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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z성 Sep 06. 2020

애증의 장애인 복지카드

특별한 동생과의 제주도 여행기 2화 

여행 가기 2주 전부터 준비했던 동생과의 커플룩

"형 제주도는 지금 더워? 우리 바다도 가는 거야? 술도 먹을 수 있어?"

"응 ~ 형 바쁘니까 일단 뭐 하고 싶은지 다 적어놔"


제주도 여행이 어느 정도 확정되자, 동생의 마음은 이미 바다 너머 그곳에 있었다. 형과 가는 첫 자유여행이니 그럴 만도 했다. 동생이 하루 종일 유튜브 속에서 행복한 랜선 여행을 다니는 동안, 나는 침착하게 여행을 위한 To-do-list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흠... 일단 비행기 티켓 하고 숙소 예약부터 해야겠다.'


누구나 여행에 있어 가장 기대되는 일이라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특별한' 동생과 함께 가는 첫 여행인지라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동생을 보고 좌석을 바꿔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좌석이 넓은 비즈니스석을 예약해야 하나? 그러면 가격은 얼마지? 장애인은 맨 구석에 따로 자리를 배정해주려나? 너무 복도 쪽에 있으면 사람들이 동생을 의식하지 않을까? 장애인 동반이 자유로운 항공사가 있을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리가 아파온 순간 핸드폰 카톡이 울렸다.


"아빠 : 제주도 여행 간다며? 동생 복지카드 있으면 비행기 50% 할인되는 거 알지? 할인받고 여행 잘 다녀와~"

"네???  50% 할인이요?"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라 장애인 할인제도가 변경되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확실한 정보를 위해 각 항공사 사이트에서 장애인 할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항공사에서 적용되는 제도는 아니지만, 실제로 국적기 항공사에는 복지카드를 제시하면 '장애인 할인(1인) + 장애인 동반 할인(1인)'이라는 제도가 존재했다. 동생과 함께 가는 여행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할인제도였다. 나는 너무 기쁘고 흥분한 나머지 환호를 지르며 동생에게 달려갔다.


"대박! 야 너 복지카드 있어? 우리 복지카드 있으면 50% 할인받는대!! 내놔봐 빨리!!"


방방 뛰며 좋아하던 나와 달리 동생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가방 가장 깊숙이 숨겨뒀던 복지카드를 아무 말 없이 건네줬다. 순간 아차! 하며 실수로 인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 맞다... 동생 복지카드 꺼내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장애인들은 특정 나이가 되면 복지카드를 발급받는다


복지카드는 장애인 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공식적으로 장애인 관련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은 어렸을 적부터 항상 복지카드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것이 곧 신분증이자, 교통할인을 받을 수 있고, 장애인 주차구역의 권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깐. 나에게 동생의 복지카드란 그저 '혜택을 받기 위해 동생이 꼭 챙겨야 하는 물건' 이상과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다.


하루는 5년 전쯤 집 앞 지하철역에서 동생을 마주친 적이 있다. 당시 동생은 비장애인 대학생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중이었다(동생은 나의 권유로 비장애인 친구와 여가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참여했었다).


먼발치에서 동생을 바라본 후 내 갈길을 가려고 할 찰나, 동생이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원래대로라면 복지카드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했을 테지만, 비장애인 친구 앞에서는 복지카드를 꺼내지 않고 직접 돈을 내고 지하철 티켓을 끊은 것이다.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진 동시에 동생의 행동들을 과거부터 하나하나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가족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복지카드를 먼저 꺼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생 입장에서는 매번 복지카드로 혜택을 받는 행위 자체가 '나는 장애인입니다'라는 치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증명함으로써, 나와 가족이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쓰렸다. 동생도 나와 같이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낄 줄 아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동생에게 복지카드를 쉽게 보여달라고 하지 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그 금제를 고작 하찮은 비행기 할인 때문에 깨버린 것이다.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동생이 상처 받았을까 봐 걱정이 앞섰지만, 예약이 더 시급했기에 장애인 할인을 적용하고 결제를 마쳤다. 다음부턴 반드시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다짐을 하며, 동생의 눈치를 보며 잠에 들었다.






드디어 대망의 여행날이 밝았다. 커플룩으로 맞춰 입고, 에어팟을 하나씩 나눠 끼고 집을 나섰다. 나는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을 선곡하며 기사님께 외쳤다.


" 기사님 김포공항으로 가주세요"


공항 화장실에서 기념 셀카

공항에 도착 후 셀프체크인을 완료하고, 구석에 있는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여유를 즐겼다. 제주도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논쟁을 입이 아프도록 하다 보니 어느덧 탑승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니, 사실 한참 늦어버렸다. 


원래대로라면 30분 전쯤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둘 다 기대감에 취해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다. 헐레벌떡 뛰어 탑승구 근처에 도착하니 50m가 넘어 보이는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혹시나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벌써부터 난관이라니.... 어떡하지... 다음 비행기로 미룰 수 있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볼까? '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갑자기 동생이 나를 탑승구의 맨 오른쪽으로 끌고 갔다. 동생에게 이끌려 간 그곳에서는 "패스트 트랙 우선 입장"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패스트 트랙 우선 입장

'패스트 트랙 우선 입장 :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의 경우 패스트 트랙을 이용하여 우선 수속이 가능합니다' 동생은 침착하게 가방에서 복지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형.. 나 복지카드 있으니까 우리 빨리 들어갈 수 있어"


단 한 번도 나에게 복지카드를 먼저 꺼낸 적 없던 동생이, 웃으면서 복지카드를 꺼냈다. 나는 순간 벙쪄서 동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생은 아픔, 시련, 희생, 행복의 감정이 모두 공존하는 웃음을 나에게 짓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더 이상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본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고통과 시련들을 인정하고, 마침내 그것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동생이 학창 시절부터 당해온 상처와 아픔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동생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기적인 형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 동생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동생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동생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너그러운 웃음을 답례로 보냈다.






"저기요 안 들어가실 거예요? 신분증 보여주세요"

"아... 네 잠시만요.."


순간의 깨달음에 취해 멍을 때렸더니, 어느덧 내 뒤에도 줄이 생기고 있었다. 더 이상 늦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었기에, 보안 검색대를 통과 후 동생과 함께 힘차게 캐리어를 끌고 달렸다. 긴 탑승구를 달리며 내 눈에 흐르던 것은 땀이었을까 눈물이었을까.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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