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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Nov 20. 2020

공무원 퇴직 후 1년 반

작년 6월에 퇴직했으니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나는 2004년 국가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중앙선관위와 여성가족부에서 16년간 일하다 작년에 퇴직했다.

지나고 보면 이렇게나 시간이 빨리 간다.

재작년 여름, 공무원이자 두 아이의 엄마, 회사 간부의 아내 역할까지 해야 했던 시절, 거울 속의 지친 내 모습이 슬펐던 시절, 이렇게 시간에 이끌려 삶을 끝내려는가 분노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나는 내려놓아야 했고 엄마와 아내 역할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기에 직업을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시절 퇴직으로 향하는 중에 느꼈던 고민과 좌절, 미칠 듯 계속되는 갈등 그리고 결심과 실행. 그 과정이 내 초창기 브런치에 그대로 담겨 있다.


상당수의 구독자가 그 시절에 생겼고 자주 다음 메인에 떴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 퇴직 후의 내 삶이 궁금했을 사람들.

'후회할 것 같지 않으세요?' 물어보았던 사람들.


송별회 때 어떤 직원이 위의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후회할 것 같지 않아?"

직접 묻던 사람들보다 눈으로 물어보던 사람들 수는 그 열 배를 넘을 것이다.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후회할 수도 있겠죠.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확실한 건 있어요. 여기 계속 있으면 분명히 후회한다는 거예요. 매일매일. 그건 확실해요."


귀신도 모를 미래의 일을 나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결국 퇴직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시절만 잘 견디었다면 거기서도 잘 살아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후회를 잘 남기지 않는 사람. 늘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사람.

그래서 퇴직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공무원은 그만하고 앞으로는 글 쓰면서 살겠다고 했지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팔자 좋게 살려고 퇴직한다고들 생각했을 것이다.

표현이 조금 천박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공무원 퇴직이라는 흔치 않은 행동을 감행하면서 조금 쑥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럴듯한 공식적인 이유를 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글쓰기가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핑계였는지 모르지만 사실 글 쓰면서 살겠다는 당시 발언은 사실이 되었다. 아직도 글을 쓰고 있으니까. 글 쓰고 책 내고 그걸로 먹고사는 직업 작가는 아니지만 사실 애초에 직업 작가를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다.


퇴직 과정의 답답함을 한 줄 한 줄 풀어내다 보면 엉킨 털실 가지런히 둘러 새로운 털실뭉치 하나 만든 거처럼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람들은 마음의 엉킴을 무엇으로든 풀어내야 한다.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요리를 하거나.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작년 퇴직 직 후엔 무언가에 쫓기듯 글을 썼다.

연말 브런치 공모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마음이 급했다.

퇴직이라는 큰 이벤트가 남긴 여진처럼 무언가 새로운 결과를 내놓으려고 했었다.

지금은 작년만큼 많은 글을 쓰지는 않지만 좀 더 즐기면서 쓰고 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출간을 하려면 방법은 많다. 그러나 출간을 하면 또 바빠진다. 당분간은 이 여유를 좀 더 즐기려고 한다.


전업주부 생활의 반경이라는 게 그리 넓지 않아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쓰면 뭐 그냥 그렇게 살고 있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 중에 가끔은 멈춰서 여유롭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 쓰면서 성장하고 싶었기에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학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는 전실 창문을 열고 1층 입구에서 나와 학교로 향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 아파트는 경비아저씨가 아침마다 아이들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시는데 아파트 사이 건널목을 막 뛰어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 그런데 아들은 경비아저씨가 있어도 오른쪽 왼쪽 두리번두리번하며 천천히 길을 건넌 후에야 학교를 향해 막 뛴다.

조심성 많은 아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대견하다.

이런 일상을 차분히 보고 싶었다. 이런 시시콜콜한 순간들이 모두 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글을 쓰면서 점점 삶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이 좋아진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사무관으로 승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동생이고 회사에서는 후배였던 사람. 승진 욕심이 있었고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 사람도 괜찮아 내가 참 좋아했는데 승진했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 축하한다고. 너무 수고 많았다고. 진심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과거 직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퇴직할 때 어떤 과장님은 큰 애가 곧 사춘기인데 아이가 사춘기면 일부라도 떨어져 있으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걱정하셨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가장 걱정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내가 아이를 못살게 할까 봐,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다가 아이가 집을 지옥으로 여길까 봐


나는 지금 아이와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아이가 학교나 친구들 얘기를 많이 하는데 참 재미있다. 숙제가 많아서 새벽녘에 넋 놓고 앉아있는 아이를 안아주며 학원 숙제는 하지 말고 자라고 말해주었고 코로나로 계속되는 zoom수업으로 지친 아이가 병원핑계대고 땡땡이치는 것을 거들었다. 가끔 아이가 말하는 -어른 기준으로는-헛소리도 귀담아들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얘기들이다.


"엄마 내가 수학 공부하느라 너무 지치는데 다음 주는 수학학원 빠지면 안 될까? 그래도 학원 숙제는 할게"

"........(그래도 숙제는 한다는 게 어디냐?)....... 그러자"

그래도 아이는 스스로를 컨트롤한다. 며칠 후에 다시 정정하기를

"엄마 생각해보니까 수학학원을 일주일 다 빠지는 건 너무 한 거 같으니까 다음 주는 다 가고 내일 하루만 쉴게. 대신 토요일에 가서 보충할게."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정리하자면 결국은 수학학원을 다 가는데 아이는 원하는대로 되었고 나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준 셈이다. 스스로 잘 판단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면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작년의 그 삭막한 마음으로 아이의 이런 (헛) 소리를 들었다면 '그냥 끊어버려'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내가 옆에서 엄마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


퇴직할 때 돈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그래도 먹고살만하니까 하는 거지. 남편은 뭐해?

아니꼽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퇴직하면서 돈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이 넉넉히 벌고 있었고 내 월급 중에 이모님 월급 주고 차비에 밥값에 어디로 새는지도 모르고 사라지는 돈들만 잡아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로 폭락한 주식장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으니 사람일은 참 모를 일이다.

일할 때는 하루 종일 회사에 잡혀 1년 4-5천 벌었는데 지금은 집에 있으면서 6-7천을 벌었으니 따지고 보면 2-3배 번 셈이다.


차마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보험관리공단에서 자녀의 퇴직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한다는 문서를 받고 식겁했을 부모님. 퇴직 소식을 듣고 엄마는 '네가 잘했으리라 믿는다'라고 했고 아빠는 걱정되는 마음에 내게 편지를 써주시며 '네가 행복하면 된거지'하셨다.

그분들을 모시고 다음 주에 호텔 뷔페에 가기로 했다. 여유가 있으니 이런 것도 된다.

생각해보니 적당할 때 퇴직 잘한 거 같다고, 코로나로 애들도 계속 집에 있는데 엄마가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이 안정이 되지. 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때 남편은 내가 퇴직하고 나중에 후회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도 만족한다.

새벽마다 자기 셔츠를 다릴 일도 없어졌고 주말마다 식물에 물 줄 일도 없어졌고 가끔 녹색어머니 교통정리나 아이들 픽업할 일이 없어져서 지금은 더욱 일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일할 때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절대 남편 셔츠를 다리지 않았고 승진 선물로 받은 난에 물 주는 것은 남편 몫이라며 모른척했다.

지금은 꾸깃하던 셔츠가 말끔히 다려진 모습이 참 보기 좋고 파릇파릇한 식물들도 친구가 된 지 오래다.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기분.

세상 사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다.

내가 다니는 곳이 전부인 거 같지만 세상은 그 내가 다니는 곳을 뺀 나머지 모두이다.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분들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추워지고 있다. 이젠 진짜 겨울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모든 분들이 올 겨울을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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