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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Nov 10. 2017

그럼에도 여행 가방을 꾸린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그리고 우리의 해외여행

9월부터 추석 무렵까지 여행 관련 에세이 책을 두 권 읽었다.

한 권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이고, 다른 한 권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다. 마지막 출근일은 정해졌지만 퇴사 후에 여행 계획이 없어서 여행 대신 읽은 책들이다. 두 권을 연달아 읽으니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고, 이 두 사람이 여행을 함께 다녀온다면 아주 신선한 여행기가 나올 것 같다는 유쾌한 상상도 할 수 있었다.


빌 브라이슨과 알랭 드 보통

간단히 말하자면 빌 브라이슨은 아는 것은 많지만 불평도 많은 미워할 수 없는 투덜이고, 알랭 드 보통은 가볍게 떠난 여행일지라도 학구적인 면을 발견하는 사색가이다.

빌 브라이슨은 여행지의 사람들과 문화를 보고 느낀 것 위주로 썼는데 유쾌한 문체로 글맛을 살렸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지에 가게 된 연유와 그곳과 연관된 학자나 작가를 중심으로 여행지를 안내한다. 브라이슨이 여행하는 순간을 중심으로 발과 피부로 여행지를 느꼈다면, 드 보통은 여행지와 관련된 과거의 학자에게서 배우며 느꼈다고나 할까. 빌 브라이슨의 여행은 '여행지'에 있고 드 보통은 '여행하는 자'에 있다. 그래서 목차도 브라이슨의 경우, 도시나 지역별로 나뉘어 있고 드 보통은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순이다. 

드 보통의 책에서 제목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배웠지만 이번 글에서 이야기할 책은 브라이슨 책이다. 그의 책에서는 드 보통 만큼의 지식이나 정보는 얻지 못해도 특유의 문체 때문에 여행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사실 나는 빌 브라이슨과 여행 취향이 비슷하다. 혼자 여행하길 좋아하는 투덜이다.




여행 예능 프로들의 유사성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신선함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관련 콘텐츠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은 어떠해야 하는 걸까? ‘지금 안 떠나면 바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각종 여행 광고들에 휩쓸려서 가는 게 여행일까?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이니까 나만 안 갈 수는 없어서 떠나는 게 여행일까?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이 우선 되는 게 진짜 여행일까? (난 이렇게 투덜이이다. 빌 브라이슨과 비슷하다. 이 책에 끌린 것도 그와 나의 유사성 때문이고 주위에서 내게 이 책을 추천해준 것도 그 때문이다.)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여행 패키지도 다양해졌고 미디어에도 여행 콘텐츠들이 많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객 증가는 저가항공이 큰 몫을 했다. 올해 1인당 해외여행 횟수는 평균 2.6회라고 한다. (출처 기사) tvN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예능 jtbc <뭉쳐야 뜬다>, 팀별로 자유여행을 다녀와 여행지를 비교하는 예능 KBS <배틀 트립> 등 종편은 물론 지상파까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새 여행지의 정보를 얻거나 다녀왔던 곳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고 여건이 어려운 경우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애청하는 것 같다. [여행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EBS <세계 테마 기행>이 더 나을 것이다. 여행 관련 교양 프로는 여행지의 사람과 문화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행 프로그램이 해외여행지의 예쁘고 멋진 관광지와 호텔, 그리고 얼마나 싸게 여행을 다녀왔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얼마 전 정규 방영되기 시작한 MBC every1의 여행 예능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조금 다르다.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방송인의 고향 친구들이 처음 한국을 방문해 여행하는 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여행 예능이 내국인의 해외여행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의 국내여행으로 시점을 바꾼 것이다. ‘거꾸로 보기’의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 편만 기획되어 방영했다가 반응이 좋아 정규 방송으로 편셩되었고 케이블 채널임에도 10%를 넘긴 적도 있다. (현재도 케이블 프로그램 중 시청률 상위권 유지 중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문화를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외국인의 모습이 신선하고, 해외여행을 가봤다면 느꼈을 막연한 불안감을 그들도 똑같이 느끼는 모습에 공감했을 것이다. 시차나 날씨에 적응하기 힘들다거나, 식당 문화를 몰라서 주문에 실패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등 낯선 곳으로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겪어 봤을 막연함과 불안함을 외국인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관광산업 현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외국인이 한국 여행에 흥미를 느낄 부분이 많은데도 관광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첫 번째 게스트였던 알베르토가 한 말이다. 이탈리아 한국 여행 가이드 책에는 아직도 홍대 놀이터가 젊은이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음식점도. 이탈리아 친구들은 밥집을 찾다가 결국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 특히 서울은 유행이 빨리 변하는 곳이기도 해서 인쇄된 가이드로 홍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더 관광 홍보 채널에 다양성을 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블로그나 SNS에서 여행정보를 얻는 것과 달리, 가이드 책을 주로 보는 유럽에 대한 홍보는 더더욱.




어떤 여행기보다 더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책,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은 수많은 유럽여행서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책이다. 여행 에세이라면 무릇 기대할만한 정보나 감성이 없고 불평불만 투성이라서 더 신선하다. 그래서 정보 나열식 가이드 책보다 유럽 문화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여행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럽은 기존 미디어에서 보고 들은 것과 정말 다르다. 오죽하면 '파리 증후군'이 생겼을까. 프랑스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일본인에게 발생한 우울증으로, 환상과 실제의 격차로 충격을 받아 생긴다고 한다. 수많은 여행 가이드나 에세이는 여행지의 좋은 점을 부각한다. 그래야 여행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일까. 그런 논리라면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야 할 텐데, 오히려 이 책을 보면 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이란 결코 고상하고 우아한 것만이 절대 아님을,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문체 덕분에 깔깔 웃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쫄딱 젖기도 하고, 기차를 놓치고, 유럽 특유의 융통성 없는 불친절에 상처받지만 그것 역시 이내 익숙해지고, 무질서에 아연실색하다가도 도가 지나친 질서 유지에 분개하기도 한다. 게다가 유럽을 혼자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여행지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대로 외롭고, 지랄 맞으면 지랄 맞은 대로 괴롭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는 이도 나뿐이고 공감할 이도 나뿐이다. 시종일관 빌 브라이슨은 투덜거리고 불평이 많지만 가끔은 아주 "브라이슨다운" 실용적인 정보를 줄 때도 있다. 가령, 이런 것.


“코펜하겐에서 스칸디나비아 페리를 타고 여행할 때는 절대 제일 먼저 내리지 말자. 모두들 선두에 가는 사람이 나가는 길을 알 것이라고 믿고 그 뒤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여행 책자 중 한 권은 제목이 <이탈리아 가자>인데 <다른 가이드북 사러 가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자는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럴 거면 여행을 왜 가?”


그러나 그럼에도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문득 마주친 낯설고도 아름다운 경관 앞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잊는다. 여행을 다녀온 후, 기억이란 미화되기 쉬워서 고생은 잊고 아름다운 장면만 남곤 한다. 그래서 또 여행 가방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여행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집 떠나면 고생인 줄 알면서도, 그 불편함에 뛰어드는 것.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떠나 낯설고 불안한 장소에 뛰어드는 것.

공교롭게도 그 낯섦과 불편함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여행 가방을 꾸렸다





덧붙이자면,

<어서 와 한국이 처음이지?>에도 불편한 부분이 있듯(식당 직원을 '이모'라고 부르도록 알려주는 것 등),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에도 불편한 지점이 있다. 특히 유럽 여성에 대한 시각이 그러한데 1990년대에 유럽을 여행하며 쓴 글이니 감안하여 읽었다.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속단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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