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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Dec 05. 2017

사랑의 권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가장 사랑할 때에 사랑을 그만두거나 혹은 계속해서 사랑해나가거나

11월에 쓴 글.


얼마 전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재개봉했다.

지난해부터 마니아층이 많은 추억의 영화들이 꾸준히 재개봉되고 있다. 극장가 성수기가 아닌 시즌에 주로 재개봉 영화들이 한 편 이상씩은 개봉하는 듯하다. 주로 감성적인 영화들이 재개봉되는 편이라 재개봉을 해도 극장가에 큰 이변을 몰고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억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재개봉 소식을 듣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터라 극장에서 보기로 했다. '불륜 소재 영화'라고 한마디로 낙인찍기 쉽지만 그렇게 낙인찍어서 외면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다. 제작된 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여운은 그때나 지금이나 먹먹하고 묵직하나 또 잔잔하다.



#1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이오와 메디슨 카운티에서 가정주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프란체스카. 성실한 남편과 중고등학생 아들과 딸을 두고 있지만 그의 일상은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청소를 하는 것이 전부다. 가족들은 언제나 프란체스카의 역할을 당연하게 여겨서 그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프란체스카가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은 딸이 와서 팝 채널로 돌려버리고 식사 시간에는 상차림에 대한 인사나 사소한 대화조차 건네지 않는다. 프란체스카는 이미 아이오와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에게 미국 중서부의 조용하고 건조한 일상은 체질상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십 년 가까이 살아서 적응은 되었을지언정 그의 본래 성향과는 너무도 달랐을지도. 그런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는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선물해주고 그의 취향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 프란체스카에게 필요한 것은 그만을 향한 작은 관심과 진심 어린 애정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대회 참가를 위해 집을 떠나 프란체스카는 나흘간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족들이 길을 떠난 날,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로버트가 촬영차 메디슨 카운티에 방문한다. 프란체스카는 그에게 길을 안내해주며 그가 찾는 '지붕 있는 다리'인 로즈먼 다리까지 동행한다. 로즈먼 다리에서 촬영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에겐 강렬했던 그 나흘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되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아이오와를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프란체스카는 현실적인 이유로 거절한다. 메디슨 카운티 특성상 정직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에 어긋나는 이들은 공동체에서 거의 제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에게 성실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이유 없이 손가락질받는 것이 겁났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순식간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메디슨 카운티에서는 단조로운 일상만 있을 뿐 자발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선택할 수 없는 자극은 없었고, 변화는 오직 외부에서만 올 수 있었다. 외부에서 온 자극이 바로 로버트였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거절할 것이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하대를 받던 '루시'라는 여자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버트는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프란체스카를 향한 감정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감정.

나흘 뒤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그의 일상은 로버트를 만나기 이전과 똑같이 돌아간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남편과 장을 보러 나선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와 마주하게 된다. 로버트는 본래 일정보다 메디슨 카운티에 며칠 더 머무르며 프란체스카의 결정이 달라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그러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못한다. 울음은 터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로버트의 차를 눈으로 좇기만 한다. 정지 신호에 걸려 로버트의 차를 향해 뛰쳐나가려 문고리를 세게 쥐어 잡지만 프란체스카는 결국 내리지 못한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조우.


△ 포토 포스터 4종. 나흘간의 대표 컷을 포스터화했다. 필름 느낌의 필터와 폰트, 스틸컷 선정 모두 굿.


이 영화가 더 아름다운 이유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나흘간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죽음 이후 사랑을 이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뜻에 따라 죽은 뒤 화장되었고 뼛가루는 그들이 처음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했던, 로즈먼 다리에 뿌려졌다.  

프란체스카의 딸 캐롤라인은 엄마가 로버트와의 사랑을 간직하고 슬픔으로 삭히며 남은 생을 보냈다는 생각에 마음 아파한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위해 장만했던 드레스를 꺼내 입고 캐롤라인은 메디슨 카운티에 머물며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자신을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프란체스카의 삶은 누군가의 눈에는 아이오와처럼 건조하고 황량했을지 모르나 그의 내면은 언제나 볕이 따뜻하고 활기찼던 고향 이탈리아 바리 같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향의 생동감, 자신의 특별함을 발견해준 유일한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을 영원히 지켰으니 말이다.


만약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선택해서 메디슨 카운티를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랑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면. 주인공이 사랑과 일상에 권태를 느끼는 가운데 어떤 자극(사람, 사랑)을 만나고 결국 그 자극을 선택한 결과에 대해 쓴 작품도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폴은 오랜 연인 로제를 떠나, 스물다섯의 청년 시몽을 택한다.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로제와의 사랑에서 폴은 안정감과 권태를 동시에 느끼며 외로웠고, 시몽은 그런 폴을 보드랍게 안아주며 자극했다. 일과 연애에 모두 능숙한 로제와 달리 시몽에게는 수줍어하면서도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신선함이 있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자 폴은 시몽의 청년성, 특유의 우울함과 위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폴이 오랫동안 연애한 로제에게 느꼈던, 끝이 보이는 감정을 시몽에게서도 느껴버린 것이다. 빠르게 빠진 만큼 빠져나오는 것도 빨랐다. 폴은 결국 다시 로제를 선택하고 시몽은 그런 폴을 떠난다. 그러나 폴은 이전과 똑같은 안정감에 도태된 듯한 권태와 차갑고 얼얼하나 무색무취인 외로움에 다시 휩싸인다.


#3 <우리도 사랑일까>

 <우리도 사랑일까>의 여행작가 마고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대니얼에게 묘하게 끌린다. 그러나 짧은 마주침에서 끝날 줄 알았던 감정은 또 우연히! 마고의 앞집으로 대니얼이 이사 오게 되면서 이어진다. 마고는 남편과 사이가 좋았음에도 점점 권태를 느꼈고 그럴수록 자유분방한 예술가 대니얼에게 흔들린다. 

마고는 결국 새로운 사랑을, 그러니까 설렘을 택하지만 그 설렘에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이전과 같은 권태가 찾아온다.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마치 같은 장면처럼 유사하다.

남편과의 안정된 일상, 누군가의 아내로서 지내는 일상에 느꼈던 권태를 영화 마지막에는 대니얼과의 사랑에서도 느껴버린다. 새롭게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도 찾아온 똑같은 권태. 마고의 마지막 표정은 공허하고 뿌옇다. 그다음 마고의 선택은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이제는 마고가 외부의 자극이 아닌 자신 내부에서 설렘을 찾았기를 바라본다. 


두 작품에서 주인공은 안정된 일상을 새롭게 바꾸는 변화를 택하지만 그 자극에도 익숙해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권태와 공허감에 휩싸이는 주인공의 심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4 우리는 권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


권태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 현실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가보지 않는 길, 해보지 않은 일에 새로움과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뛰어들고 싶게 만든다. 지겨운 일상이나 낡은 사랑 같은 것은 덮어두고 새로운 자극, 변화, 설렘 같은 것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감정들은 통상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극과 설렘을 선택하고 나면 삶이 대단히 달라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 예상이 매번 들어맞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우스워서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면 안정감과 함께 곧 권태와 다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길, 새로운 자극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더라도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은 따른다. 어느 쪽이 아름다운 선택일까? 감정의 절제와 감정의 인정 가운데의 가치판단, 그것은 선택한 자의 몫일 것이다. 인간의 유약함, 그것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 이 작품들 덕분에 우리는 비슷한 삶의 기로에 놓였을 때 선택에 있어 조금 더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영화와 소설이 내게 주는 작은 쿠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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