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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Nov 06. 2017

K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내맘대로 리뷰

** 영화를 이미 봤거나, 보기 전에 모~든 정보에 노출되어도 무관한 분들만 읽어주시기를..


블레이드 러너, 드니 뵐뇌브, 라이언 고슬링.
이 조합은 마치 커피, 초콜릿, 아이스크림............☆


<블레이드 러너 2049> 개봉일을 맞이하여,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보고, 프리퀄 세 편을 미리 예습했다. 개봉일이 조금 지나니 상영관이 많이 줄었지만 다행히 서울극장에서는 절찬상영중. 중학생 시절부터 다녔던 서울극장이라 상영관이 좀 낡긴 했어도 볼만 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는 이미 컸지만 그 큰 기대까지 만족시켜준 영화였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나는 우선 라이언 고슬링의 외로운 눈빛에 이미 매료된 고슬링덕이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와 'K'의 고독함이 찰떡같이 맞아 떨어져서 그것이 더 만족스러웠다. 배우 팬심도 있었지만 한스 짐머 음악감독의 역할도 컸다. 음악이 영화의 스케일을 한 단계 더 상승시켜주는 것 같다.

1. 정체성 찾기와 그 혼란의 객체 - 눈과 손
2019에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지구에 불법으로 잠입한 리플리컨트를 수색한다. 2049 역시 블레이드 러너 'K'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색은 하나의 단서로 시작해서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식이다. 


2049에서도 블레이드 러너 'K'는 신고를 받고 구버전 리플리컨트 '사퍼'의 집을 찾아간다. '사퍼'의 집에서 죽은 나무와 그 밑에 매장된 뼈를 발견하고 그 뼈의 주인은 여성 리플리컨트였고 출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플리컨트의 출산은 K에 의해 사살되기 전 '사퍼'가 말한 '기적'과도 같은 것. 타이렐사 몰락 이후 복제 기술을 이은 월레스 사에서도 아직 개발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K는 블레이드 러너의 사무국장 조시의 명령에 따라 기적과도 같은 존재,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면 큰 혼돈을 낳을 존재인 리플리컨트의 아이를 수색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정체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되고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K가 갖고 있는 유일한 기억이, 리플리컨트라면 으레 이식되어 있어야 할 만들어진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 겪은 일, 즉 실제로 일어났던 일임을 알게 되자 K는 자신이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라고 믿게 된다. 
2019에서 비가 자주 내리는 로스 앤젤레스를 그렸다면 2049에는 먼지와 섞인 회색빛 싸리눈이 많이 내린다.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게 된 K는 멈추어 서서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화면은 그의 거친 손바닥을 비추고 그의 손바닥 위로는 눈송이가 살금 내려와 녹아버린다. K는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기대 같은 것을 했을까. 

리플리컨트와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한다면(영화에서 이제 이런 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린시절의 기억과 고유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K는 기억이 실재한 것에 더불어 자신이 영혼을 가진 인간일 수 있다는 옅은 기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K가 자신의 기억이 실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움에 격하게 화를 냈다가도, 이내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K는 그 장면에서 단 한마디 대사도 없고 심정을 읽을만 한 눈빛도 보여주지 않는다. 굳은살이 박히고 거뭇한 흙먼지가 여기저기 묻은 손바닥만이 화면에 잠시 비춰졌다가 사라질 뿐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로이'는 첫 등장 장면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아직 안돼..."라고 말한다. 넥서스6 기종의 수명이 4년이라 점차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옴을 감각이 무뎌지는 손에서부터 자각한 것이다. 영화 막바지에는 완전히 무뎌진 손의 감각을 되찾으려고 손바닥을 날카로운 철심으로 찌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몸이 바뀌거나 변하는 장면에서는 흔히들 자신의 손부터 들여다 보곤 한다.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첫번째 행동은 자신의 손의 변화를 보는 것일까. K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물리적인 변화는 없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이는,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로이는 리플리컨트의 한계를 손에서부터 깨닫고 손바닥을 찔러 버린다. 자신의 손을 보고 K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로이는 리플리컨트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그리고 '확실히' 깨닫게 된다. 

K는 이후 자신이 리플리컨트임을 '다시' 깨닫게 되는데, 그때 역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에는 그의 손에 총이 들려있다. 역시 이 장면도 그의 총 든 손만 클로즈 업. 

(이 장면에서 그가 사랑하던 '조이'의 홀로그램 광고가 나온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지워진 '조이'. 단 하나 뿐일 것 같던 조이조차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홀로그램 상품이었던 것이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고 좌절로 빠지기 쉬운 순간에 K는 선택을 하고 그래서 그의 이후 행동이 더 고결해 보인다.)
K는 인간이 아닐지라도 대의를 가지고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월레스 사에 붙잡혀간 데커드를 구하기로 한 것. "불족종을 모르던" 리플리컨트 K는 이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실행하기 시작한다. 
K가 얼마나 기대에 가득찼을지, 그리고 얼만큼 실망했을지,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 보는 장면은 그 감정을 대신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에 그의 손은 복부의 깊은 상처를 붙잡고 있다. 데커드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생긴 상처를 부여 잡고 천천히 누워 이번엔 온몸으로 눈을 맞는다. '기적'을 알고 대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임을 K 스스로 실현해낸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019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경우에는 자신이 인간인지 리플리컨트인지에 대한 혼란을 말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로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을 겪은 캐릭터가 '레이첼'이라면 2049에는 블레이드 러너인 K이다. 혼란을 상징하는 객체가 레이첼의 경우 눈이었다면, K는 손이다. (2019에서도 '눈'은 여러번 강조되었다. 영화 첫 장면은 눈동자에 담긴 2019년 로스 엔젤레스의 야경에서부터 줌아웃되고ㅡ나는 레이첼의 눈동자라고 생각했다ㅡ, 리플리컨트 구분 실험은 눈동자를 관찰하며 질문하는 방식이고, 타이렐 사를 찾아간 데커드가 제일 먼저 본 것은 큰 눈으로 데커드를 바라보는 부엉이였고, 타이렐의 안경 렌즈는 눈을 강조한 거대한 크기였으며, 타이렐은 결국 눈이 파여 죽는다.) 


영화를 보면 한 장면이나 작은 제재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거나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드니 뵐뇌드 감독이라면 단 한 장면이라도 허투루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도 역시 그랬을 것이고.

2. '인간인가, 리플리컨트인가'라는 무의미한 명제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는 인간인가, 리플리컨트인가?"

<블레이드 러너>를 좋아하는 영화팬이라면 애정으로 갑론을박하기 좋은 명제이다. 심지어 리들리 스콧과 해리슨 포드조차도 이 명제로 의견 차이를 보였다고 하니 말이다ㅎㅎ 
2049가 개봉하며, 데커드가 30년이 지난 시점까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리고 '늙었기' 때문에 리플리컨트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9에서 로이는 데커드를 인간이라고 칭했지만, 당시 최신식 모델이던 레이첼은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당시 리플리컨트 중에는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뭐 여러 장면들을 보면 데커드는 인간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어디에서도 확실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런 게 재미이다!)
나는 데커드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인 데커드와 리플리컨트인 레이첼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고 이야기를 푸는 것이 훨씬 재밌기 때문이고, K가 자신을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 의심하는 장면에서도 데커드가 인간이어어야만 그 혼란의 맛이 배가 된다. 

2019에서 블레이드 러너인 종이접기 형사 '가프'가 데커드의 집 앞에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놓고 가는데, 그가 데커드를 잡으러 왔는지, 레이첼을 잡으러 왔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데커드는 유니콘이 달려오는 꿈을 꾸곤 했다. 이 꿈이 이식된 기억이라서 가프가 그것을 알고 있던 것이라면 데커드는 리플리컨트일 것이다. 종이접기 유니콘 때문에 데커드의 정체가 무엇인지 열띤 토론(!)을 했었더랬다. 

다만, <블레이드 러너>는 '정체'가 무엇인지 보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거기서 오는 혼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모호함, 곧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데 맛이 있는 것이지, 정체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2049 K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가 인간인지 리플리컨트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과 혼란과, 그리고 자신이 재정의 하는 정체성만이 중요할 뿐.

3. '조이Joi'와 '조Joe'의 사랑.....i와 e이 차이만 있는 둘
2049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K와 조이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음성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 진보했으나 혼란은 배가 된 장면.


2049에 '조이'는 형체가 없는 홀로그램용 여자친구 상품이다. K가 선물로 이동식 홀로그램 장치를 사온 뒤 조이는 집 안을 벗어나 K와 동행할 수 있게 된다. K는 조이를 정말로 사랑했던 것 같다. 리플리컨트에게 사랑이 얼마나 작동되도록 입력했을지는 모르지만, 장치 구매 이후 조이와 어디든 동행한 걸 보면 말이다. 그의 고독(이 고독의 정의는 누가 내릴 수 있단 말인가?)에 조이가 꽤 의존됐던 것 같다.
조이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줄도 알아서, K가 거리에서 만났던 여인을 불러 그녀와 싱크한 뒤 K와 사랑을 나눈다. 
K가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확실히 믿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K와 조이는 인간이 아니고, 심지어는 실체도 없는 존재이나 서로 사랑해서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도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구분은 더이상 무의미하다. 
복제인간과 끊임없이 구분지으며 권위를 갖고 성역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다. 리플리컨트는 단 한번도 인간에게 자신들을 창조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데도. 세상에 나와 제일 처음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인 것, 사랑을 느끼는 것, 자유의지를 지닌 것, 누구에겐 있고 누구에겐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영혼? 조시는 리플리컨트 아이에게도 영혼이 있을지 묻는 K에게 "넌 영혼 없이도 잘 살아왔어"라고 말을 잘라버린다.



앞서 말한 K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깨달을 때 홀로그램 조이가 홍보용 광고로 등장한다. K이 조이와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을 한 거대한 홀로그램 조이는 K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라고 부른다(명명한다). 이것은 광고 멘트의 일부. 
K의 조이는 그가 특별하다며 '조'라는 이름을 지어줬었다. 그러나 홀로그램 조이의 입에서 '조'가 내뱉어지는 순간, 관객은 그 이름이 홀로그램 상품에 내재된 데이터 중하나일 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K는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그리고 '확실히' 깨달아 버린다. K가 알던 '조이'는 수많은 조이들 중 하나였고 자신도 수많은 '조' 중의 하나였다는 걸. 여기서 K가 그쳤다면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여기서 K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간다. 조이의 등장 때문에 그 의지가 보여준 뜻이 더 강조된다.

* <블레이드 러너>(1982)에 대한 오마주
- 데커드는 리플리컨트가 증거물로 남긴 사진을 확대할 때 확대기에 사진을 올려놓고 부분 확대를 말로 실행시킨다. '구두로 지점 확대하는 방식'은 2049에도 여전하다. 
- 데커드와 레이첼의 첫 만남 장면이 재현된다. 소리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화면으로까지..! 
- 해리슨 포드가 30년 후 데커드를 연기한 것처럼, 요양원에 지내고 있는 종이접기 형사 가프의 30년 뒤 모습도 나온다. 여전히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ㅎㅎ

* 프리퀄 세 편
지난 30년의 이야기를 알고 봐야 2049의 재미가 훨씬 더 커진다. 2049에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는데 그 이전의 역사를 알고 있으니 이야기 퍼즐이 딱 맞춰지는 쾌감도 있다. 대정전 이후 인간의 리플리컨트 학살, 그리고 월레스와 사퍼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세 편이다. 프리퀄 1편은 애니메이션인데 퀄리티가 높다. 세 편 중 1편 러닝타임이 좀 더 긴데 재미있어서 너무 짧게 느껴졌다ㅠ

* 드니 뵐뇌브
드니 뵐뇌브는 믿고 보는 감독이다. 그의 다음 연출작이 너무너무너무너무나 기대된다. 연출력, 미장셴, 영상톤 모두사랑사랑. 

* 국내 관객수 약 31만 명
11월 초 기준으로 관객수는 31만 5천 명 정도이다. 북미에서도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전개가 빠르고 유쾌한 액션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이다. 요즘 빵빵 터지는 영화들에 비해서는 관객수는 적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애타게 기다렸을 그들과 할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 영화 이야기를 열띠게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K역을 맡아준 나의 Hey girl 스윗가이 고독미남.......
K한테서 <드라이브> 같은 냄새가 좀 나서 더 좋았다고 한다....

라이언 고슬링, 그냥 사랑...........



10월 말에 보고 11월에 쓰다
사진 출처는 모두 영화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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