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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Apr 23. 2017

일일 불쾌극

일일연속극의 편협한 시각에 대하여

#프로불편러의 일일연속극 감상기


요즘 웬만한 일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을 '프로불편러'라고 칭하던데 나는 이 명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구분해보면 나도 그에 속하는 것 같다. 그 명명 자체도 불편하니깐. 왜 내가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면 남들에겐 불편한 인간으로 찍혀야 하는가? 어쨌든 매사를 불편하게 보다보니 회의와 비관에 온통 젖어 있는 나는 프로불편러 맞다. 그래서 주변인을 지치게 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미안).


각설하고, 근 십 여년을 불편하게 여겨왔던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퇴근 후 저녁 여덟시 반. 할머니는 항상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공중파 일일 연속극을 보고 계신다. 어떤 내용의 연속극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고 그 시간대에는 항상 연속극이 하기 때문에 할머니는 매일 같은 시간에 TV를 켜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이 시간대의 연속극 고정 시청자라는 것. 우리집은 할머니를 쭉 모시고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네트워크에 밝은 편이다.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를 통해 동네 할머니들의 연속극 취향도 쉽게 알 수 있다는 뜻.


#할머니의 일일연속극

우리 할머니 같은 고정 시청자들-주로 중년부터 노년층-이 있기 때문에 공중파 일일연속극은 항상 시청률은 이십 퍼센트를 상회하며 인기리에 방영된다. 앞서 말했듯 어떤 내용인지는 관계없고 평일에는 여덟시 반 KBS1 일일연속극이고 주말에는 여덟시 KBS2 주말연속극을 보는 것이다. 심지어 연속극 제목들도 비슷비슷하다. 제목이고 내용이고 별로 중요치가 않기 때문이며 시청자들이 크게 개의치 않아한다는 것을 이미 방송국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사랑 금지옥엽’, '왕가네 식구들', '가족을 지켜라', '미우나 고우나', '별난 가족', ‘웃어라 동해야’, ‘빛나라 은수야’ 등등. 그나마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인 연속극은 줄거리가 대충은 생각나지만, 아무 특이점도 없는 제목들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도 할머니의 연속극 열성에 어쩔수 없이 노출된 적이 많아서 꽤 오래 연속극을 봐왔는데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 일일연속극의 지독한 공식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서서히 그 연속극들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속극이 답습하는 고정관념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대학교 때는 관련 내용으로 소논문도 쓴 적이 있다. 대학 졸업한 지도 벌써 몇년인데, 요즘 연속극을 봐도 변한 것은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최근 몇 년 간은 '1인가구'나 '페미니즘' 같은 키워드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근대성이 지켜오던 가족구성이나 사회구조가 굉장히 바뀌었는데도 그 흐름을 무시하듯 일일연속극들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가부장적 대가족 구조가 마치 한국사회의 대표 가족이라도 되는 마냥 행세를 한다. 여자는 무릇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야 하고 며느리의 행동거지는 이래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나는 그게 불쾌하고 화가 난다. 이런 내용들을 공공연히 찍어내고 송출하는 방송국의 의중이 괘씸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고 있지만 연속극을 쓰는 작가들도 밉다. 


KBS1TV 일일연속극 <별도 달도 따줄게> 공식이미지 중 한 컷. 전형적인 일일연속극의 한 장면이다. 남녀주인공이 결혼을 하고 주변인도 짚신짝처럼 맺어지는 대가족의 결혼사.


불편한 지점은 여러개가 있는데, 마치 공식처럼 매 연속극마다 등장하는 포인트 몇 개를 뽑아본다


기업을 소유한 가정이 꼭 하나씩은 등장한다는 것. 재벌 혹은 졸부가정 없으면 얘기가 진행이 안 되나?

반드시 대가족이 등장해서 주인공들의 연애며 혼사에 갖가지 간섭을 한다는 것. 

주인공들은 가족들의 간섭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는 것.

고부간 갈등을 다룰 때가 많다는 것. 그럴 때마다 현모양처상을 여주인공에게 강요하는 것.

위 내용들을 여러 연속극에서 계속해서 찍어내는 것.


내가 연속극을 싫어하는 (솔직하게 표현하겠다) 이유는 연속극으로 하여금 이상한 의식을 주입하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영한 주말 연속극에는 정부 주도의 “호구조사” 조사원이 방문해서 주인공들이 친절하게 조사에 응하는 장면도 나왔다. 마치 "봤지? 이렇게 잘 따르세요."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싫어하는 이유 하나 더. 작품 전체에 불필요한 이런 장면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특히 우리나라 연속극은 절대 비교 자체가 될 수 없는 지점이다. 드라마는 절대 예술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다. 가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장면을 보면 구역질이 나고 ‘오락’의 영역에도 끼워주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 <빛나라 은수야>, 며느리야 닥쳐라! 왜? 내가 옳거든.

요즘 방영하는 “빛나라 은수야”라는 연속극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은 무려 최근에 방영한 극중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한 대사이다.


“며늘애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식구들 아침 준비 해놔라.”

“너 그렇게 살림에 무관심할 거면, 회사 그만 둬.” 


이 대사는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아직도 아들을 둔 어머니가 집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인가?

며느리인 여주인공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침준비를 하고 엄마의 생일상도 차려주지 않았으면서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준비한다. 당연히 시댁에 들어와 살고 ‘분가’는 부모님이 허락해주셔야만 하며, 으레 시부모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순응적인 여주인공의 ‘착하고 말 잘듣는 여성상’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극중에서 주인공보다는 영악한 캐릭터로 그리고 있는 다른 여주인공인 ‘빛나’가 더 현실적이다. 시댁에 자기주장을 펼칠 줄 알고 솔직하다. 이 지점은 재산의 문제도 있는 것 같지만. (빛나네 집은 남자주인공 못지 않는 재력을 소유한 집안이고, 은수네는 극중에서도 등장했지만 ‘별볼일 없는 동네 세탁소’집일 뿐이다. 빛나는 기꺼이 시집을 온 것이고, 은수는 감히 시집을 온 것이다. 시어머니가 두 며느리에게 대하는 태도가 엄연히 다르다.)


텔레비전이 이런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주입하는 방식이 역겹다. 기성세대들에게 변화된 모습 자체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혹은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점을, 합리화 하며 우월하게 만족하는 지점을 연속극에서라도 보고 싶은 것 아닐까? 며느리에게 큰소리친다든지. 가진 놈들은 다 속물이라는 걸 확인 받는다든지.


할머니들은 채널을 많이 돌려보지 않고, 고정 시청하는 연속극들이 있다. 일반화하는 것 같지만 통계자료도 가져올 수 있다. 해당 연속극 시청률이 말해주고 시청 인구통계 자료가 말해준다.


요컨대 공중파 방송국은 이같은 구시대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전파하는 자세를 이제는 바꿔야만 한다.

이유는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속극이 세대 간 갈등만 낳을 뿐 득이되는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시대를 반영한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거실에서 상을 펴놓고 온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시청자의 세대를 간파하고 기성세대들이 갖고 있는 ‘의식’을,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화’시키고 있다.


KBS 연속극은 대부분 ‘공동체의식’, ‘가부장제’, ‘부모자식간의 위계관계’ 같은 것들을 강조한다. MBC와 SBS 연속극은 자주 보지 않았지만 이 쪽 연속극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큰 소리를 지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KBS보다 자극적인 음모 같은 것들이 등장해서 ‘막장’의 공식을 따른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케이블채널 방속국 드라마들이 훨씬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는 등 보다 다양한 입장과 사례들이 등장한다. 공중파는 여전히 한계에 갇혀 있고, 그 한계를 실감하면서도(실감하고 있겠지? 제발) 재생산하고 전파하는 모양새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생각의 변화보다는 생각의 안주만을 제공한다.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착한 이미지”를 고수한다. 더이상 착함이 해결책이 아닌데도.


#3 미국드라마시장 > 이게 다 돈 때문일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중 드라마 부문을 보면 드라마 자체도 장르별로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다. 산업 규모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골든글로브 오프닝에서 각종 장르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나와 영화 '라라랜드'의 오프닝을 패러디했다. 그 해 가장 화제가 된 영화와 티비쇼가 콘텐츠가 교차되어 재미있는 지점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드라마에서 이뤄질 수 없었던 장면을 뮤지컬 형식을 빌려 코믹스럽게 바꾼 것도(<기묘한 이야기(Strange things)>에서 안타깝게 죽은 캐릭터가 살아나는 등) 인상 깊었다.

연속극에 할당되는 제작비 때문일까? 결국 산업규모 때문에 우리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데 그치고만 있는 걸까? 취향에 문제는 없을까?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뿐일까? 혹은 바꿀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모두 해당될 수도 있도 내가 모두 틀렸을 수도 있다. 다만 팩트는, 일일 연속극이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주고 이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며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만행'이 이제는 현실을 조금은 깨닫고 앞장서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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