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여행이 좋아졌다

음소거가 필요해 혼자 떠난 제주 여행 (1)

by 소란소강


불법 낚시꾼 같은 내가 미워서



이직을 할지 전직을 할지 그것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반년이 흘렀다. 처음 삼 개월은 다녔던 회사 근처도 가지 않았는데 새로 직장을 잡는 것이 만만치 않아서 그래도 해봤던 일을 다시 기웃거리게 됐다. 같은 업종으로 경력을 인정받고 옮기게 되었는데 내키지 않았다. 전례 없는 불황에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남들의 말이고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끙끙 앓고 있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왜 때려치웠냐고, 한번 더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고, 기어가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용기를 내서 퇴사했던 작년의 나에게 미안했다. 이력서를 아무 데나 뿌리면서 한 개만 걸려라, 하는 불법 낚시꾼 같은 지금의 내가 너무 미웠다.


걱정하고 고민만 하다가 여행도 한 번 가지 못했는데 5월이 코앞이었다. 스스로 정한 마감은 원래 12월이었는데 그게 1월이 되고 2월이 되더니 어느새 5월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갈팡질팡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여행지를 뒤졌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으니 해외를 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멀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곳. 작년 겨울에 다녀왔어도 계절마다 색다른 곳.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혼자서.


000083950012.jpg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향했던 용연구름다리 / CANON_AE1



여행도

혼자가 편해


출발하기 이틀 전에 비행기 표를 끊었다. 급하게 끊느라 애매한 시간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최대한 적절한 시간대를 고르고 비싼 표를 피해서 잡으니 일박 이일 같은 이박 삼일 일정으로 떠나게 됐다. 티켓을 끊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혼자 차 없이 가는 여행이라 한 군데에만 있기로 했다. 급하게 떠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지독한 서울을 떠난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일이 거의 없다. 알고 지낸 지 15년도 더 된 친구들이 있지만 함께 여행 가본 일이라곤 학창 시절 수학여행뿐이다. 성인이 되고 난 뒤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자신만의 성격을 구축해가면서 어쩔 수 없이 교집합은 줄어들었고 그 차이 때문에 여행을 함께 계획하는 일도 자연스레 줄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자고 제안하면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배려하고 따르는 데 익숙하다. 속으로는 그게 불편해도 티를 내지 않는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이겠지만.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몇 번의 해외여행을 혼자 다니면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의 편리함을 체득해버렸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움직이고 싶은 시간에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고 혹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괜찮다. 게다가 (이게 중요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간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 굳이 함께 간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 혼자 가는 것이 낫고 불가피하게 함께 간다면 최대한 내 성향을 말해서 양해를 구한다. 예를 들면 이동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든가 함께 가더라도 각자 가고 싶은 여행지는 따로 혼자 가는 것이라든가.


000083950017.jpg 용두암 가는 길 / CANON_AE1



지저분한 해변을

밀려가는 파도가 깨끗이 지워주는 것처럼



이번 제주 여행의 목표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꼭 가봐야 하는 곳에 갈 필요도 없고 꼭 먹어야 하는 것을 먹을 필요도 없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해서 휴대폰은 어쩔 수 없이 켜두어야 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몇몇 순간들을 제외하면 너무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 때문이었다. 대가족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언니와 방을 함께 써서 단 한 번도 나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가져본 적 없는 환경. 자취를 하면 편했겠지만 많지 않은 월급에 기회비용을 따지다 보니 계속 부모님 집에 얹혀살 게 되었다. 할머니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아빠의 시도 때도 없는 혐오발언들, 그 외 다른 가족들이 내는 각종 소음들. 그리고 서울. 단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곳, 나의 지독한 고향, 서울. 이 모든 것을 뒤로하게 해주는 것은 오직 혼자 떠나는 여행뿐이었다. 파도가 밀려간 자리가 깨끗한 것처럼 제주의 푸른 바다와 그 파도가 복잡한 내 심경과 환경들을 깨끗이 지워주길 바랐다.


000083950022.jpg 해녀박물관 공원에서 / CANON_A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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