼마나 섭섭하던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할 게 분명하니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아침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커피잔을 씻으며 혼자 기대에 차 있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그 사람은 그저 일이 있었을 뿐  우리 집에 오기 싫었다거나 내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모든 사물들까지  나를 거부하고 나를 밀어내고 결국은 상상 속에서 나를 아파트에서 밀어버리다니...

그렇게 나를 죽이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외로운 사람이었다니...



사실 상상 속 죽음의 발단은 어제가 시작이 아니었다.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나이 때 비슷한 엄마들이 있었다. 

한 명은 아이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인연을 이어왔고 한 명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퇴직을 해서 꽤 유대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 아파트 근처로 이사 오면서 한번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을 1년 전부터 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내가 여기저기 아프고 계속 병원을 다니던 관계로 여유롭게 집에 초대할 수가 없었다.

어째 계속 소원해지는 것 같아 아쉬워하던 차였다. 


오늘 아파트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보았다.

나란히 같은 마트의 초록색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단짝 여고생들처럼 붙어 다니는 그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언니들 오랜만이에요."

-한 명은 한 살, 다른 한 명은 두 살 위이다.-

"뭐하세요?"

"애들 태권도 끝날 시간이라 기다리는 중이야."

"아 그렇구나. 언니들 이사 와서 한번 초대한다 초대한다 하고 여태 못했네.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화요일이나 목요일 오전이 좋아요. 두 분이서 시간 맞춰서 한번 오세요."

나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언제 차 한잔 해요'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로 구체적인 요일까지 지정해서 말했다. 꼭 왔으면 해서...


"이거 뭐 인테리어 해서 우리 집은 영 그런 거 아니야?"

"아니 이거 집을 얼마나 예쁘게 해 놓은 거야?"

툴툴거리듯 말하는데 이상한 기운이 흐른다. 귀찮은 것 같은..



그 후로 그들은 나를 대할 때마다 이상하게 어색해했다. 우연한 만나거나 불쑥 같은 장소에 들어서 그냥 나가 버리지도 못했을 때 둘 사이에 생기는 침묵이 그렇게 숨 막히는 것인 줄 몰랐다.

그저 멀어지는 관계가 아쉬웠을 뿐인데...

그래서 이사 핑계 대고 커피 한잔 하고 싶었던 것인데...

핑계 댈 게 없어서 1년도 다 되어가는 이사 핑계라도 대었던 것인데...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넘어 아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꼭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속상했던 것이 아니다.

어떤 반응도 없었던 것이 무시당한 것 같고 속상했던 것이다.

"우리 언제 갈게" 라던지 "어떡하냐? 영 시간 맞추기가 힘드네. 우리 다음에 놀러 갈게."라던지

한쪽에서 '아'하면 저 쪽에선 '아'라든지 '어'라든지 어떤 반응이 있어야 한다.

서로 쳐다보고 있으면서 나는 '아' 하는데 저 쪽에선 분명히 들어놓고 아무 말 없이 이 쪽의 다른 곳만 보고 있으니...



그러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내가 아 했다고 꼭 반응을 해야 하나?

그들이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무시한 것도 나를 싫어한 것도 내가 귀찮은 것도 아니다.

그냥 반응을 할 적당한 시기를 놓쳤을 뿐.


최근 이렇게 시작된 불편한 감정은 비슷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었고 내 정서를 망가뜨렸고 아이들의 별스럽지 않은 행동을 지적하고 벌주었고 결국은 상상 속에서 나를 죽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은 그저 산이고 물은 그저 물일 뿐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싫어하거나 나에게 감정이 품지 않는다.

나 혼자 산과 물의 고약한 감정을 상상하고 미워하며 나를 벼랑으로 몰았다. 





11월에 내린 비중에는 104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아들 말처럼 오늘 아침 비는 폭포 같았다. 아이의 구체적인 설명에 의하면 빗방울은 방울방울 사이에 간격이 있는데 그 비가 너무 많고 빠르게 내리면 폭포처럼 물방울 사이의 간격이 사라진다고.

그렇게 비가 많이 오니까 오늘은 하굣길에 자기를 데리러 오란다.

하교할 즈음 하늘은 많이 개어 이미 폭포가 아닌 빗방울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아들이 폭포 핑계 댔던 것이 귀여워 나는 아들을 데리러 갔다. 



오는 중에 그들 중 한 엄마를 만났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힘들었다. 

그녀가 말한다.

"빨리 나오네? 현O야 안녕" 

우리는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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