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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Apr 23. 2017

한국영화에는 남자배우밖에 없나요

편협한 시각을 심어주는 한국영화의 편협성

한국영화는 소재가 '범죄느와르'밖에 없나요?

한국영화배우는 남자배우들밖에 없어요?


사춘기 무렵부터 영화를 좋아해왔지만 한국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극장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토리라인이 뻔하고 배우는 물론 캐릭터도 다채롭지 못한데다가 극장마저 획일적인 스크린독점을 행하고 있으니 편협한 영화에는 편협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스크린독점이야 한국영화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친 적이 있다. 영화산업 워크샵을 들었다가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었다(발을 빼긴 했지만 완벽히 벗어날 순 없었다..). 호불호가 너무 강한 사람은 한국 영화산업에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한국영화 특성에 대해 불호일 경우에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니면 끝까지 버텨서 판도를 바꿔보거나.


아래 영화들은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개봉영화 혹은 개봉예정 영화들이다.


<더 킹>, <공조>, <재심>, <프리즌>, <원라인>, <보통사람>, <보안관>, <특별시민>, <석조저택 살인사건>, <불한당>, <임금님의 사건수첩>, <대립군>, <청년경찰>, <V.I.P>, <군함도>



모두 남자배우 투톱 주연 중심 영화들. 그나저나 제목은 다 왜 이렇게 마초스러울까. 이것부터가 너무나 편협한 시각을 심어준다. 게다가 위 영화들에서 여자배우들은 여전히 조연이거나, 가끔 주연이어도 남배우의 조력자나 연인 같은 한정된 역할이 대부분이다.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수동적이고 남성을 '서브'하는 역할일 뿐이다. 이런 편협한 시각을 관각에게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도록 하기에 너무도 편리한 도구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들은. 그래서 관객은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봐야하는 수밖에 없다. 편이와 편리는 언제나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으니깐.


(그나마도 나오는 여캐릭터들은 엄청나게 전형적이다. '마담' 같은 스타일이라든지 쎈 파마머리에 둥그런 안경을 쓴 맹한 스타일이라든지. 보통 노처녀 혹은 작가를 그릴 때 그런 스타일을 입힌다.)


최근 기사에 한국영화의 이런 전형성을 꼬집는 의견들이 있기는 했다. 바뀌질 않아서 문제지. 


기사 내 배우 한석규의 일침이 눈에 띈다. 화살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는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여배우가 한 명도 없는 촬영은 처음이었다. 여배우들이 화날 일이다. 어떻게 여배우 없는 영화를 기획했느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31878&code=13200000&cp=nv


나에게는 이미 '한국영화는 어차피 안 바뀐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조금은 생각을 바꿔보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니 그만 화가 나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향력 있는 곳에 쓸 수도 없고 혼자 개인 계정에 화풀이하는 것밖에 되지 않지만은.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영화관을 다닐 때 쯤엔 한국영화에 다양성이 더 풍부해져 있기를 바란다. 그때의 영화산업과 비교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써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년 뒤에 극장은 사라지지 않겠지, 설마?)

일단 <히든 피겨스>가 상영하는 극장을 찾는 게 어려워서 화가 났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헐리우드에서는 여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흥행도 되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샘이 나서 화가 치밀었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먼 얘기 같아서. 


그래서 작년에 개봉한 엄지원, 공효진 주연의 <미씽: 사라진 아이>가 반가웠다. 크게 흥행은 못했지만! 헐리우드에는 이미 많은 여성중심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작년에 개봉한 <서프러제트>도 그렇고 얼마전 개봉한 <미스 슬로운>도.



그에 비해 우리영화에서 한국형 범죄느와르가 아닌 영화들을 찾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여자배우들이 고를 시나리오가 없다는 푸념이 왜 이렇게 씁쓸할까? 남자배우에 국한된 이런 틀에 박힌 주제들도 싫고 남자배우 캐릭터도 다 고갈된 상황이다. 조폭, 부패한 경찰, 부패한 정치인 등 배우들에 악감정은 없지만 최민식, 황정민, 곽도원, 이정재 등 비슷한 캐릭터를 변주에 지나지 않게 연기하는 것도 관객으로서 지겨울 지경이다.

 

주요 무비고어를 타겟팅 하면 20~30대 여성이 꼭 포함되어 있는데 과연 내가 그 세대의 입장을 정확히 대표하지 못하는 걸까? 남자 투톱 중심인 범죄느와를 영화들을 2030여성 세대는 정말 좋아할까? 2030여성이 문화예술에 관심도 많고 소비도 많은 편이어서 주로 타겟팅이 되기는 하지만, 한국영화마케팅은 정말 누구를 위한 마케팅인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영화마케팅 종사자도 대부분은 여자들인데. 컨셉, 투자, 제작, 배급, 마케팅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입김이 센 부분은 투자겠지. 투자를 중심으로 시나리오가 창작되고 영화가 제작되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2030여성은 주요 무비고어 타겟이지만 결국 흥행의 변수는 그래서 남성관객이나 중장년층일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돈 많으면 보고 싶은 영화에 투자도 하고 캐스팅에 훈수도 두고 시나리오도 맘대로 바꾸고 너무너무 좋겠다. 역시 자본주의! 돈이 최고야! 다양한 컨셉의 극장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관객들의 취향은 이미 다양한데(하지만 작은 극장들 상영리스트는 대부분 외국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럼 한국영화 투자자들의 취향도 좀 다양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혹은 한국영화의 범죄느와르 전형성은 1990년대 한국영화에 멜로가 주를 이뤘듯 한 때의 트렌드인 걸까? 


영화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이제 영화계에서 발을 뗐지만 한국영화 미래는 밝다고 했다. 나도 그럴거 같다. 여전히 모종의 시도들이 있고 취향이 다양한 관객들이 있으니까.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바뀌어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번 물러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렇다. 기득권 남성중심의 주제들을 다뤄온 한국영화가 여성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 나아가 사회의 소수자들을 어떻게 다룰지 지켜볼 것이다. 과연 한국영화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관객으로서, 업계의 발끝만 들여놓은 종사자 입장에서 무섭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남자배우 중심의 코미디 혹은 범죄 등의 전형적인 변주들만 토해내고 있는 한국영화 장르가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한 가변적인 '트렌드'에 지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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