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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ul 28. 2018

잘못은 너무 컸던 내 기대에 있겠지..

영화 <인랑>을 보고 아쉬워서요..



영화 <인랑> (2018)



영화 <인랑>은 정말 스타일 좋은 작품이었다. 스크린에서 눈호강은 제대로 했다. 배우들도 좋았고 액션 신도 남부럽지 않게 멋졌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SF는, 특히나 디스토피아적 SF는 유독 잘 팔리지 않는 편이다. (현생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그래서 더욱 불모지 같은 장르였는데 김지운 감독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그리고 주연이 강동원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를 했더랬다. 원작인 <견랑전설>도 평이 자자하다기에, 성공적인 실사화에 작품성까지 더하기를, 개봉까지 무심한 척했지만 나름 기대가 컸나보다.


어둡고 습하고 질척이면서 냉기가 흐르는 톤의 포스터. SF디스토피아 장르적 분위기와 인랑의 제복이 찰떡 같이 어울린다...비주얼..크...


액션 멋진데? 로 시작해서
이거...이런...로맨스였...어?로 끝나다.

원작 팬들의 말을 들어보니, 캐스팅이나 내용면에서 실사화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원작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스타일에 치중한 나머지 인물간의 감정선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섬세한 연출이 가미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가령, '한상우'(김무열 분)가 '임중경'(강동원 분)에게 언제부터 자격지심을 갖게 되었는지 언지가 되었다면 마지막 전투 장면이 쳐지는 듯한 느낌과 "너랑 내가 다른 게 뭔데."라는 대사에서 덜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임중경과 이윤희(한효주 분)의 트라우마는 나름 멋지게 영상으로 표현했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 감정선은 또 거칠게 처리해서 마지막이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윤희가 어스름한 빛이 들이치는 방 바닥에 누워 천장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며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베스트였다. 장르 특성상 그런 섬세한 연출은 기대하면 안 됐던 걸까. 한 관람객의 평은 이랬다. "SF액션인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알고 보니 로맨스였다."



그래도 한국 감독 중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감독이 몇이나 될는지. 그래도 김지운 감독 덕에 비주얼과 스타일은 얻지 않았나. 한국상업영화에서, 10년 후를 배경으로 한 SF 액션영화를 만난 것만으로도 난 만족하련다. 한국영화 장르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기대가 커서 아쉬움도 큰 것일 뿐...



후반부 감정선 연출이 조금만 더 섬세했다면

외적인 이야기는 남북통일과 관련된 특기대-공안부 간의 권력싸움이 종지부가 나면서 끝난다. 반정부테러단체 '섹트' 역시 권력싸움에 희생된 단체로 비춰지기는 하지만 권력기관과 비밀리에 붙으면서 사라지는 듯하다. 통일은 성공적으로 성사되는 셈. 


<인랑>에서 외적인 이야기는 말 그대로 배경에 불과하다. 그 배경에서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모르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중심인 영화인 것이다. 인물 중심으로 보면 영화는 '임중경'의 고뇌로 시작해서 로맨스로 끝이 난다. '이윤희'도 그렇다. 인물 중심이라면, 스타일에 치중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섬세한 감정 연출이 필요했다고 본다. 


<인랑>은 2029년 한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가 품은 주제는, 다수의 집단사고 혹은 믿었던 절대권력자에 대한 소수 혹은 개인의 반발과 그 과정에서 반발하는 소수/개인의 내적 가치관이 충돌하며 생기는 괴리를 조명하는 것일 테다. (거기에 로맨스 시럽을 드리즐했지만....어떤 관객의 평은 이랬다. "오글거림 세 스푼만 참으면 볼만 합니다...") 

임중경은 철저히 훈련되어 감정을 숨기는 인물이라 감정선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윤희와의 로맨스로 마무리되는 후반부는 역시 아쉽다. 영화 초반에 임무를 앞두고 착잡한 표정으로 침대 맡에 앉아 있는 임중경의 표정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후반에 로맨스로 갈 때는 중경도 윤희도 모두 아쉽다. 



(그저 서로 예뻐서 끌린 것인지, 자신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어쨌는지-트라우마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 첫만남부터 트라우마를 공유하지 않음-. 국수 먹고 남산 데이트가 인상적이었는지...윤희는 중경의 무덤덤한 반응에 갑자기 다시 추적기를 켜고...살기 위해 그렇게 약게 행동하는 인물이면서 중경을 설득하는 시도는 아쉽잖아요?) 

 

다시 쓰는 '빨간 망토' 이야기의 결말

임중경은 '피의 금요일'로 불리는 사건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 사건으로부터 5년 후,  임중경은 빨간 망토로 폭탄을 옮기는 소녀의 죽음을 목격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소녀의 언니에게 소녀의 다이어리를 전달해주는 개인적 임무를 갖고 윤희를 만나게 된다. 공안부와 특기대의 속고 속이는 권력싸움에 임중경과 이윤희는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하고 희생되는 인물이다. 자신 역시 임무를 숨기고 윤희를 만난 것이었지만 중경은 윤희가 희생되어야 하는 데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혼란의 시대에 중경은 자신의 내면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자신의 가치를 믿기로 한 것. 손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미처 살려내지 못했던 소녀들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임중경으로서는 윤희를 구함으로써 어쩌면 자신도 구원의 빛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인랑>은 임중경 삶의 새로운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빨간 망토를 연기한 배우 신은수. 대사는 없지만 역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윤희가 언급하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사실은 비참하게 끝난다. 그러나 어린이용 동화에서 해피엔딩으로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인랑>의 결말은 임중경이 스스로 다시 쓴 셈이다. 스스로 다시 쓰고자 한 결심을, 그 결심을 윤희가 도와준 것이라면, 그 감정선과 과정을 조금 더 섬세히 표현했다면 기대 이상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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