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의 베스트, 라이언 고슬링
올해 초에 그랬었다. 라이언 고슬링 N차 덕질을 시작하면서, 10월에 한국에 <퍼스트 맨>이 개봉하니까 라이언 고슬링 내한을 기대해보겠다고. 시간은 흘러 10월은 왔고 <퍼스트 맨>은 개봉했고 라이언 고슬링은 내한하지 않았다.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에 한국어로 "안녕~" 한마디 해준 것이 전부다! 예견했듯 국내 영화 포스터에는 "<위플래시>, <라라랜드> 감독 작품"이 서브 카피로 붙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은 타이틀 위에 아주 작고 귀엽게 새겨 있다. 다음 영화를 기약해야 한다니, 속상하지만 괜찮다. 그의 필모그래피 행보가 마음에 드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닐 암스트롱' 역에 왜 라이언 고슬링을 캐스팅한 건지 별 의문이 없었다. 데미언 셔젤과 작업이 잘 맞아서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개봉이 다가올수록 왜 라이언 고슬링인지 궁금해졌다.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특히나 미국의 예의 그 자랑스러운 '퍼스트 맨'인데 라이언 고슬링은 캐나다 출신인 데다 소위 '미국적인' 이미지도 아니니 말이다. 연출을 누가 맡았으냐에 따라 달라진 거겠지만, 자연스레 미국적인, 헐리우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떠올랐다. 떡 벌어진 어깨에 각진 턱, 그리고 러시아와의 대결 아닌 대결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아주 애국적인 인물.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닐 암스트롱'역 으레 '캡틴 아메리카' 같은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했을 것 같다.
그러나 데미언 셔젤이 그린 '닐 암스트롱'은 전혀 그런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다. 포스터만 보고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한 친구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닐 암스트롱'역이 바로 라이언 고슬링이라고. 라이언 고슬링을 캐스팅한 이유, 영화를 보고 나서 더 명확해졌다. 영화는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사실 자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달에 간 사람을 조명한다. '퍼스트 트립 투 더 문'이 아니라, '퍼스트 맨'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그가 단독 주연을 맡는다는 점은 꽤 많은 것을 시사한 것이었다.
(영화의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닐이 어린 딸 캐런의 죽음을 겪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닐은 아픈 캐런을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해주는 등 애를 쓰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다. 이 영향 때문인지 닐은 파일럿으로 근무하면서 연달아 실수를 하게 되고 캐런의 죽음 이후 직장에서도 정직 처분을 받게 된다. 결국 닐은 우주비행사를 뽑는 나사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지원하는데, 그에게 우주비행은 어쩌면 가슴 아픈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혹은 피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싶다.
캐런의 장례식에서 닐은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나서야 혼자 눈물을 흘린다. 그러곤 얼른 눈물을 훔치며 캐런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서랍에 고이 넣어둔다. 마치 서랍 속에 슬픔을 잠시 덮어 넣어두는 것처럼. 우주비행사로 뽑히게 된 닐은 캐런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나사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우주비행사로서 위험한 훈련이 계속되면서 절친했던 동료가 사고로 죽게 되는데, 그의 장례식에서 닐은 캐런의 환영을 보게 된다. 난로 앞에 앉아 장난감을 들고 웃고 있는 캐런의 환영을 닐은 지그시 응시하다가, 아내 '재닛'도 챙기지 않은 채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떠나버린다. 그렇게 집으로 향한 닐은 어둑한 뒷마당에서 홀로 달을 올려다본다. 닐은 캐런을 잃은 상처를 제대로 감싸려고 하지 않는다. 캐런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캐런을 향한 그리움이 내면으로 향하고 고독으로 점철되면서, 달에 가는 프로젝트에 점차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캐런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닐에게는 달에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로 인해 사망하는 비행사들이 늘어나고, 나사의 프로젝트에 막대한 세금을 쓰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닐은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다. 발사를 앞두고 집을 떠나기 전 닐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닐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아니다. 감정을 품고 쌓아두면서도 그 축적된 감정들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위험해질수록 캐런에 대한 이야기를 극도로 피하고 가족들에게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닐이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미국의 우위를 위한 게 아니다. 닐이 말했듯 프로젝트는 그의 '일'일뿐이고 그는 그 일을 잘하고 싶을 뿐이다. 적어도 영화 속 닐에게 달에 가는 프로젝트는 그 자신의 감정을 감당하기 위한, 추스르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닐은 우여곡절 끝에 달에 무사히 착륙한다. 드디어 달의 표면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고, 그는 대지 위에 그려진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달 표면에 인간의 그림자 실루엣이 새겨진 것처럼 놓여있다. 그림자는 닐의 눈동자에 비추는 것이 아닌, 우주비행복 헬멧 표면에 비친다. 닐은 달에서, 달에 와서야 비로소,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고독하다. 닐은 달의 커다란 분화구 앞에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하며 눈물을 흘린다. 달의 저편에 보이는 지구를 보며 캐런과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팔찌를 분화구 속으로 던진다. 캐런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아폴로 11호 발사 전 기자회견에서, 달에 무엇을 가져가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닐은 무표정하게 "할 수만 있다면 연료를 더 가져가고 싶네요."라고 답한다. 아내의 보석을 들고 가겠다며 재치 있게 답변한 동료에 비해 그는 매우 사무적이고 현실적으로 대답한다. 그랬던 그가 아무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캐런의 팔찌를 가져와 달에 놓아주는 장면은 그래서 더 여운이 짙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캐런을 어떻게든 잊어보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 결국 달에 무사히 도착한 닐. 잊을 수 없지만 이제는 잊어야 함을, 닐은 달에 가는 프로젝트 성공으로써 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끝내 달에 감으로써, 그리고 인간의 어떤 흔적도 없는 공간에 내려놓음으로써 말이다.
이 영화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달에 무사 착륙한 우주비행사이기 이전에 상실의 슬픔과 고독에 휩싸인 한 남자를, 한 아버지의 심정을 그린 영화다. 그런 고독함을 표정과 연기에 잘 담아낼 수 있는 배우 중 하나가 바로 라이언 고슬링이다.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닐은 격리된 공간에서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재닛과 재회한다. 한 공간에 있지만 함께 있지 못하는 두 사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닐과 재닛은 손을 마주댄다. 닐과 재닛의 심적 거리도 그와 같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완벽히 닿을 수는 없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온도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닐은 캐런이 죽은 뒤에도 재닛과 그 슬픔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오직 혼자 감정을 덮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닐은, 달에 캐런의 팔찌를 가져간 사실에 대해서도 묵언할 것이다. 그것은 닐이 감정을 마주하고 감당하며 인정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자 최후의 방법일 테니까. 무사히 귀환을 했음에도 유리벽 앞에서 말없이 마주한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바로 이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더욱 분명해진다. 수많은 인파로부터 성대한 환영을 받는 장면이 아니라 닐은 재닛과 고요한 눈빛으로 마음을 나눈다. 영화는 사건보다 사람을, 역사적인 성공 뒤의 쓰라린 아픔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 이 영화의 대화법이 좋았다. 천천히 슬픈 왈츠를 추듯, 많은 감정을 담으면서도 절제된 몸짓으로 다가온다. 여운은, 그래서 더 깊어진다. 소재만 놓고 본다면 영화는 격양된 감정을 점철한 블록버스터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퍼스트 맨>은 다른 방식을 취했다. 오히려 절제된 감정이 더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었다. 데미언 셔젤과 라이언 고슬링의 절제된 연출과 연기 덕분이다.
이번에 내한 소식을 듣지 못해서 아쉬웠던 마음이 싹 가셨다. 이런 영화라면 내한하지 않아도 괜찮다. 국내에서 흥행하지 않아도 좋아. 이 두 사람의 좋은 영화를, 좋은 연기를 앞으로 오랫동안 보고 싶다.