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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z성 Sep 21. 2020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특별한 동생과의 제주도 여행기 3화 

어느덧 창문 너머로는 초록색 섬이 보이기 시작했고, 기내에서는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 주시고, 꺼내 놓은 짐 또는 노트북 등 큰 전자기기는 앞 좌석 아래나 선반 속에 다시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안내 방송에도 두 형제는 깊은 잠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십분 후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하였고 사람들은 앞다투며 비행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꼬르르륵"


두 형제는 배에서 나는 소리에 잠을 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둘은 제주도에 도착한 것을 인지하고 주섬주섬 짐칸에서 캐리어를 내렸다. 도착 안내 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들이, 배에서 보내는 신호에 가까스로 일어나 서로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점심으로 뭐 먹을래?"


Safely arrived!

원래대로라면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가 짐을 맡겨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두 형제는 캐리어를 끌고 바로 식당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배고픔 앞에 두 형제의 무거운 캐리어는 전혀 짐이 되지 않았다.


"공항 주변에 먹을게 엄청 많네, 넌 뭐 먹고 싶어?"

"음... 형 먹고 싶은 거"

"그럼 내가 선택권을 3가지 줄게, 제주 흑돼지, 문어라면, 고기국수?

"음... 형 먹고 싶은 거"

"그러면 흑돼지 먹으러 가자"


제주도에서의 첫 메뉴 선택권을 동생에게 넘겼지만, 역시나 동생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이 쉽게 메뉴를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동생의 맥이 빠진 대답을 들으니 나도 진이 빠졌다.



선택하기 너무 힘들다고요!

동생은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다고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 특히나 음식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워낙 자기주장이 확고한 나로서는 동생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저 장애인이기 때문에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매번 쉽게 치부하며 넘어갔었다.   


하루는 내가 집에서 가지 카레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 동생이 당연히 맛있게 먹어줄 줄 알았지만, 동생은 맛보기도 전에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 먹기 싫다는 의사를 내비추었다.


나는 그런 동생이 너무 괘씸했다. 형이 정성스럽게 한 음식이라면 한 입 정도는 먹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나는 동생의 입에 억지로 카레 한 숟가락을 집어넣었다.


"어 생각보다 맛있는데?"라는 반응을 기대하는 나와 달리, 동생은 카레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헛구역질을 하더니 뱃속에 담긴 모든 것을 토해버렸다.


동생의 반응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순간적으로 충격에 빠졌다. 일단 동생을 달래고 식탁을 정리한 후 내 방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해프닝과 동생의 삶을 맞물려 생각해보니, 동생에게는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는 것 자체가 미지의 차원을 받아들이는 공포이자 두려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25년이 넘도록 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쳇바퀴같은 동생의 인생

지적장애인인 동생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집 -> 학교 -> 복지관이라는 쳇바퀴 이외에 다른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집 -> 일터의 반복으로 루틴이 바뀌었을 뿐, 동생은 단 한 번도 본인 의지로 쳇바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본인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기에 동생에게는 사소한 선택이라도 큰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동생이 장애인이라서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할 거라는 내 사고방식은 이기적이고 편협했다. 동생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내가 누렸던 것들을 어렸을 적부터 조금이라도 나누었다면 동생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동생의 삶에 있어서 항상 다양한 선택권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의 노력으로서 동생의 삶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동생에게 최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주기 위해, 몇십 개의 식당들을 사전에 조사해갔다.


흑돼지의 경우에도 그중 하나였다. 식당에 도착하니 대낮인데도 긴 웨이팅이 있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낮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릴까 내심 기대하며 자리에 착석했다.

 



제주공항 주변에 위치한 '칠돈가'


"이 삼겹살 진짜 맛있다. 그지?"

"어 그러네."

"와 서울에서 먹어보는 거랑은 진짜 차원이 다르다. 그지?"

"어 그러네"


서울에서 먹어본 고기와는 달리 매우 두꺼웠고, 멜젓이라는 소스에 고기를 찍어먹는 방식이 신기했다. 먹는 도중에도 "진짜 맛있다"를 남발하는 나와 달리, 아무 말 없이 무덤덤하게 고기를 먹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역시 입맛에 잘 맞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동생은 왜 이렇게 입맛이 까다롭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저녁에는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에 빠지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끝낸 뒤 속전속결로 차를 렌탈 하여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었기에, 큰 짐들은 프론트에 맡기고 간단한 수영용품만 챙긴 뒤 서쪽 해안가로 운전대를 향했다. 제주도에 사는 현지 친구가 스노클링만은 인생에서 한 번쯤 꼭 도전해보라고 전해주었기에, 나는 잔뜩 기대감에 차서 신나게 액셀을 밟았다.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 곽지 해수욕장

도착한 곽지 해수욕장은 그저 천국 그 자체였다. 우려했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한줄기 빛과 같은 햇살은 에메랄드빛 파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연휴 시즌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잔잔한 파도는 제주 여행에 온 우리를 은은한 미소로 반기는 것 같았다. 지체하지 않고 동생과 나는 3시간 내내 바다에서 파도를 즐겼다. 스노클링도 하고, 튜브를 타고 바다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파라솔 밑에서 맥주도 한잔 하며 제주여행의 첫날을 만끽했다.

동생은 튜브, 나는 스노클링
동생은 피곤한지 튜브 위에서 잠이 들었다

격렬한 물놀이를 하고 파라솔 밑에서 낮잠을 청하니 어느덧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3시간 넘게 물놀이를 했던 터라 동생과 나 둘 다 매우 피곤하고 허기짐을 느꼈다. 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간이 샤워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숙소로 차를 향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곯아떨어진 동생을 뒤로하고 나는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숙소로 향하는 내비게이션을 찍으려는 찰나, 동생이 뒷좌석에서 뜬금없이 일어나 한마디를 건넸다.


"형 나 저녁에 흑돼지 또 먹어도 돼?"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해 동생에게 되물었다. "점심에 먹은   먹고 싶어?  너가 별로 맛없어하는  알았는데, 그게 맛있었어?  맛있었어?"


처음으로 소심하게나마 본인의 의사를 나에게 밝힌 동생이 너무나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동생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동생이 조용히 말했다.


"그냥 맛있었어... 또 먹어도 돼?"


동생은 무덤덤하게 물어보았지만, 나는 동생이 정말 큰 용기를 가지고 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점심에 먹었던 고기를 또 먹자는 제안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동생에게는 '형 나 이제는 내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라는 큰 의미가 담긴 한마디였다.


나는 내비게이션의 도착지를 숙소에서 점심에 먹었던 식당으로 바꾸며 소리쳤다.


"당연히 먹어도 되지. 오늘은 배 터지게 먹자. 인생은 고기서 고기니까!"


백미러로 본 동생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당당해 보였다. 드디어 동생 입에도 기억에 남는 맛이 생긴 걸까? 나는 조금은 의아했으나 내심 뿌듯해하며 엑셀을 세게 밟았다. 첫날부터 술을 거하게 취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저녁에 다시 찾아간 '칠돈가'. 사장님이 또 왔냐며 환하게 맞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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