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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ul 02. 2017

이유 있는 #페란테열병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사랑받을지.

김영하 소설가의 팟캐스트에서 건진 책 중 하나. 이 팟캐스트에서 추천해준 책을 많이 샀는데 대부분 읽어보니 좋은 책들이었으나  <나의 눈부신 친구>는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2011년 출간되었을 때 '페란테열병'(#FerranteFever)이란 신조어가 생겼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왜 페란테에 열광하는지는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로 읽어보면 안다. 브런치에는 차차 서평을 올릴 예정이고 여기에는 1권에 대한 서평만 싣는다. 예전에 활동하던 독서모임에 서평으로 제출한 글인데 서평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위주이다. 페란테열병에 휩싸인 독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인공 레누를 보며 나의 옹졸함이 다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이야기 흡입력과 표현력이 너무도 매력적이라 사리분별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이다. 



너의 눈부심과 나의 옹졸함


매일 끔찍했던 출퇴근길이 이 책 때문에 기다려졌다. 출근하면 쉴 새 없이 일을 쳐내기 바쁘니까 출퇴근길에 책을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싶을 만큼 깊이 빠졌다. 재미있는 소설이 그렇듯 이토록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그만큼 스토리 자체에 힘이 있거나 그 속에 담긴 심리에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레누’가 성장하면서 겪고 느끼는 경험과 감정들을 무척 상세하게 서술하니까. 그도 그럴것이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는 4부작 중 제 1권)은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자전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도 필명이고 인터뷰도 서면으로만 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의 생애나 가치관을 미리 알고 보면 작품을 접하는 데 조금 수월해지는, 혹은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엘레나 페란테는 그 접근과 방식을 모두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작품은 오직 작품 그 자체만 독자를 만나면 된다.


#1 다만 널 미워하고 있어

<나의 눈부신 친구>는 레누와 릴라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를 담고 있다. 특히 사춘기는 둘의 주된 ‘에고'가 형성되는 시기인데, 레누와 릴라는 서로의 뛰어남을 알아챔과 동시에 서로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은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를 품게 된다. 소설은 레누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떄문에 릴라의 가치관은 레누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는 없다. 레누는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가 되고 싶어했고 언제나 자신보다 월등한 수준을 보여주는 릴라보다 자신이 좀 더 우수함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했다. 레누에게 릴라는 언제나 1등이었고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레누는 자신이 릴라보다 못하다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릴라는 레누가 가진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겉으로 표현하거나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릴라는 레누가 자신에게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그런 면에서도 릴라는 레누보다 더 똑똑, 즉 영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릴라는 언제나 명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줄 알았지만 레누는 아니었다.


“아마도 이것이 질투나 증오 같은 감정에 대한 나의 반응이자 나름의 대응방식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릴라에게 느낀 종속감과 그 미묘한 매력을 이런 식으로 포장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릴라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녀가 제멋대로 구는 것도 함께 받아들이도록 나 자신을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빠진 뒤 무작정 바다로 향했던 릴라와 레누. 물론 제멋대로인 릴라가 제안한 일이었다. 레누는 부모님께 들켜 호되게 혼이 났고 릴라는 용케 들키지 않았다. 올리비아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레누. 아버지의 반대와 집안 형편 때문에 동급생 가운데 매우 뛰어났음에도 중학교 이상 교육은 포기해야 했던 릴라. 릴라는 레누에게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부모님이 널 때리기만 했어?"
“그럼 뭘 더 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라틴어 수업에는 계속 보내주시겠대?"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릴라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런 걸까? 릴라는 부모님이 벌로 내 중학교 진학을 취소하게 하려고 나를 꼬드긴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할까봐 그렇게 서둘러서 나를 다시 데려온 걸까? 세월이 흘러 오늘에 와서야 나는 생각해본다. 사실 릴라는 때에 따라서 이 두가지를 모두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릴라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릴라에게 레누는 언제나 그런 아이였고. 이 애정과 질투가 섞인 감정은 단짝친구가 있었다면 자연스레 가져봤던 감정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이 옹졸하고 졸렬한 면모에 공감하지 않을 독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인간의 이러한 졸렬함은 여전히 유효했고 유효할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누는 호화로운 결혼식장에서 앞으로의 불행을 암시하는 신부 릴라의 불안한 표정을 발견한다. 레누는 릴라를 축복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릴라 역시 미모를 뽐내며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자신과 달리 고등교육을 받는 레누에게 묘한 열등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마치 보란듯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넌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서로를 쓰다듬으면서도 사실은 '다만 널 좋아, 아니 널 미워하고 있어'. 친구란, 우정이란 사실 그런 것인데 누구도 표현하지 않는 그런 복잡한 심정들이 이 소설엔 전부 담겨 있다.


#2 나에서 친구로, 고향에서 고향 바깥으로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레누의 세계는 ‘나폴리’에 국한된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친구관계와 사춘기의 변화 같은 것들에 주목한다. 2권인 <새로운 이름이 이야기>에는 레누의 청년기가 다뤄지면서 그녀의 세계는 ‘나폴리’ 바깥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레누는 자신이 어떻게 나폴리를 흡수해왔고 절대로 지우거나 떼어낼 수 없는지, 외부 세계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며 성장한다. 2권에서 다루는 감정은 그래서 더 영역이 넓고 깊다. 3권은 5월 말에 출간되었고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4권은 올해 연말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1권 프롤로그에 서술하고 있듯 릴라는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속했던 66년 동안의 모든 것들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선. 레누는 여전히 제멋대로인 릴라에게 불현듯 화가 났고 자신과 릴라의 이야기를 상세히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3 다시 누군가의 출근길을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유년시절의 전부였던 친구의 영향력을,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특수성과 그 영향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권의 제목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이다. 3권과 4권에는 레누의 어떤 물리적, 심리적 변화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폴리 4부작은 성장과 성숙을 거듭해가는 레누의 모습과 그가 속한 세계 나폴리의 변화,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는 특수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나는 나폴리 4부작이 세기가 바뀌어도 오래도록 회자될 거라고 본다.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그렇듯 시대가 바뀌어도 낡지 않고 재밌어야 하니까. 백 년  후 누군가의 지루한 출퇴근길을 레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바꾸어 줄지도.



#레누가 릴라와 니노를 관찰하고 떠올리며 쓴 일부

레누가 자기 자신과 릴라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를 겪으며 사랑과 그 아픔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들은 그 나이대다운 통찰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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