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동생과의 제주도 여행기 4화
엑셀을 전속력으로 밟아 도착한 고기집. 점심때와 비교해 확연히 많아진 차들이 보인다. 주차할 곳이 보이지 앉자 두 형제는 하염없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몇 분쯤 기다렸을까, 마침 식당에서 사장님이 나온다. 사장님은 길게 늘어선 차들의 행렬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사장님 : 자리 곧 날것잉게 쪼매만 기다려주세요잉 !!
할 말만 하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사장님. 이때 형제들이 차 문을 내리고 말한다.
형 : 사장님 저희 기억하세요? 저희 점심에 왔는데 또 왔어요!
눈을 가늘게 뜨며 형제들을 기억해내려고 하는 사장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는 듯 형제들에게 답한다.
사장님 : 아니 제주도에 먹을게 그렇게도 없냐? 왜 여길 또 와부렀어?
형 : 너무 맛있어서 또 왔어요.
사장님 : 주차하고 얼른 들어와 고기 맛있는 걸로 준비 다 해놨응게.
형, 동생 : 네에엡!
사장님의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며 미소를 짓는 두 형제. 때마침 구석에 있는 차 한 대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형은 잽싸게 핸들을 틀어 차를 주차시키고 식당 안으로 입장한다.
사장님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주문을 받고 있다. 형제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창문 옆 자리에 착석한다. 사장님은 뒤늦게 형제가 들어온 것을 인지하고 주문을 받으러 다가온다.
사장님 : 뭐 때문에 여기를 또와부럿어? 고기에 환장했냐?
사장님의 말을 듣고 형과 동생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형 : 동생이 점심에 먹은 고기가 너무 맛있대서 또 왔어요.
사장님 : 우리 가게 고기가 맛있긴 혀. 우리는 바로 전날 공수한 돼지들만 써. 내가 말 안해도 먹어보면 딱 감이 올거여. 맛있다고 내일도 또 오면 곤란혀~
형 : 맨날맨날 올 건데 서비스 좀 많이 주세요 사장님.
사장님 : 술이나 많이 처먹고 가. 서비스는 알아서 내가 챙겨줄 것잉게.
정겨운 사장님의 전라도 사투리에 두 형제는 활짝 웃는다.
동생 : 저 사장님은 왜 제주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써?
형 : 그러게 신기하다. 사장님이 전라도에서 이사 왔나 봐.
동생 : 할머니 생각나네 오랜만에 전라도 사투리 들으니깐.
형 : 사장님 너무 웃기지 않어? 완전 츤데레야 츤데레.
동생 : 츤데레가 뭔데?
형 : 아니 겉으로는 툴툴대는데 속으로 다 챙겨주는 스타일 있잖어.
사장님이 직접 주방에서 고기를 가지고 나온다. 사장님은 능숙한 솜씨로 불판의 열을 체크하고 고기를 바로 올린다.
형 : 사장님 저희 소주 한병이랑 맥주 두병 주세요.
사장님 : 컵은 어떻게 줘?
형 : 맥주잔만 주세요.
사장님은 종업원을 향해 소리친다.
사장님 : 여기 소주 하나 맥주 둘~ 맥주컵만 ~
형, 동생 : 감사합니다아!
사장님 : 근데 둘은 무슨 사이여? 친구여 뭐여?
사장님은 말이 많고 들떠있는 형과,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어수룩한 동생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형 : 아 저희 형제에요.
사장님은 눈이 동그라진다.
사장님 : 아니 뭔 형제가 이렇게 안 닮았어? 형이 동생 꺼 다 뺐어먹어서 형만 커부럿네. 동생은 이거 형 주지 말고 다 먹어부러~ 이거 집게로 계속 뒤집어주다가 오분 뒤에 맛있는 냄새나면 그때 먹어~
형, 동생 : 네 감사합니다아아.
사장님은 쿨하게 형의 손에 집게를 쥐어주고 새로운 손님을 맡는다. 형은 문득 동생을 위아래로 자세하게 훑어본다.
형 : 야 근데 우리 둘이 그렇게 안 닮았나? 너가 늙어 보여서 그런가봐.
동생 : 아 뭐래 닥쳐~
형 : 아니면 너 탈모 심해서 너를 내 아빠로 본거 아냐?
동생 : 아 진짜 닥치라고!
형은 동생을 놀리는 것이 재밌어 계속 웃는다. 동생은 무시하고 반찬을 집어먹는다.
형 : 아 진짜 배고프다 이제 거의 다 구워졌으니까 먹자. 나 술좀 따라조.
동생 : 오키 소맥?
형 : 어어 소맥으로 줘.
동생은 능숙한 솜씨로 소맥을 만들어 형에게 건넨다.
동생 : 난 맥주만 따라줘.
형 : 알았어. 야 근데 너 소맥 왜 이렇게 잘 만들어? 어디서 만들어봤어?
동생 : 아 내가 형 소맥 만들어준 것도 거의 10년인데 당연히 잘 만들지.
형 : 그건 그렇네 크크 이제 먹자.
동생 : 오키오키!
형제는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불판을 두 번 정도 갈고나서야 형제는 입을 떼기 시작한다.
형 : 아 빈속에 술 먹으니 술 올라온다. 야 넌 오늘 여행 첫날인데 어땠어? 오늘 바다는 진짜 재밌었지. 내일도 또 오고 싶다.
동생 : 어 진짜 재밌었어 완전. 부모님이랑 올 때랑 진짜 느낌이 달러. 자유로워.
형 : 진짜 그렇네. 우리끼리 오니까 뭐든 다 우리가 정하니까 좋은 거 같아.
동생 : 맞어. 진짜 자유로웠어. 오늘
자유라는 단어를 자꾸 쓰는 동생에게 형은 근황 톡을 시작한다.
형 : 요즘 공장일은 어때? 너 팔목도 다쳤잖아.
동생 : 팔목은 어쩔수 없어. 아파도 해야돼. 아맞다 근데 일 없으면 나 짤릴수도 있대.
형 : 뭐??? 그렇게 회사가 직원을 그렇게 막 짤라도 돼?
동생 : 아 일이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짤리면 다른 공장 찾아야지.
동생은 무덤덤하게 말하며 고기를 집어먹는다. 형은 그런 동생에게 괜히 짜증을 낸다.
형 : 야 너는 회사 짤리는게 그렇게 쉽냐. 그런 일 생기면 미리미리 형한테 말해서 다음 회사 준비하자고. 왜 이렇게 대충대충 살어?
동생 : 아 나도 신경 쓰고 살어.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공장이 어렵대. 나도 일 오래 하고 싶은데 어쩌라고...
동생이 시무룩 해지자 형은 다른 소재로 화제를 바꾼다.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형 : 아 알았어알았어. 잔소리 안 할게. 야 그러면 너는 나한테 뭐 하고 싶은 얘기 없어? 평소에 못했던 이야기들 있잖아.
동생은 5초 정도 아무 말을 하지 않더니 무겁게 입을 뗀다.
동생 : 음… 나는 부모님한테 서운한 게 항상 있어. 아빠는 항상 나랑 형 차별하잖아. 형은 친구들이랑 여행도 가고, 술 먹고 밤늦게 들어와도 아무말 안하는데... 나는 맨날 일찍 들어와서 집에 있어야 되잖아. 그런게 진짜 불공평해.
형 : 아 그거야 너가 어렸을 때 좀 아팠잖아. 그래서 부모님이 너를 사랑하니까 걱정하는 거지. 너를 안 생각했으면 너를 챙겨주지도 않을껄?
동생 : 나는 그게 제일 힘들어. 나를 위해서 해준다는 게 너무 힘들어.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해주는 것들은... 그건 진짜 나를 위하는 게 아니야.
형은 동생의 진심어린 말에 할 말을 잊는다.
동생 : 나는 안 아픈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게 꿈이야. 어디서든. 오늘 제주도 여행이 좋은 것도 똑같애. 여기서는 나를 아픈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없어서 자유로워. 나도 친구들이랑 밤새서 놀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어. 근데 그게 집에서부터 부모님이 나를 아픈 자식 취급하니까 내가 밖에서도 어떤 취급을 받겠어. 난 이제 더 이상 아픈 자식이 아니야. 나도 형처럼 평범한 자식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난 도움도 필요 없고, 아무도 신경도 안 써줬으면 좋겠어. 나를 아픈 사람으로 보는 게 난 제일 힘들어.
갑자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동생을 보며 형은 적잖이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형 : 야 취했어? 갑자기 말을 왜 그렇게 빨리해? 래퍼인 줄 알았네... 근데 야 나는 진짜 그렇게 생각 안 해. 나는 내 친구들한테도 너 자랑한 적도 많아. 난 한 번도 너 아픈 동생으로 차별한 적 없어. 난 솔직히 진짜로 너가 자랑스럽고 내 동생이어서 고마워. 그니까 앞으로 형이랑 살 때는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든, 밤새서 들어오든 너 맘대로 해. 난 절대 신경 안 쓸게... 그 대신 술 먹고 늦게 들어올 거면 내가 좋아하는 피자빵 사 와.
동생은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동생 : 알았어 형이 좋아하는 피자빵 사갈게. 사실 난 형한테 진짜 고마워. 형이랑 같이 살고부터는 행복해. 진짜 많이 행복해. 마음 한편이 확 터진 느낌이야.
형 : 나도 그래. 내 동생이라 항상 고마워. 진짜로라니까? 진짜 고마워. 진짜로. 야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너는 내 동생으로 다시 태어나야 돼 알았냐!
소맥을 연거푸 마신 탓인지, 형은 조금씩 말이 꼬인다.
동생 : 아니 다음엔 내가 형으로 태어날래. 내가 형으로 태어나서 여행도 많이 가보고, 친구도 많이 사귈래.
형 :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 그러면 너가 형으로써 나 챙겨줘야 돼.
동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형에게 소리친다.
동생 : 아 당연하지. 그리고 나는 형이랑은 달리 진짜 완벽한 형으로 다시 태어날 거니까 두고 봐.
형은 술에 취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형 : 야 나 같은 형이 어딨다고~~~ 야 제주도 오는 것도 내가 다 계획도 짜고 돈도 많이 낸거 모르냐? 어이없다 진짜. 나 취해서 여기서 누워버린다?
동생 : 아 이렇게 취하는 형은 필요 없어. 왜 이렇게 취했대? 적당히해.
형 : 아 동생이랑 술 마시니까 재밌어서 그렇지~~ 야 벌써 열두 시야? 우리 숙소까지 걸어가자. 노래 부르면서. 어? 제발 ~~~
동생 : 아 알았어.
형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 계산대 쪽으로 간다. 사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려 두리번거리지만, 사장님은 보이지 않는다. 사장님을 찾는것을 포기하고 계산 후 고깃집을 나선다.
형 : 아 벌써 다음날이네. 열두 시 넘었어!! 근데 제주도에서 취하니까 기분 좋다 안 그래?
동생 : 아 취했으면 곱게 집에나 가.
형 : 야 우리 노래 부르면서 걸어갈래? 오랜만에 버스커버스커 정류장 부르면서 가자. 차는 내일 찾으러 오자.
동생 : 아 미친 알았어.
형은 핸드폰으로 버스커버스커의 정류장을 튼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핸드폰에서는 정류장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텅 빈 길거리가 두 형제의 노랫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잔뜩 취한 형을 부축하며, 동생은 형에게 분위기를 맞춘다.
(https://youtu.be/4A4O7SP5fa0 : 버스커버스커 정류장 링크)
형 : 해질무력 바람도오오 몹시불던나아아알 집에 돌아 오는 기이일 버스 창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 어쩌지도 못한 채애애애애애 ~~~
동생 : 나아안 그저어어 멍할 뿐이엇 지이이이 ~~~
형, 동생 :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문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수만 있따며어어어엉ㄴ 오 그대여어어어어 그대여서 고마워요오오오오오 예에에에에에에 ~~~
형 : 야 우리 2차 갈래?
동생 : 아 미쳤어? 내일 차 운전해야 되니까 빨리 집 가자고.
형 : 아 알았어알았어 야 너나 잔소리 그만해 ~~ 진짜 지는 나보고 잔소리하지 말라면서 지가 더해요 더해 ~~
동생 : 아 진짜 진상이다. 아 빨리 좀 걸어!
형과 동생은 티격태격하며 숙소까지 발걸음을 향한다. 형제는 비록 술에 취했어도,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기를 속으로 바란다.
두형제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고깃집에서 멀어져간다. 고깃집에서 테이블을 치우던 사장님은 그제서야 형제들이 떠난걸 알아채고, 문 밖을 나와 형제가 떠난 쪽을 처다보며 혼잣말을 되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