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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ul 01. 2018

내게도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변산>


서울의 심뻑, 변산의 학수


시인을 꿈꾸던 학수(박정민 분)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랩퍼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홍대 언더에서 '심뻑'이라는 이름으로 랩 실력을 키운 학수. 랩 배틀로 랩퍼를 선발하는 TV 프로그램에 6년 째 참가하면서 우승을 노리지만 매번 아쉽게 탈락한다. 여섯번째 참가한 프로그램에서 예선은 통과하지만 키워드 랩배틀에서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보고 차마 랩을 이어가지 못한다. 고향 지역번호로 걸려온, 아버지가 입원해 있다는 전화를 한 통 받고 학수는 잊고 지내던 고향의 장면들을 떠올린다. 주먹 깨나 쓰던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힘겹게 학수를 키우다 병으로 돌아가신다. 어머니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버지를 학수는 뼛속 깊이 원망한다. 그런 아버지의 입원 소식에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학수에게 고향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곳으로 아버지의 변주이기도 한 증오의 대상이다. 랩퍼가 되기 위해 상경한 학수는 인생에서 고향을 지우고 싶었다. 서울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자신의 고향은 서울이라며 고향과의 인연을 끊고자 한다. 그런 학수의 삶에 고향 변산,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가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내 고향은 폐항


나의 어린 시절을 간직한 곳, 그러나 증오해마지 않는 곳. 학수에게 고향은 그런 애증의 장소이다. 학수가 고향 '변산'에 품은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으로도 이어진다. 끊어내고 싶어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혈연 같은 관계. 변산에 도착한 학수의 일상은 점점 꼬이게 된다. 아버지의 병실을 찾았다가 동창 '선미'(김고은 분)를 만나고 초중등 동창들을 연이어 만나게 되면서 학수는 발목을 잡힌다. 게다가 아버지는 생각보다 멀쩡하고 뻔뻔했고 학수는 잊고 지냈던 깊은 증오에 몸서리친다. 어떻게든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만 측은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 늙고 병든 아버지가 결국 찾은 사람은 오직 학수밖에 없었으니까.

영화는 학수가 고향을 다시 찾아 아버지와 동창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이야기로 종종 플래시백한다. 마치 잊고 지냈던 옛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학수의 의식 흐름에 따라. 거기엔 아픈 기억도 있고 설레고 즐거웠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앉아 수평선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시를 써내려 갔던, 학수도 있다.


시와 학수

문학은 삶에 대한 저항의 행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펜을 잡는다. 그들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이 점철된 글을 주로 쓰지만 글쓰기로 인해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그랬고 아마 학수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학수는 문학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랩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가사를 쓰는 작업은 물론 시 쓰기의 연장선이기도 할 테지만 비트를 더하고 랩을 직접 하는 '음악'은 반항심과 해방감을 표출하고 느끼기엔 더 극적인 장르였을 것이다. 그런 학수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연필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선미'와 '자신이 고등학생 때 썼던 시를 훔쳐 시인으로 등단한 선배'를 만난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 영향을 받아 소설가로 성공한 선미의 존재는 학수의 심경을 더욱 심란하게 했을 것이다. 

선미는, 그런 학수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애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의 이유 있는 반항과 그 반항의 '잘못된' 표출, 그 세부적인 원인까지. 학수 자신만 모르는 것을 선미는 알고 있지만 그를 억지로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학수가 아버지와 다르지 않음을, 그의 인생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일러주는 사람 역시 선미 뿐이다. 학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알지만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회피하고 도망치고 분노만 할뿐. 학수가 선미에게 뺨을 맞고나서도 토라진 강아지처럼 선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아마 자신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미 같은 누군가, 나서서 똑바로 앞을 보라고 붙잡아 주었으면 하고 기다렸을지도. 유치하고 치기어린 감정이지만 그래서 또 당연한 감정이다. 모두가 쿨한 척을 하고 있을 뿐, 인간은 그렇게 경솔하고 실수투성이인 동물이니까.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고향, 그리고 아버지


선택할 수도 없고 끊어내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 잊고 싶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고향과 아버지는 그래서 닮았다. 영화 전개는 어찌보면 특색이 없을 수도 있다. 고향을 매몰차게 떠났던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을 말없이 품어주는 고향에 다시 마음을 여는 전개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아버지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장소이고 존재일 수 있겠지만 지울 수도 없고 없었던 것으로 할 수도 없다. 고향과 아버지라는 소재는 그래서 자주 차용됨에도 울림이 있는가 보다.



덧1.

내 고향 서울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다. 대학교에 와서 주말이나 방학에 고향에 내려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졸업을 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다. 고향이 있는 친구들은 서울 생활과 고향 생활이 나뉘어서 서울살이에 지치면 고향에 가서 힘을 얻고 오곤 했다. 내게는, 지친 나를 말 없이 받아줄 곳이 따로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이 곧 고향이고 일터이자 생활의 전부이니까. 나도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과거의 내가 박제되어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 해왔다. 가끔 가서 회상하며 추억에 잠겼으면 좋겠다. 이렇게 지금처럼 내 인생의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지우면서 연장되는 형태말. 내 고향은 서울, 내 생활터도 서울.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곳, 서울. 익명의 대중과 소음이 난무하는 곳. 애증의 서울. 학수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고향이 있는 학수가 부러웠다. 지긋지긋한 서울 생활은 보자기에 싸서 옷장 위에 보관해두고 싶다.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이란 곡에 공감 못한 사람은 나 뿐이려나..


덧2.

배우 박정민

영화 <파수꾼>에서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바키(박희준)' 박정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매섭운 눈매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어린 짐승 같던 눈빛. 배우 이제훈이 나와서 본 영화였는데 오히려 박정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이제훈과는 분명 다른 행보를 걸을 것이라고 그때부터 느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동주>의 '송몽규'로 만난 박정민, 역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빠르지는 않지만 자신이 잘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가고 있는 것 같다. <변산>은 이준익 감독과 <동주>에 이어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의 장점들을 잘 살려주는 듯 하다. 수업 중에 몰래 시를 쓰는 학수, 불만이 가득하지만 마음은 여린 학수, 선미의 마음도 모르고 찌질하게만 구는 학수를 배우 박정민이 아니면 누가 연기할 수 있었을까? 박정민은 책도 꽤나 읽는 편이다. 민음사의 문예지 <릿터> 3호에는 박정민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는 에세이를 엮어 <쓸만한 당신>이라는 책도 냈다. 게다가 학수가 영화에서 한 모든 곡의 작사가로 참여했다. 랩도 무척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났다. <동주> 때도 그랬듯 작품을 맡으면 깊이 뛰어들어 잘 해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책 읽는 사람, 감상을 글로 써내려가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배우 박정민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영화 <변산> 
Sunset in My Hometown (영문 타이틀이 마음에 든다.)

2018년 7월 4일 개봉

감독 이준익

출연 박정민 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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