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알리샤 리우가 금메달을 따버렸다.

by tennistory

https://brunch.co.kr/@tennistory/468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벌써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다. 매년 2월 말 혹은 3월 초, 이 도시의 밤을 붉게 물들이는 차이니즈 뉴이어 퍼레이드(Chinese New Year Parade) 때문이다.

다가오는 3월 7일 열릴 이 축제의 주인공, ‘그랜드 마셜’로 중국 대표팀의 얼굴인 아일린 구(Eileen Gu)가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던 피겨스케이팅에서 알리샤 리우(Alysa Liu)가 기적 같은 금메달을 따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왜 '미국의 영웅' 알리샤 리우가 아니냐며, 지금이라도 마셜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테니스토리가 이 흥미로운 논쟁의 이면을 좀 파보았다.


1. ‘Lunar’가 아닌 ‘Chinese’일까? - 차이나 타운의 170년의 자부심

왜 샌프란시스코는 보편적인 ‘음력 설(Lunar New Year)’ 대신 ‘차이니즈’라는 명칭을 고수할까?

이 퍼레이드는 1860년대, 금광에서 쫓겨나고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중국인 이민자들이 "우리는 위험한 이방인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이웃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접 발명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이나 중국 본토 어디에서도 음력 설에 이런 대규모 거리 퍼레이드를 하는 전통은 없다.

대륙 횡단 열차를 놓으며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목숨을 바쳤던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1906년 대지진 이후 차이나타운을 향한 대규모 인종 차별을 지켜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했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오리엔탈 브랜딩’의 처절한 생존사가 이 이름에 담겨 있다.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수많은 조선인의 비극과도 그 맥락이 맞닿아 있다.)


2. 샌프란시스코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셜

샌프란시스코 퍼레이드 마셜의 명확한 국적 제한은 없다. 그동안 영화 <마지막 황제>의 조앤 첸, 글로벌 아이콘 아콰피나, 피겨 전설 미셸 콴 등 샌프란시스코 출신 유명인들이 이 역할을 맡아왔다. 한국계인 다니엘 대 킴도 있었다.

보통 마셜을 1월에 선정하는데,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아일린 구의 유명세는 알리샤 리우보다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알리샤가 밀라노에서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여자 피겨 개인전 금메달을 탈환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인지도에서도 밀리지 않는 '진정한 미국 국가대표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3. ‘두 소녀(Two Girls)’ : 실리와 신념의 평행이론

샌프란시스코(The City)의 아일린 구와 옆 동네 오클랜드(The Town)의 알리샤 리우.

아일린 구가 거대 자본과 체제의 상징으로 성장하며 '만찢녀' 같은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알리샤 리우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코치의 고된 통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귀하여 금메달을 땄다. 이는 단순한 승리를 넘어 어린 선수의 인권과 주체성을 상징하는 서사까지 더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mCfiFjoVE



4. "누가 진짜 우리의 얼굴인가?"

이제 시민들은 묻는다. "거대한 자본을 쫓아 타국의 깃발을 든 스타인가, 아니면 이 도시의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내며 정점에 선 로컬 영웅인가?"

흥미로운 소식에 따르면, 논란이 거세지자 주최 측이 두 사람을 '공동 마셜(Co-Grand Marshal)'로 세우거나, 알리샤에게 그에 못지않은 특별 예우를 갖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실리의 끝판왕 실리콘밸리를 품은 도시답게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마치며: 어느 삶이 더 빛나는가

실리를 택해 부와 영향력을 거머쥐는 삶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런 삶을 욕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월 7일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나란히, 혹은 엇갈려 행진할 두 젊은 올림피안의 모습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이며, 당신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틱한 서사시의 결말을 당신은 누구의 이름으로 응원하고 싶은가?


ps. 아일린 구의 퍼포먼스는 정말 '만찢녀' 그 자체다. 이번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보드 메달리스트들을 보면 조이 앳킨(말레이시아-영국 혼혈) 등 아시안 혈통 없이는 메달권 진입조차 힘든 세상이 온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RRpBK4g_aZI


ps2. 테니스토리니 테니스이야기도 해야겠지. 테니스계에서 이런 논쟁이 마찬가지로 있었다. 물론 미국-중국같은 국제 갈등의 정점은 다행이 아니어서 이렇게까지 첨예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살고 훈련하는 나오미 오사카가 일본을 대표해 도쿄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 나섰던 것을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잘 기억을 못한다. 팬데믹영향으로 국제적 관심도가 올림픽으로서는 매우 저조했기 때문. 하지만 일본 내애서는 꽤 논쟁이 있었다. "왜 이치로가 아니냐"는 보수층의 반발이 거셌고 테니스토리 입장에서도 일리있는 반박이었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O9B1U8Gx3E


ps3. 아일린구나 알리샤 리우나 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라난 동네는 거리로는 가깝지만 분위기가 천지차이이다.

- 아일린 구: 샌프란시스코의 Sea Cliff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손꼽히는 부촌

- 알리샤 리우: 오클랜드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 오클랜드 As 야구팀이 돈없어서 나온 이야기가 Money Ball 책과 영화.

AI에게 부탁해서 만든 두지역 분위기 차이 이미지.

image.png


작가의 이전글모든것을 다 이룬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