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지인 사이

약속을 미루고 싶어질 때

by 고도리작가

그 약속이 어쩌다가 잡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비가 퍼붓던 그날 외부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지하철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자기 말만 하려는 그 아이

받지 말까 하다가, 며칠 전에도 그런 이유로 받지 않았기에 그 날은 받아주었다.


'윤ㅇ아~~ 어디야? 응 응 피곤하겠다. 야 작은애가 초딩 6학년이 되니까 왜 이렇게 내 생활이 확 편해지니?'

피곤이 확 몰려왔다.

'나ㅇ, 미안해 오늘 너무 피곤해서 오래 얘기 못할 거 같아' 서둘러 끊었는데

그 다음주에 그게 마음에 걸려서 톡을 보냈다.




'저번 주에 너무 피곤해서 얘기도 제대로 못했어

담주에 청사에 한번 와라. 목욜빼고 다 좋아'


잠시 뜸들이다


'참 그리고 나 브런치 작가 되었어 ㅎ ㅎ

부끄러워서 구독자 한 300명 정도 넘으면 작가명 말해줄게'

이 아이한테는 좋은 일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바로 답이 온다.

'어머!! 축하해~~ 담주 수욜에 갈게'






이렇게 생긴 약속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전화를 하고 톡을 하고 만나기까지 3주가 걸린 셈이고, 오늘이 그날이다.

그 시간 동안 계속 약속을 의식하고 있었다.


일부러 달력에 표시를 하거나, 핸드폰에 알람을 걸러놓거나, 일정에 포함해 두지도 않았는데

무관심하려 해도 약속 날짜가 계속 신경 쓰이고 그래서 까먹지도 않는 상태가 여태 계속되고 있었다.

어제저녁까지도 그 아이한테서 연락이 없기에 혹시 이 아이가 까먹어 준 게 아닐까?

아무 말도 없으면 그냥 조용히 점심에 운동이나 하러 가야지

이런 생각이었는데


웬걸. 어젯밤에 톡을 보내왔다.

'우리 내일 만나는 거 맞아? 내일 오전에 연락 줘'


대체로 즐거운 만남에 대해서는 일주일 전에 우선 약속을 하고

그 하루 전날 '우리 내일 만나는 거 맞지?' 확인을 하고

그 날 '나 여기 왔어요~~'

하는 게 보통인데


그 아이 톡의 느낌으로 보아서 내 마음 상태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던 거 같아 미안했다


'11시 반에 그때 후문에서 보자. 국물 끝내주는 칼국수가 있어. 괜찮아?'

당연한 듯이 보냈다.

'아차. 깜빡할 뻔했네? 내일 봐야지~~ '이런 설레발은 치지 않았다.



우린 친구일까?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각자 술만 마셔도 서로 무슨 생각인지 다 이해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둥 무언가 자랑하는 말을 할 때 앞뒤 따지고 문장의 어감 같은거 생각하지 않고 바로 불쑥

'좋은 일 생겼어. 나 작가 되었어. 으하하하하' 할 수 있고

그럼 그 좋은 일이 생긴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물어보면서 관심을 표현하는

항상 기다리진 않아도 연락하면 항상 반가운 그런 사람인데


명료한 축하를 앞세운 말의 단절


우린 친구일까?


대학 친구, 놀랍게도 20년이 되었다.

시간이 중요하긴 하지만, 시간이 꼭 다는 아닌가 보다

지인이라기엔 많이 억울하지만 친구라기엔 뭔가 부족한

그런 관계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은 후 강남에서 흔한 강남엄마로 살아가는 아이

강남 엄마들의 교육열과 학원시스템, 최신 트렌드

그런 이야기들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증명하고 싶은건지 끝없는 이야기
나는 많이 불편했다




이 아이와도 친구가 맞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의 유대감을 가지려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

너에게서 느껴지는 무언지 모를 불편함.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어릴 때는(20대까지) 친구도 지인도 모두 친구려니 생각하면서

그럭저럭 나의 관계망도 꽤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은 연락이 끊기거나 지인이 되었다.

아쉽지 않다. 소수의 진짜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물건도, 사람도 많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 좋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친구와 지인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 그래도 친구에 가깝긴 한데

뭔가 항상 관계에 있어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그 아이 만나서 국물 끝내주는 칼국수 먹으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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