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요? 쿠마모토요? (2)

쿠마모토 2일차, 직업의식 투철한 쿠마모토 사람들과 쿠마몬

by 소란소강


옛날 전차라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써 보자


다음날 J와 나는 노면전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호텔에서 받은 쿠마모토 한국어 관광안내지를 보니 노면전차 1일권이 500엔이라고 했다. 어떻게 티켓을 사는고 하니, '구매는 전차 안에서 하면 된다’고 쓰여있었다.


쿠마모토 전차는 내릴 때 요금을 지불해야 했고 요금은 거리에 상관없이 170엔이었다. 앞 쪽에 기관사가 있고 전차 앞문과 뒷문이 있었는데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는 식이었다. 숙소 앞 전차역에서 일단 갈 방향 전차를 타고 내릴 때 기관사에게 말했더니 파우치 같은 가방에서 티켓을 꺼내 돈과 교환해주었다.


000007.JPG 사실은 3일차에 찍은 사진이지만, 쿠마모토 성과 노면전차
000042 (3).JPG 구식 전차 내부. 바닥은 나무이고 좁지만 예스러운 매력이 있다.
000012 (3).JPG 신식 전차. 넓고 깨끗하다.


노면 전차 승차권은 즉석복권 같이 생겼다


티켓은 복권 같이 생겨서 동전으로 해당되는 날짜 하루를 긁는 형태였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티켓 하나에도 재미를 더한다. 복권이 아닌데도 해당하는 연도, 월, 일 숫자를 동전으로 긁어내며 ‘복권 같은’ 기분을 내는 재미를 준다. 어쩐지 레트로한 느낌도 났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 팔던 ‘뽑기’ 종이 같이 동전으로 종이를 긁거나 접힌 종이를 펴면 당첨 상품이 나오는 것처럼. 3일 내내 1일권 티겟을 사면 종이를 계속 새로 받아야 하는 것과, 잘못해서 다른 날짜를 긁어버리면 티겟이 무효화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일본스러운 유머가 있었다. 유럽 트램에서 1일권을 펀칭 기계에 찍는 것도 새로웠지만 나는 복고풍이 나는 긁는 티켓이 더 재미있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티켓 발권은 매우 편리하지만 이런 감성이나 유머는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무조건 새 것으로 갈아치워서 편리하게만 만드는 것 같다. 복권 같은 티켓을 보고 나부터도, 참 일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런 느낌이 없는 것 같다. 굳이 느낌화 해보자면 매우 투박하고 기왕이면 빨리 한번에 해치워 버리는 느낌 정도? 그래서 투박하고 감성없는 디지털화가 그리도 빨리 진행되었나..



000009 (3).JPG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노면전차. 전차마다 외부 색깔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000042 (2).JPG 정류장. 한국어가 기재되어 있어서 다니기에 편했다.


노면전차는 오래된 구식 전차도 있고 서울 지하철처럼 생긴 신식 전차도 있었다. 구식 전차는 나무 바닥에 문을 위로 여는 창문이 있었고 좌석은 벽면에 긴 소파가 붙어 있는 형태였다. 우리나라 지하철 같지만 좌석 구역이 나뉘어 있지 않아서 엉덩이를 좀 더 좁히면 더 많은 사람이 않기도 했다. 꽤 오래된 것 같았는데 여전히 거리를 달리고 있다. 신식 전차는 좌석이 2개 좌석이 마주보는 기차 같은 형태였고 플라스틱 바닥에 깨끗한 유리창이 고정된 신식이었다. 광고판도 별로 없었다. 편한 것은 신식이지만 재밌는 것은 구식 전차였다. 레트로한 분위기도 한 몫했다. 전차 개수도 구식형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구식 전차를 타면 마주 앉은 사람을 더 잘 볼 수 있어서 쿠마모토 사람들의 패션이나 표정, 스마트폰 장식은 물론 창문 위에 붙은 광고판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젊은이들 옷차림이나 학생들 교복은 세련되진 않았지만 수수한 매력이 있었다. 초고령사회가 실감날 만큼 열차에 노인이 많았는데, 노인이 타면 모두 길을 터주고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어딜가나 중국어와 한국어는 혼용되어 써 있어서 전차타고 다니기엔 편했다.


일본식으로 가꾼 스이젠지 정원에 들렀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데다가 인위적으로 가꾼 풍경이라 그리 와닿은 것은 없었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자연을 사람 입맛대로 바꾼 곳 보다는 자연경관을 최대한 유지한 곳에서 더 영감을 얻는다. 공원보다는 오히려 인근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더 재미있었다. 일본에는 참 네모난 경차들이 많다. 그것도 올리브색, 연분홍색, 군청색 등 다양한 색의 차들이다.


쿠마모토에 남은 지진 흔적들


쿠마모토 성은 2016년 4월 대지진으로 성 일부가 무너져서 재건공사가 한창이었다. 쿠마모토 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통로는 입장이 제한되고 있었다. 통행 가능한 입구를 지나자 특산물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성으로 통하는 정문을 지나자 버스 정류소만 한 작은 휴게소가 있었는데 날이 무척 더워서 물을 사고 에어컨 바람을 쐴 겸 잠시 쉬기로 했다. 휴게소 안에는 작은 TV에 쿠마모토 성과 관련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쿠마모토 성의 역사를 설명하고 지진 후 시민들이 쿠마모토 성을 비롯해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나서서 고친 모양이었다. 역사적인 흠들은 최소한으로 하고 힘을 합쳐 자연재해를 이겨내는 모습이 많이 나왔다. 꽤 큰 대지진이어서 쿠마모토역은 물론 가정집 곳곳에도 ‘힘내자, 쿠마모토!’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물리적 피해는 물론 심리적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시민들이 함께 노력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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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20 (3).JPG 쿠마모토 성 내부 신사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
000017.JPG 쿠마모토 성 내부 신사의 교통정리원


쿠마모토성은 먼 발치에서 보고 근처에 신사 같은 곳을 들렀는데 신생아들이 세례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정장차림을 하고, 어린아이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가족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거나 일정 나이가 되면 신사에 인사를 올리는 의식 같았다. 그날에 그 의식을 치르러 오는 방문객이 많았는지 신사 앞에는 교통정리요원이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방문하는 차량에 대고 인사를 꾸벅 하고 큰 목소리로 열의를 다해 주차공간을 안내했다. 교통 관련 유니폼은 항상 제복에 모자를 쓰는 것 같았다. 노면전차 운전기사도, 버스기사도, 차도에 있던 교통경찰도, 주차요원도 모두 제복에 각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일본은 이런 ‘각’을 잘 잡는 것 같다. 음식마다 소스가 다르면 소스 그릇도 각각 다른 모양의 그릇으로 올리는 것이나, 작은 물건 하나를 사도 정성스레 포장을 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 같다.


시내로 돌아와서 쿠마모토에서 유명하다는 돈가츠 집에 갔다. 돈가츠에 자부심을 갖고 운영하는 곳 같았다. 고기는 두껍고 튀김옷은 얇지만 바삭해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다만 소스가 달아서 J와 나는 연신 깍두기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가격은 한 메뉴당 1만 8천원에서 2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쿠마몬은 쿠마모토를 홍보하는 영업부장, 홍보천재 일본..


쿠마몬 스퀘어와 시내 쇼핑센터 구경을 했다. 쿠마몬 스퀘어는 쿠마몬 인형이 등장하는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쿠마모토 공무원이 쿠마몬 탈을 쓰고 공연을 하는 것이라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공연 영상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영상을 보니 달리 ‘공연’이랄 것이 없이 등장 후 손 흔들고 인사하는 정도였고, 관객은 모두 어린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쿠마몬의 일정이 어찌나 빡빡한지 공연 스케줄이 미리 공지될 정도였다. 스퀘어 안에는 [영업부장]직함이 있는 쿠마몬의 오픈 사무실이 있었다. 일정이 없을 떄는 자기 사무실에 있다고 한다. 사무실 옆에는 캐셔 겸 카페가 있는데 커피를 시키면 라떼아트로 쿠마몬을 그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매대에는 각종 굿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캐릭터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귀엽게 홍보를 하니,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일본이 캐릭터를 만들고 홍보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쿠마몬 하나로도 쿠마모토에 올 이유가 생긴다. 도시 곳곳에 쿠마몬이 없는 곳이 없고 시민들도 쿠마몬을 아주 사랑한다. 쇼핑센터를 둘러보니 쿠마몬 식당, 쿠마몬 펍부터 쿠마몬을 활용한 상점이 굉장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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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0.JPG 영업부장 쿠마몬의 자리. 지금은 부재중.


쇼핑센터는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크게 감흥은 없었지만 우리와 다르게 가는 곳마다 화장실 표기가 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쇼핑객들이 화장실 이용 후 편히 쇼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걸까.


여행은 내가 속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호텔로 돌아와 무료로 제공되는 야식 소바를 먹었다. 무료 제공 소바인데도 제법 맛이 있었다. 직원들도 깍듯이 인사하고 대접해서 맛이 더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 소바 한 그릇을 대접할 때도 개인용 트레이에 올려서 깔끔하게 내어준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매력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한번에 해치워버리는 투박함이라고 한다. 요리마다 전용 소스 그릇이 있고, 음식점 화장실 휴지도 양 끝이 고이 접혀 있는 곳에서 자란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식당 냅킨이 두루마리 휴지로 놓여있고 소스는 옆 테이들에서 쓰던 초장 통을 가져다가 통째로 테이블에 턱 하고 올리니까 말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익숙했던 내 고향을 보는 관점에 객관성이 생기는 것 같다. 사소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들이 낯설어 지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밤에는 호텔 대욕탕에서 온천(실제 온천 물은 아닌 것 같았지만)을 즐겼다. 유후인에 갔을 때 욕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튀기지 않으려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조심스레 몸에 물을 끼얹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쿠마모토 호텔에는 타 지역에서 여행온 일본인도 많았다. 욕탕을 쓰는 모습을 보면 같은 아시아인이어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이 될 정도였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목욕을 즐기고 욕탕에 들어갈 때도 얌전히 들어가는 사람들은 보고 있으면 일본어를 썼고 욕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욕탕이 광광 울리도록 큰소리로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들은 중국어를 썼다. 욕탕에 한국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욕탕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은 한국어를 썼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쿠마모토 사람들


이 날 만난 쿠마모토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굉장히 투철한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 장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것을 새로 갈아치우는 것보다 지키고 가꾸면서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겪은 쿠마모토는 그랬다. 심지어 쿠마몬 조차도 영업부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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