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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an 16. 2018

십대의 자아형성과 여성 프레임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십대 여성이 자아형성 과정에 노출되는 폭력성에 대하여

-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는 자해와 자살을 시도한 십대 여성이 주인공인 미드와 영드이다. '해나'와 '레이'는 자신만의 자아를 가꾸어 가는 시기에 타인이 만든 여성 프레임에 갇힌다. 스스로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되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1. 십대들의 심리


<루머의 루머의 루머> 주인공 '해나'에게는 깊은 믿음이 있고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 친구가 사람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해나에게 문학이 있었다면 좀 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해나가 시를 창작하고 낭송하는 도서관 클럽에 참석했던 시도는 문학과 글쓰기에서 조금이나마 안식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모임에서 지은 시가 학교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았더라면 해나는 문학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겪는 끔찍한 환경들이 긴 인생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이 상황들은 언젠가 다 끝이 날 것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13 Reasons Why>  관련 이미지 / 출처: 공식 텀블러


제작후기 영상에서 심리학자들이 십대들의 심리를 설명해주었는데 그 나이 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운 상태로 빠진다고 했다. 해나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은 쓸모없고 폐만 끼치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삶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이 생각에 갇히게 만든 상황도 상황이지만 해나 스스로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해나에게는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전이 필요했다. 사람들에게는 이미 많은 일을 겪으며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해나가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치유해나갔으면 싶었다. 책 속에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조금씩 넓혀갔다면 삶을 끝낼 열 세가지의 이유가 나열되기 전에, 점차 그 이유들이 구체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나기 전에 해나 스스로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기도 약간은 조심스럽지만. 그녀의 죽음을 분명히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해나의 자존감은 형성되면서 상처를 받아 점차 무너져갔다.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붙잡아줄 단 하나의 온기가 있었다면.


운동부원이자 같은 반인 '잭'은 해나에게 호의를 표하며 다가가려 하지만 해나는 잭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해나는 이미 많은 사건들에 연루되며 깊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고 잭은 그 사건들에 완전히 관계가 없던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 해나의 사정을 모두 이해하기에도 잭은 해나와 똑같은 열일곱살일 뿐이었다. 잭은 "네가 겪은 사건들, 소문들, 거기엔 어느 정도 네 책임도 있는 것 같다"라며 해나를 떠나버린다.


상황은 항상 이런 식이다. 피해자는 피해자가 될 짓을 했고 피해자도 어느정도 당할 짓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사건의 경우 이 논리가 설득력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해나의 경우는 아니다.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쪽 실타래를 풀면 다른쪽 실타래가 더 엉키듯이 상황은 계속해서 꼬이며 해나를 조여왔다. 상대방의 상처를 모두 보듬어 줄 수는 없다. 전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해버릴 만 한 것도 아니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팻 다이어리>도 영국 십대들의 이야기이다. ('십대들'의 이야기인 것은 <루머의 루머의 루머>보다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고민에도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 '레이'는 자신이 예쁘지 않고 뚱뚱해서 인기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자책이 심해서 자기학대를 하기까지 시작하고 방학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하게 된다. 


 <My Mad Fat Diary> 스틸컷


레이는 여전히 학교를 비롯해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들이 자신을 보고 손가락질 할까 두려워하고 그래서 솔직할 수도 없다. 유일한 해소 수단은 일기장 뿐이다. 그녀는 일기장에 모든 것을 털어놓고 조금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이것도 문학치유의 일종) 퇴원 후 친구들을 만나면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성장해가고 상처받고 무너졌던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해간다. 레이는 한때 자살 시도를 했었지만 새로운 가족과 단짝친구, 첫사랑, 그리고 같은 아픔을 겪은 친구를 만나며 우정과 사랑의 온기를 배운다. 그리고 레이는 이제 죽음이 아니라 남은 삶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며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간다.


청소년기는 자아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다. 가족은 물론 친구, 그리고 주변환경이 자아와 자존감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준다. 작은 상처도 사람에 따라 아픔의 정도가 다를 수 있듯, 누구나 겪는 십대 사춘기, 누구나 겪는 학창시절의 에피소드들이라고 간단히 여기지 말고 세심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2. 십대 여성, 타의로 갇히는 프레임


두 드라마 모두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과 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십대 여성을 보여준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잣대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의 '레이'는 이미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남들의 시선에 쉽게 상처받고 무너진다. '핀'과 학교 화장실에 갇혔을 때,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이 학교 킹카인 핀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수근댈 것을 먼저 두려워 한다. 핀과 달리 그의 친구들은 레이를 존재 자체로 존중해주지 않고 '네가 남자 같이 편해서 좋아'라며 프레임 속에 가둬 버린다. 레이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좀 더 털털한 척을 해보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레이의 자존감을 위해 애쓰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레이는 고통을 받지만 그래도 결국엔 딛고 일어선다. 주변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국 레이 자신이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는 기차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드디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My Mad Fat Diary> 포스터 / 출처: imdb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그래서 '해나'는 레이처럼 딛고 일어서지 않고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해나'는 잘못 퍼진 사진 때문에 '헤픈 여자애'라는 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친구였던 알렉스가 해나의 몸매를 평가하며 쓴 쪽지 역시 의도치 않게 학교로 퍼지면서 남학생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만 했다. 소문이라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소재, 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실체도 없는 소문에 우리가 공들여 쌓은 신뢰와 애정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보라. 결국 믿음과 우정은 꺠졌고 해나의 학교 생활은 더 이상 예전처럼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신뢰와 애정은 아무것도 없을 때 쌓는 것보다 흐트러진 상태를 처음과 같이 회복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13 Reasons Why>  스틸컷 출처: Netflix


해나의 자살은 그녀 자신만의 선택이 아니다. 자살은 결코 취사 선택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해나를 죽음으로 몰아 간 것이 과연 열 세가지 이유 뿐일까? 


자살하는 장면을 불편하게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우리 누구도 그 자살에서 결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면이 불편한가? 해나가 받은 '불편함'의 정도와 과연 비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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